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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2월 3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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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05. 2021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내일을 살다

어느 레터의 레터, 코로나 그 날이 추억이 되기 전에 





일본의 북 디렉터 우치누마 신타로는 두 해 전 4월 '일기' 전문 서점(月日)을 오픈하며 '이제는 보여주지 않는 글이 각광받는 시대가 될 거'라 이야기했다. 어쩌다 시작한 코로나 이후 나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레터는, 어느새 오피셜 37호, 비오피셜을 포함하면 80통이 발행됐다. 코로나를 의식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COVID 19과 나의 뉴스 레터는 '그만큼의 연관성'을 나도 몰래 획득했고, 그런 탓인지 그곳에 쓰여지는(시절을 산다는 건 절반쯤 수동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레터는 나, 그리고 너, 혹은 너와 나 모두가 아닌 이곳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요즘같은 시절 나를 바랄본다는 건, 곧 너에게 비친 나를 떠올리는 일이기도 할테니까. 그래서 아래는, 다섯 통의 레터를 뛰우며 적었던 '레터의 레터'들. 보여주지 않는 글에 (아마) 담긴(길) 순수함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알게 모르게 너를 의식하며 적어 내려가는 글엔 (도착하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는, 그런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아마 자라는 중이다. 자유를 생각했고, 고독을 이야기했고 길이길이 남을 눈물도 흘리고 그곳을 떠올리고 바라보며 나눴던 날들. 그런 2인칭의 '혼잣말.'을 굳이 네게 보내곤 했다.



#01 프리랜서는 일단, 프리랜서를 버려야 한다 

ft. 슈퍼밴드 싸이언을 보다 떠올린 생각


돌란의 영화 '마미' 중에서.


많이 보는 것 같진 않지만 ‘슈퍼밴드' 이야기. 결선 무대 바로 전 ‘자유 조합' 과제에서 ‘골라서 보는(말 그대로 눈길이 절로 따라가는) 싸이언은 본래 자신의 팀 ‘크랙샷'에서 빠져나와 헤매고 있었고 ‘싸이언 팝니다', ‘사세요'라 말하며(나로선 전혀 불가능한) 어필로 간신히 팀을 만나 무대를 꾸렸다. 그리고 그 무대는 개인적으로 별 흠잡을 데 없이 멋졌다. 하지만 심사에선 ‘마지막 바로 전 단계에서 마음 껏 고르고 짤 수 있는 자유 조합에서 이 정도의 합은 베스트가 아니다'는 류의 이야기가 나왔고, 하지만 ‘자유 조합'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 현실 가능의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말이고, 나의 자유가 늘 너의 자유와 일치하는 건 아니다. 심사의 자리에선 최대한의 멍석을 깔아주었다 생각하겠지만, 참가자 입장에선 오히려 주어진 제약이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자유란, 가장 어렵고 얄궂고 심지어 결코 동등하지 못한 처지를 공평공정인 양, 위장해버리는 달콤쌈사름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기도 하다.


일본의 배우 쿠보타 마사타카를...정말 닮았다.


실제 난 ‘자유'란 이유로 무마되는, 간과되고 삭제되는 비자유의 아픔을 무수히 봐온 경험이 있는데, 가장 가까이는 프리랜서라는 달콤하고 쓰디 쓴 말. ‘프리 낫 프리'란 독립 잡지가 발간되고 있듯이, 회사를 나오고도 내가 좀처럼 프리랜서란 말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처럼, 프리랜서는 ‘프리’랜서가 아니기도 하다. 얼마 전 일본에선 그 프리랜서의 평균 임금이 시급으로 환산 500엔이란 충격적 결과가 나왔는데, 결국 필요한 건 ‘프리'에 대한 환상, 이미지로 범벅된 허울좋은 말이 아닌, ‘어떻게,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하는 ‘프리'인가에 대한 논의이고, 개선이다. 프리한 시간이란 결코 풍족한 일상을 의미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어느 조직에선 프리랜서 못지 않은 프리한 워크가 가능하기도 하다. 



#02 불필요한 걸 모두 덜어내고 남아있는 것 

그렇게 단순한, 하지만 완벽한


荒々しい上流の石が流れに洗われて何気ない石ころになるように。

거센 상류의 돌이 물줄기에 씻겨 아무것도 아닌 돌맹이가 되는 것처럼.



"내가 느끼는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지 않는 것 :...복잡한 패브릭...여러 색이 뒤섞인 컬러..바디의 형태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패턴...색을 강조하는 디테일...옷을 만드는 의도…

이런 모든 것들을 제거한 뒤 남은 것이 가장 강하다. 

강 상류의 돌이 물줄기에 씻기고 씻겨 작고 단조로운 조약돌이 되는 것처럼"

 _카와쿠보 레이의 콜렉션 노트


소매는 있어야 할 팔이 아닌 배와 등에 거대한 풍선처럼 붙어있고, 꽃 한 송이는 그대로 드레스가, 꼼 데 갸르송 특유의 도트는 거대 리본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껏 부풀린 실루엣. 근래 ‘꼼데’의 쇼 중 가장 충격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카와쿠보가 말한 건 '상류의 돌이 물줄기에 씻겨 평범한 돌맹이가 되는 것처럼'이다. 덜어내고 덜어내고 지워내고 지워낸 뒤 남아있는 것들의 디자인.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덜어내고 남아있는 것이란, 최소한의 쓸모 만을 남긴 밋밋함일 것 같지만, 패션에서 그건 역으로 오히려 패션 그리고 패션. 오직 패션일 수 밖에 없는 혁명과 디자인의 세계가 강물 하류에 지금 꽃을 피운다. 

포스트 코로나, 자숙하는 시기에 그 방법은 분명, 이렇게 너와 내가 다르다. 



#03 손 대면 톡...하고, 닿을 것만 같은 스타

호시노 겐 VS 쟈니즈



코로나 이후 가장 유연하게, 그리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인상을 받은 뮤지션은 사카나쿠션 야마구치 이치로와 호시노 겐이었다. 야마구치는 (일본에서) 가장 처음 온라인 라이브 중계를 전국적으로 치뤄냈고, 그를 위해 그는 스태프의 유니폼을 항바이러스 처리가 된 소재로 제작, 궂즈로까지 확장시켰다. 온라인 라이브이기에 오히려 배 이상의 품과 수고가 든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느낀 건 세상에 오프 없는 온 없다는 사실. 

https://youtu.be/aPwelOkz5qo

자인언티와 영화 '샹티와 10개 반지의 전설' 앨범 수록곡 'nomad'를 '함께' 만들고, 뮤비까지 '같이' 만들어버린 호시노의 행동력. 서울과 도쿄는 이렇게 '곁'에있다.

그리고 호시노 겐. 첫 인상은 얼굴도, 목소리도, 노래도 별론데 참 잘도 나오네...정도였는지 모른다. 확실히 미남상도 아니고 연기가 특출난 것도, 가창은 내 주변만 해도 그보다 잘 부르는 사람이 꽤나 될 것 같은데, 지금 그는 일본의 ‘국민 스타'라 불릴려 한다. 아주 잘하는 건 없지만 두루두루 잘하는. 스타의 도도함에 갇혀있지 않고 시시때때로 소통하는. 음악 뿐 아니라 연기, 그리고 에세이도 여러 편 출간하는 등 그야말로 다방면의 창작자이지만, 호시노 겐이 지금 유독 중요한 건 그가 가진 유연성, 실패를 체념하는 용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데뷔는 ‘SAKEROCK BAND’라는 인스트루멘털 밴드였고, 그게 가창을 뺀 ‘인스트루멘털'인 건 그 스스로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택한 건 ‘연기만 파자'가 아닌, ‘좋아하는 걸 하자.’ 그렇게 실패를 개의치 않는. 호시노가 가장 처음 쓴 에세이의 제목은 ‘그리고 일상은 계속된다'였다. 


11월 1일부로 26년의 세월을 끝마친 V6. 근래 쟈니즈 사무소의 사진은 늘 이런 이별, 떠나감, 하루의 뒷자락과 함께 인용이 돼요.;


최근 쟈니즈는 멤버들의 잦은 이탈, 쟈니즈 회장을 비롯 명예 회장 메리 키타카와 마저 세상을 떠나며, 50년 세월의 수성이 흔들리고 있지만, 전에 없던 이 동네 친구 같은 스타는 분명 일본 연예계의 하나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후 1년 365일 중 긴급사태가 아니었던 날이 단 60여 일에 불과했던 도쿄에서 그는 무려 4곡의 신곡을 ‘홈 레코딩'으로 완성했고, 아베까지 따라하게 했던 ‘집에서 춤추자'는 이후 음원으로 발매, 2020 NHK 홍백 파이널을 장식했다. 저작권과 기득권, 그리고 DMR 철벽 안에서 연명하는 쟈니즈 곁에 호시노 겐은 ‘집에서 춤추자'를 다운로드 무료로 풀어놓고 춤을 추고,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그를 환영한다. TV와의 연합 전선이 무너지고, ‘손 대면 톡 닿을 것만 같은’ 스타 만이...지금 일본 연예계를 우리 곁에 데려오고 있다.


#04 아트의 확장성 T셔츠의 가능성


   MoMA와 유니클로의 협업으로 제작된 매주 금요일 입장료가 무료가 되는 '프리 프라이데이 나이트' 티켓.


2002년 시작해 올해로 20년. 하라쥬쿠에 UT 전문 스토어가 생겼을 때 난 그저 기념품, 선물 사기에 좋겠다 생각했는데, 종종 쳐다보지도 못할 브랜드와 협업으로 (싼값에) 나름 기분도 내게했고, 그렇게 거쳐간 아티스트,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보면 이젠 ‘현대 컬쳐 아트의 포트폴리오’ 같은 기분 마저 든다. 국내에선 밉상, 역사적 구설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1980년대 히로시마에서 시작 반세기 넘게 일상복을 만들어온 브랜드엔, 어김없이 세월을 건너온 지혜, 내일에 대한 마음가짐이 쌓여있다. 올해 초 루브르 박물관과의 파트너쉽 체결에 이어 지난 9월엔 리볼리 거리에 14번째 매장을 오픈했고 그건 1930년대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을 개수한 ‘사마리테누.’ 매주 금요일 입장료가 무료가 되는 ‘프리 프라이데잇 나잇'을 MoMA에 이어 진행하고,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은 보스턴 미술관, 테이트 모던에서도 실시중이다. 


모마의 '유니클로 데이' 티켓과 루브루 박물관 에코백.


고작 만워이만원 하는 브랜드가 무슨 아트일까 싶지만,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그리고 필수 불가결한'이라고 이야기한 루브르 직원의 말은 흡사 옷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파리 리볼리 매장 오픈 바로 다음 날 긴자에선 모두 12개 층을 리뉴얼 오픈했고, 그 기념으로 방문객에게 긴자의 노포 단판빵집 ‘키무라야'의 앙팡을 선물했다. 야나이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1984년 히로시마 1호점이 문을 열던 당시엔 아침이라며 우유와 빵을 나눠줬다’고 말했는데, 변하지 않는 것, 세월의 변화 속에 남아있는 것. 사람 사는 일 다 거기서 거기인가 싶고, 유니클로가 아트에 진심인 이유. 그건 고작 T 셔츠 한 장이 시작이었다.



#04 그 ‘낯선 내일’도 

어느새 어제가 되어있었다


스다 마사키의, 장발이 되기 이전의 하루.


레터를 시작하고 9개월, 어제 밤 스다의 라디오를 들으며 이제 올해도 딱 1분기가 남았다는 소리에 그나마 조금 실감이 됐는지 모른다. 주제만 정했을 뿐(그 조차 여러 번 바뀌었지만) 어느 하나 정해진 게 없는 레터는 그야말로 지난 나의 9개월을 알게 모르게 드러내고 있었는데, 새삼 시작하는 말과 마무리의 말이란 세상 어느 글보다 어렵다고 느낀 9개월이기도 하다. 최근엔 그나마 좀 쌓인 레터 덕에 #OO호란 말에 기대기도 했지만 더러 몇몇은 틀린 숫자였고, 와중에 본 레터와 다른 형식의 말하자면 서브 레터가 2종 늘어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지난 주 발행은 #34호. 남아있는 1분기, 11주가 더해지면 모두 45호의 2021이 끝나버리는 걸까. 나머지 3주는 어디갔나 싶고 어쩌면 코로나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여지없이 내탓이란 맘에 할말을 잃는다. 다만, 어쩌다 기록하게 된 나의 코로나 그리고 1년은 왜인지 묘하게, 이곳에 흘러간 ‘낯선 내일의 일기’가 되어있었다. 


2년 전 무렵, 이토이 시게사토가 주관하는 ‘호보니치'는 코로나 이후 스태프들의 일기를 기록, 공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토이는 ‘수프를 먹는 것처럼, 뜨거운 죽을 한 숟가락 뜨는 것처럼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리의 모습을 이곳에 남겨두려 합니다’는 말로 그 취지를 설명했다. 사실 사람의 기억이란 애매하고 부정확하고 심지어 틀린 사실의 드라마이기도 한지라 1년 전 일이 고작 어제처럼 느껴지기도, 지난주 만남이 아득한 기억이 되어있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위드 코로나'가 되기까지, 2m란 숫자를 ‘프리백신'이 대체하기 까지. 수많은 내일이 찾아와 하나둘 어제가 되어간다. 갑작스런 폐업에 아파하던 맘도, 돌연 달라진 일상에 허둥대던 아침도, 와중에 보이지 않던 ‘잠재 가치’를 발견하고 최선 아닌 차선의 한 발을 내딛던 날들도, 모두 오늘이 되었고, 다시 어제가 되었다. 마스크가 일상 소모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낯설던 그 봄날도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멀고도 가까운 어제와 내일처럼. 마치 내일과 어제가 서로 자리를 바꾸듯. 역전되는 너와 나의 시간들. 그런 코로나 1일이 지나간다.



‘호보니치'의 나카타란 직원은 ‘일기는 곧 오늘의 증거를 남겨두기 위함'이란 말을 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오늘이 아니었으면 모두 길을 잃고마는 어제와 내일일 뿐이다. “우리는 고유명사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이 애매해 단서를 남겨야 합니다.” 나는 결국 나에게 레터를 보냈던 걸까. 코로나가 시작되고 첫 번째 여름, 난 ‘소셜 디스턴스가 아닌 ‘피지컬 디스턴스'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05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하려 한다


무인양품이 제조, 판매하는 고등어, 참치, 대구 통조림.


백신 패스의 (무조건적) 패스가 우려되는 ‘위드 코로나'이지만, 이번 주 레터 제목을 ‘너와 나와 너의 ‘위드'에 부쳐'란 제목으로 발행했다. 일본에선 우리보다 좀 먼저 ‘일상 회복'을 시작했는데, 바다 건너 이곳에서 그 ‘오늘'을 실감한다는 건 보이지 않는 ‘위드'보다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다만, 조금씩 일어나는, 실패일지 모를 첫 걸음을 시작하는 모습들이 난 아무것도 아니지 만은 않게 느껴진다. 

유니클로, 그리고 무인양품은 얼마 전 중장기 계획이란 걸 발표했고, 그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확장, 그리고 일상 인프라 브랜드로의 강화. 전혀 상반된 그림을 하고 있었다. 이동도 자유롭지 못한 시절 유니클로는 자꾸만 해외 점포를 확대하는데 설마 그건 ‘기후 위변'을 대비함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잃어버린 자유, 집에서의 시간은 늘어만가는데 무인양품의 ‘집안 수요' 확충은 아마 그런 가장 나의 공간을 지키려 함이 아닐까. 난 고작 이런 생각을 긁적였고, 그럼에도 떠오르는 작고 커다란 ‘공존'의 테마가 두둥실,  내일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건, 무인양품의 새로운 채용 정책. 기존의 기졸자에 한정되었던 틀을 풀고, 재학중 대학생들에게도 채용의 품을 넓혔다. 단기 대학, 전문 학교, 일반 대학, 대학원. 무방하고, 재학중엔 ‘무지' 점포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한다는 조건이 주어진다. 올해 9월 새로 취임한 도우젠 노리오 사장은 ‘20대에도 임원이 될 수 있는 커리어 구조를 위함'이라 이야기했는데, 이건 아마 미래, 시간에 대한 투자가 아니었을까.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 사람만큼 안전한 ‘자산’은 아마, 없으니까. 그리고 참고로 도우제 사장은 유니클로를 두 번이나 그만둔 경험이 있는, 야나이 타다시 회장이 ‘비장의 인재’라며 아끼던 인물이라는데, 유니클로와 무인양품. 난, 어쩌면 하나의 시작과 마지막을 이야기한 걸까. 새로운 하루가, 시작하려 한다. 


https://youtu.be/BxqYUbNR-c0

사카나쿠션, '잊을 수 없어요 忘れられないの'



�  그리고, 아래와 같이...레터를 매주 발행중입니다. 

https://maily.so/tokyonotable/posts/b12a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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