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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pr 20. 2021

쓸모없는 내 방의 사연, 공간몽상

일하는 자유, 일 하지 않는 여유



몇 번의 고심을 하다 갖게된 동교동 언저리의 테이블 하나 자리는 우리 집보다 넓은 크기였다. 내가 사용하는 건 고작 너른 테이블의 칸막이가 쳐진 책상 하나 정도의 크기이지만, 사방으로 펼쳐진 내가 아닌 누군가의 테이블과 조금은 늘어져 앉을 수 있는 등이 없는 소파, 오픈 키친이라 불리는 곳엔 간단한 물소리도 타고 뒷 공간 쪽으로는 꽤 넓은 로커가 주워졋다. 이건 '워크 스페이스'라 불리는 작업 공간의 풍경인데 그것만으로도 50평 남짓의 우리 집 크기 쯤 나올지 모른다. 나아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그와 비슷한 면적의 라운지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벽을 채운 책장엔 한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남다른 구색으로 갖춰진 큐레이션의 책들이 늘어서있다. 방문 이틀차 아직도 헤매고 있던 난 그 바닥 부분 책방에서 내가 만든 책을 발견했는데, '잘 오셨어요'라 느꼈다면 유치한 망상이겠지. '공간'이란 필요와 쓸모가 아닌, 필요없음과 쓸모없음이 안겨주는 무언가의 한 자락을 머금고 있다.



내가 일하게 된 공유 오피스의 굳이 필요없는, '놀고있는 공간'과 비슷하게, 어쩌면 압도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얼마 전 '줌'으로 인터뷰를 했던 공간 디렉터 타카시마 마유의 '오피스'는 자연 그 품 안에 있었다. 타카시마는 18년간 스타벅스에서 점포 디자인을 하며 100여 곳의 매장을 만들어온 대표적 '스타벅스 인물'인데, 그가 두 해 전 전직을 한 '파커즈'는 '일상에 공원의 기분을'을 모토로 한다. 그의 현실적 구현이었을까. 사원 한정이라는 그 공간엔 천장에서 나무가지가 뻗어있었고, 바닥엔 천장에서 (빛의 반사를 이용해) 물방울이 떨어졌고, 테이블 옆엔 작은 연못의 물소리가, 너른 창가 앞에서 어떤 이는 '그네를 타고' 업무에 열중이었다. 코로나 시절 쟈연을 바라보고 새삼 반성을 하는 공간은 아직 보이지 않는 답을 찾아 분주하지만, 어쩌면 그건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남겨두고도 몰랐던 '여백'의 활용일지 모른다. 같은 카페라도일이 잘 풀리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단순히 오는 사람의 분위기, 가게의 무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건 하나의 '생물체'로서 공간이 살아가는 시간의 질감이기도 하다. 시간 위에 세워지지 않는 공간 없고, 공간을 체험하는 건 결국 '내가 머무는 어느 한 시간이거나 4시간이거나 때론 몇 분 남짓의 체험, 시간'이다. 공유 오피스 체험 1주일차의 어설픈 '내가 일하는 곳은'의 이야기.




 그리고 아래는, 지금 도쿄에서 '일하는 공간들.'


"텔레 워크라는 건,
 인간이 처음으로 일함에 있어 자유를 부여받은 사건이에요."
-쿠마 켄고

지난 12월 도쿄 아오야마엔 허먼 뮐러의 '홈 오피스 전문 스토어'가 등장했다. 허먼 뮐러라면 1905년 창립한 미국의 유명 가구 메이커인데, 그 유명 가구 브랜드가 일본에 처음 오픈한 오피스 체험 스토어를 열었다. 하지만 '오피스 체험' 스토어라 해도, 벽면을 채운 임스 셸 체어에 관한 히스토리 전시랄지, 최신 기능이 구현된 아론 체어, 세이르 체어 같은 걸 보면, 오피스, 체험을 빙자한 '브랜드 선전의 장, 쇼장'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무 방식이 유연하게 변화하는 시절, 가구 브랜드로서 이만한 '호기'가 또 있을까. 그리고 츠타야, 우리가 다 아는 그 츠타야는 시부야 복판에 초고층 '워크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이 역시 '열일'하는 노동자의 하루와는 좀 인상이 멀어보이는데, 시간 당 1만 엔을 지불하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무제한, 심지어 창 너머로는 11층 높이세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쿄의 전경이 있다. 19년 스크램블 교차로, 우리가 알던 그 스타벅스 딸린 츠타야 지근거리의 'TSUTAYA BOOKSTORE' 내 '셰어 라운지.' 굳이 변호를 한다면, 아웃풋 보다 인풋에 가깝게 설계된 '라운지'인 걸까. 그래도 시간당 15백 엔은 좀 살 떨리는 가격이다.


왼쪽 위부터 츠타야 셰어 라운지, 허먼 뮐러 오피스 스토어, 코엔지의 센토 옆집, 코스기유 토나리


그리고 코로나 이후 더욱더 핀치에 빠진 동네 목욕탕, 센토에서 만들어진 '공유 오피스' 코엔지의 70년 전통 '코스기유'의 단골 손님이 옆 건물을 매입해 '코스기유 이웃집(小杉湯の隣)'이란 이름의 다목적 공공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한 마디로 센토가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지 못해 벌인 '배보가 배꼽이 더 큰' 일. 센토의 '커뮤니티'를 그대로 가져와 서재와 키친, 주방과 자습실 등으로 채워졌다. 센토를 좋아하는 30대 남자 카토 유이치가 만든 주식회사 '센토의 일상(銭湯暮し)'의 첫번쨰 프로젝트이다.



https://youtu.be/PtwdPHl3Mv0


공간이란, 내가 보내는 시간, 기억이 되어버린 하루, 몸 속에 체험으로 새겨진 남아있다고 느껴요. 공간을 잃은 시절, 우리가 더욱더 공간을 찾고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건 때로, 과거형이 되어버리죠.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언젠가 마주하게 해주는 그 '곳'이 공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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