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Apr 23. 2017

박나래와 박운서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의지가 존경스러웠다

새벽에 머리를 감았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거울을 봤는데 정말 못생긴 얼굴이었다. "아, 짜증나." 얼굴에 난 자잘한 것들이 요즘 나를 기운 빠지게 한다. 아침을 먹고 엄마와 커피를 마셨다. TV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얼굴에 난 것들에 대해 말을 꺼냈다. 엄마는 약 부작용인 것 같다고 하셨다. 확실히 새로 약을 타 먹은 이후 알갱이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울컥거렸고 엄마는 마음 약해지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내 방의 책장을 들어내 엄마 방으로 옮겨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곰돌이가 방해가 되니 같이 마루에서 놀고 있으라고도하셨다. 생각치 못한 텅 빈 시간이 생겨났다.


TV에 박나래가 나왔다. 개그우먼 친구들을 나래 바로 불러 파티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코미디 빅리그>의 '분장의 신' 코너 시절을 이야기하며 분장 탓에 이마 라인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가 "나래야, 너 코미디 하는 거 마음 아파서 못 보겠다"고 말씀 하셨다며 "사람들을 웃기면서 정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했다"라고 했다. 그래도 그녀는 개그우먼이 된 걸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분장의 신'을 개그가 아니라 분장이라며 폄하했던 적이 있다. 그녀가 크게 뜬 건 그녀의 재능이 아니라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재능이라 생각했었다. TV 속 그녀를 다시보며 그녀에게도 나름의 아픔이 있었구나 싶었다. 더불어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한 나의 오만이 부끄러웠다.  


신문을 펼쳤다. 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통상산업부 차관, 지금은 두산중공업이 된 한국중공업 사장, 그리고 데이콤 회장을 지낸 박운서란 사람의 발이었다. 그는 2015년 4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식불명인 채로 병원에 후송됐고 오른쪽 발의 네 발가락을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엄지발가락 단 하나만이 남았다. 그런데 그는 다행이라고 했다. 엄지발가락마저 잃었다면 목발을 짚고도 서기 어려웠을 거라서랬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긍정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그 몸으로 필리핀으로 봉사와 선교를 하러 갈 결심을 했다. 남은 생을 필리핀 원주민에게 바치겠다는 새로운 계획까지 세웠다. 공직생활과 최고경영자의 생을 뒤로하고 그가 택한 새 시작이 남을 위한 봉사라는 점이, 엄지발가락 하나에 의지해서라도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가 존경스러웠다.


입고 있던 스웨터가 더워 반팔로 갈아입었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다. 세상은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야한다는 신념이 있다면 문제는 나의 의지 여부다. 일본어와 영어 방송을 듣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거나 컬러링 책에 색칠을 하고. 오늘도 매일의 똑같은 일과를 반복해야 한다. 지루하고 짜증날 수 있다. 실제로 많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라면 그것에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오늘도 살아야 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필요없는 쇼핑의 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