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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y 04. 2017

여름이 주고 간 상실의 기억

사라진 것은 사라진 대로 그냥 두는 게 자연의 이치다

어색하리만큼 무더웠던 며칠 전 밤, 자다 일어나 옷장을 뒤졌다. 여름 옷중에 뭐가 없어졌을까 걱정스러웠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다시 지랄이다. 지난 해 겨울 입원을 하면서 나의 물건 중 많은 것들이 없어졌다. 합정동에서 장만한 무인양품의 침대, 태국 출장 가서 사가지고 온 담요, 십 여년간 모아온 잡지 대부분과 한 쪽 벽에 붙여놓았던 여러가지 포스터들. 화장실에 놓여있던 화장품과 면도기, 그리고 향수는 다 버려져 화장실이 통째로 사라졌다. 엄마와 누나들은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정신 없이 이사를 하느라 그랬다고 하셨지만 나는 도통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사라진 물건과 함께 내 기억과 추억이 달아나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스산하다.


이른 더위 탓에 요 며칠 거리에서 나시와 반팔 차림의 사람들을 종종 봤다. 아직은 이른 거 아닌가란 생각과 함께 나는 내 방의 옷장 속을 떠올렸다. 내게 나시 티가 몇 장이나 있는지, 반 바지는 또 얼마나 있는지 헤아려봤다. 또 다시 없어진 물건들이 생각났다. 시부야 언덕 길 가게에서 샀던 몽벨의 샌달과 하라주쿠에서 샀던 꼼데갸르송의 숄더 백. 새로운 계절과 함께 나의 상실도 되살아났다. 사라진 물건은 어찌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봤자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사라진 물건들은 자꾸만 내 마음 한 켠에서 덜컹덜컹 소리를 낸다. 봄이 되면 지나간 봄이 떠올라, 여름이 되면 지나간 여름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물건이 사라진다는 건 그 물건이 공유한 시간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내 방을 정리하고 계셨다. 크고 기다란 책장을 세번이나 옮기고 옮겼다고 하셨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나는 또 다시 사라진 물건이 생각났다. "엄마, 엄마가 꼴보기 싫다고 하셨던 기다란 나시티 보셨어요?" 부산 신세계 센텀에서 산 릭 오웬스의 50만원 짜리 나시다. 엄마는 모른다고 하셨고, 나는 없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심통이 난 나는 엄마에게 "버렸죠?"라고 말해버렸다. 그야말로 초등학생 땡깡 부리듯 엄마를 쏘아붙였다.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가 뭘 버리냐? 왜 자꾸 그러냐?"라고 하셨다. 나는 "그럼 왜 없는데요?"라고 쏘아 붙였다. 의도치 않게 엄마를 또 화나게 했다.


나는 진지했다. 왜 자꾸 내 물건을 버리는지, 왜 자꾸 내 물건이 사라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물건이 하나 없어진다는 건 하나의 시간과 기억, 추억이 동시에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하라쥬쿠 편집숍에서 취재를 하며 할인을 받아 구입했던 반바지의 기억이, 도쿄에 살던 시절 놀러온 선배와 쇼핑을 하며 처음으로 사봤던 페도라 모자의 추억이, 이른 시간 갈 곳이 없어 맥도날드에 앉아 사진으로 찍었던 꼼데갸르송 숄더 백의 시간이 물건의 상실과 함께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방문을 세게 쾅 닫고 침대에 앉아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왜 자꾸 상실 앞에서 뒤만 바라보는 걸까. 별 것도 아닌 일로 왜 엄마와 다투기까지 하는 걸까. 그냥 분실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안되나. 그냥 잃어버렸다 셈 치면 안되나. 뭐가 그렇게 대단하고 중요한 물건인가. 물건은 또 사면 되지 않나. 기억과 추억은 그냥 그대로 간직하면 안되나. 나는 이 단순한 거에 서툴었다. 그래서 아프고 힘들었다.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그냥 두지 못했다. 하지만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 겨울이 오는 것. 이제는 놔줘야 겠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엄마에게 가 사과를 했다. 엄마는 내일 같이 한 번 찾아보자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이제는 다시 이런 얘기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대로 그냥 두는 게 자연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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