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May 23. 2017

나에게 단골가게란...

그러니까 단골 가게는 고유명사다

지난 주 목요일 비하인드에서 사장님이랑 아마도 단골 손님일 것 같은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연희동에 비하인드가 여기 비하인드랑 같은 거냐고, 뭐 그런 얘기였던 같은데 오늘 미팅 장소인 역삼동 근처에 가는 도중 문득 그 대화가 떠올랐다. 사장님이 월요일과 또 무슨 요일엔 연희동에 계신다는 말도. 나는 오늘 쓸 게 많아 마르니 X 포터 가방에 맥북을, 무거운 걸 손에 들고 나섰다. 비하인드에 들러 쓸 요량이었다. 그냥 가던 데로 갔음 좋았을 걸 쓸데없이 욕심을 부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네이버에서 새로운 비하인드의 주소를 찾고 있었다. 이게 오늘의 일정을 어그러뜨릴 화근이 될 줄은 손톰만치도 몰랐다.


미팅이 끝난 건 오후 두 시 삼십 분쯤. 더위를 한걸음씩 물리며 이동했다. 700미터쯤 걸으니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고, 오래 걸리지 않아 740버스를 탔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과 잠수대교(잠수대교를 내 인생 처음으로 타봤다), 그리고 경리단 주변을 지나 연희동 OO고지에 섰다. 무려 한 시간 가깝게 걸렸다. 조금씩 네비가 엉뚱햔 데서 헤매긴 했지만 큰 탈 없이 새로운 비하인드, 비하인드 리메인에 도착했다. 이마에 땀이 몽글몽글 맺혀있었다. 마침 사장님께서 파란색 박스를 들고 가게 입구로 가고 계신다. "저기 죄송해요. 오늘 네 시까지에요." 맥이 풀렸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이걸 어쩌나 싶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니 무겁게 들고 온 맥북이 걸렸고, 서교동 비하인드(내 단골 집)로 가자니 사장님 보기가 민망할 것 같았다. 왔다, 갔다 생각하며 1분 30초쯤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바보, 바보"라 중얼거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늘의 다섯 번 째 버스 7612번을 탔다. 


비하인드에 들어와, 무려 두 시간이나 넘게 서울 시내를 돌아 도착해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자리에 앉았다. 배고픈 마음에 주문부터 하고나자 비하인드란 대체 내게 뭘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를 발견한, 연희동에서 서교동으로 오신 사장님이 두 번째로 "죄송해요"라고 하셨다. 사진이라도 찍자고 찍은 사진은 어쩐 일인지 핸드폰에 들어있지 않았고, 오고간 시간 두 시간여는 도려내면 없던 일이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사진이 있고 없고를 떠나, 시간을 도려낼 수 있고 없고를 떠나 나는 마음 속으로 비하인드와 다투고 있었다. '너가 뭔데 나를 이렇게 힘들게하니'부터 '이건 그냥 타이밍의 문제잖아'까지 마음이 혼자서 법석을 떨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아니 내가 다니던 공간에 오니 내 짜증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바깥 옆 벤치엔 재떨이엔 꽁초가 네다섯 개쯤 버려져 있었고, 바람 결에 내 맘은 조금씩 나아졌다. <생활의 발견>에서 회전문 앞을 돌아서는 경수의 마음처럼 낙심했던 마음은 조금씩 자리를 감추고 있었다. 주문한 아이스 커피가 어느새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음악은 변함없이 마음에 들었고, 사람들은 시끄럽지 않게 떠들고 있었다. 쉬는 동안엔 일두일에 서너번 오기도 했고, 때로는 마감도 혔으며, 백영옥 작가의 <애인의 애인에게>나 사노 요코의 <사는 거 뭐라고>도 읽었던 이곳. 곳곳에 내 삶이 있었다. 코가손 포스터가 붙어있는 화장실 골목과 짙은 갈색 가리모쿠 의자, 그리고 재떨이가 놓여있는 기다란 벤치와 "영수증 드릴까요"라 물어보는 사장님의 고운 목소리까지. 나는 이곳에서 "이거 무슨 음악이에요?"라 물어 토리 에이모스의 음악을 알았고, 혹시 아르바이트 구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시간과 기억, 추억이 날 계속 이곳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살았던 삼선동과 합정동, 그리고 신사동처럼 이 곳 역시 내 삶의 일부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조각 내 쓰려던 글은 일단 마쳤고, 주문 한 음식도 말끔히 비웠다. 그리고 나에게 비하인드는 여기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픔, 고민, 웃음이 함께 했던 곳. 나는 언젠가 또 이곳에 와 또 삶을 살겠지. 그러니까 단골 가게는 고유명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이 주고 간 상실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