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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pr 24. 2017

나는 왜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물건이, 관계가 사라지자 사라짐이 생겨났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수박을 사들고 합정동 거리를 거닐었던 때를, 르 알라스카에서 빵을 사 집까지 돌아왔던 때를, 새벽같이 일어나 지하철 로케이션 촬영을 하고, 포틀랜드 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호텔 예약을 했던 그 때를. 자꾸만 떠올린다. 지난 해 9월 늦은 오후의 신사동 거리는 오래된 사진처럼 내곁을 스쳐가고, 환자복을 입고 병원 복도를 오갔던 일은 편안한 그림이 되어 내곁에 머문다. 이미 끝나버린, 지나간 시간들이 떠나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돈다. 이제는 안녕이라고, 더이상 보지 말자고 이별을 고하고 싶은데 자꾸만 기억의 자락이 발치에 치인다. 내 어딘가의 시간은 아직도 2016년인 것만 같다.


자꾸만 생각이 난다. 물건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만 같다. 입원 중 엄마와 누나들이 이사를 대신 해주시며 내 물건이 꽤 많이 버려졌다. 초록과 빨강의 타탄 체크 꼼데갸르송 숄더백이 없어졌고, 아오야마 풀에서 샀던 네이비 컬러의 컨버스 백도 없어졌다. 이 외에도 내가 모르는 없어진 물건이 또 있진 않을까 자꾸만 생각이 난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 며칠 전에는 자다가 일어나 물건을 찾아보기도 했다. 시간은 자정을 지나 한 시쯤. 없어진 건 정말로 없었고, 나는 짜증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애써서 잠을 자보려 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나간 것들이, 사라진 것들이 자꾸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 같았다. 결국은 속으로 기도를 하고 간신히 잠이 들었다.


지난 해 아프고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나는 새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바뀌면 어쨌든 뭐든 바뀔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새해가 되어도 내 다리는 여전히 아팠고 얼굴은 가려웠으며 나는 아직도 약을 열알 가깝게 먹고 있었다. 그래서 또 기다렸다. 구정이 오기만을. 그 다음엔 3월을 기다렸고, 또 그 다음엔 진짜 봄을 기다렸다. 완연한 봄이 왔다. 며칠 전 외출을 해서는 반팔을 입은 사람도 서넛 보았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면 나는 이제 다리가 아프지 않고 가려움증도 덜해 졌으며 약도 많이 줄었다. 내 몸은 이제야 제대로 제 리듬을 찾았다. 자주 앉았다 일어나야 하는 성당 미사도 전혀 힘들지 않다. 이제야 새해를 맞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한켠은 아직 지난 해 문턱에 걸려있는 것만 같다. 다툼의 기억이 자꾸 솟아나고, 엇나간 인연의 자국이 지어지지 않는다. 여러가지 잡음의 조각들이 사라지지 않고 나뒹구는 듯하다. 관계라는 것이, 관계의 정리라는 것이 이리 쉽지 않으리란 걸 알지 못했다. 물건도, 관계도 사라지면 그걸로 끝인줄 알았다. 하지만 물건이, 관계가 사라지자 사라짐이 생겨났다. 사라짐이란 존재가 내 기억을 붙들고 있었다. 사라진 물건, 관계의 흔적을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과거를 지우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시작은 과거에서 온다는 걸, 그렇게 내일이 시작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자꾸만 뒤돌아봤다. 돌이킬 수 없는 곳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이 뒤돌아봄이 과거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게 다 오늘을 살기 위함이고, 내일을 준비함이라는 걸 알았다. 정말로 새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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