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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09. 2022

오직, 말로 전하다
오랜 책이 또 하루를 사는 법

말함으로 드러나는 말하지 않은 것들의 이야기, 100년 출판사의 마케팅論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으로 시작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으로 마친다. 오가와 미메이의 우화같은 이야기와 함꼐 한여름을 보내는 것도 좋고, 다자이 오사무와 야마모토 슈고로, 사카구치 안고와 타니자키 쥰이치로 등, 일본 근대 문학을 얼추 끝내자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설령 그게 실패로 끝난다 해도, 사카구치 안고의 출구 없는 좌절 속에 한참을 빠져 앓는다고 하더라도, 아마 괜찮다. 지금은 여름, 여름이란 늘 그런 법이다.
혹은 좀 가볍게 이사카 코타로의 추리 소설이나 미야자와 겐지의 청량한 동화 같은 걸로 여름을 지내다 보면, 그 해 여름은 기분 탓인지 조금은 상쾌하게 흘러가는 것도 같다. 한 권, 한 권 읽은 책들이 곁에 쌓이며 난 아주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은 느낌 느낀다. 이 역시, 기분 탓이겠지만 여름은 늘, 그렇게 흐르고 있다. 지난 2022년 7월, 일본의 100년 전통 출판사 ‘신쵸사(新潮社)’가, 올해로 47번째 여름의 북페어 ‘신초문고와 100권’을 다시 또 시작했다.


여름이 찾아오면, 겨울과는 달리 1년 한복판의 조금은 널널한 그 시기가 찾아오면,  ‘이번 여름 해야 할 OO’와 같은 건, 우리 여름의 정례적 루틴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겨울이야 한 해의 마지막, 그리고 시작이 교차하는 시기이니 그만큼 정신이 없어서도 이지만, 여름이란 늘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달리 말해 나의 120%쯤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마구 샘솟는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뙤약볕에 일렁이는 아스팔트 아지랑이에, 쨍한 하늘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에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고 자란 꼬마 시절의 어른이 있을까. 말하자면 학생 때의 여름 방학, 바로 그 텐션. 

그런 이유로 일본 출판계에선 바로 그 계절, 특히나 여름 방학을 ‘새로운 독서층의 유입 시기’라 부르는데, ‘신쵸사’는 일찌감치 1974년부터 바로 그 여름(방학)을 공략하기 시작, 무려 50년 가까이 북페어 ‘신쵸문고와 100권’을 지속해오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나 나츠메 소세키와 같은 근대 일본 문학들로 주로 구성되고, 근래엔 이사카 코타로와 미나토 카나에와 같은 현대 문학까지 그 사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목적은 고전을 젊은 세대에 소개하는 것. 그렇게 과거 작품을 동시대의 오늘에 데려놓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마, 돈을 버는 일. 

하지만 세월이 한가득 쌓인 그 이야기를 어떻게 오늘, 그 한복판에 데려올 수 있을까. 1백년 출판사의 라인업이라 하지만, 그만큼 세월의 갭을 매우기에 이 시대의 하루는 그저 빨리 지나갈 뿐이다. 요즘은 유튜브만 켜봐도 10분 안팎으로 정리된 다자이 오사무, 나츠메 소세키가 수두룩하니까. 

근래의 출판 시장이란, 콘텐츠의 범람, 더구나 요약 줄거리만을 ‘골라 읽는’, ‘패스트 리딩’의 시대이기도 하다.


패스트 리딩 시대에, 고전 문학을 읽는 '여름'



하지만 ‘신쵸사’의 그 100권을 이곳으로 데려오는 건, 그러니까 북페어, 그 광고의 수단 방식이란, 단 한줄의 카피로 결정난다. 일본 문학의 고전이라고 어려운 말들을 가득, 구구절절 읊으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말로서 승부한다. 

먼저, ‘신쵸문고’의 여름 북 페어 광고는 신문에 게재된다. 1974년 북페어를 시작한 1회부터 지금까지 ‘종이 신문’에 광고를 집행한다’는 그 방침에 변화는 없고, 여기엔 꼭 그래야만 하는, 광고의 구성 요소를 매체, 상품, 크리에이티브라 할 때, 매체는 반듯이 종이 신문이어야만 한다는, 절대적 이유가 있다. 초기부터 기획에 참여한 ‘신쵸사’ 홍보 선전부의 이시다이라 사토시 차장은 “사회적 신뢰도가 높다’는 면에서 신문은 지금까지도 여타 매스 미디어를 압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뉴스가 너무 많아 무얼 믿어야 할지 혼란한 시절에 바로 그 ‘신뢰성.’ 광고의 구성 요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필요충분의 요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신문이란 매체가 가지는 ‘뉴스성.

2014년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이 연재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 ‘신쵸사’는 당시 개봉해 대히트중이던 지브리 애니메이션 ‘추억의 마니’의 원작과 엮어, 100권을 꾸렸다. 즉, 타이밍을 활용했다. 그에 더해 ‘마음’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랴쇼몽’ 등 대표 고전 8작품은 리커버 판으을 다시 제작, 색다른 100원을 완성했다. 말하자면 1914년 쓰여진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이 아닌, 2014년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담은 ‘마음’을, 마치 오늘의 뉴스처럼 발신한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100주년과 지브리 애니메이션. 이 만으로도 출판계에서는 ‘핫한 뉴스’에요”라고, 이시다이라 차장은 이어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일종의 ‘물타기’처럼도 보이지만, 소위 자본 주의의 커뮤니케이션, 광고란 세계에서 이는 그저 운이 좀 많이 좋았을 뿐인 이야기이다. 나머지 99권의 책들이 상승효과를 등에 업고 전에 없는 판매를 기록했다는 건, 광고가 살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마도 가장 중요할 바로 카피. 100주년이란 게 매번 찾아와 주는 것도 아니고, 찰떡같이 궁합을 맞출 영화가 계속 개봉해주는 것도 아닌 가운데, 역시나 ‘신쵸문고’의 ‘여름 북 페어’를 지속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말, 카피의 힘이다. 신문 광고란 지면에 제한이 있지만 매일 발행된다는 시간의 연속성을 갖춘 매체이다. 그리고 ‘신쵸문고’는 이를 적절히, 잘 활용할 줄 안다. 가령, 2019년 7월 13일자 '아사히 신문'에 게재된 광고 카피는 ‘이 감정은 뭘까(この感情はなんだろう)’였다. 그야말로 ‘이 문장은 뭐지?’싶은 카피였는데, 당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코로나 1년차, 갑작스레 모든 게 불확실해진 가운데 찾아온 여름, 이 광고는 아마 그렇게 말문을 띠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신쵸문고’는 일종의 속편격의 광고를 공개했다. 똑같이 샛노란 바탕에 같은 레이아웃, 달라지지 않은 디자인에 하루가 지나 광고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책은, 곁에 있어요.(本は、そばにいるよ).’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무어라 부연하지 않아도, 100권의 책들이 이미 다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한. 책으로 왜인지 내일을 보호받고 있는 이 감각을, 나만이 느꼈을까. 이 짧은 카피 한 줄은 이후 SNS에 공유되며 화제가 되었고, 결국 '신쵸문고'의 그 100권을 실어 나르는 건, 백마디 문장이 아닌 오늘이란 시절을 함꼐하는 단 한 줄의 진심 어린 문장이었다. 반세기나 지속되는 그 신문 광고는 설마, SNS와 궁합이 좋았던 걸까. 

100권이란 어마어마한 텍스트의 물적 질량에 다름 아니지만, 그를 포괄해 전달하는 건, 단 하나의 기억에 남는 문장. 2022년엔 인기 틱토커와 콜라보를 진행, 15초의 책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100년 역사의 출판사 신초문고는 요즘, SNS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틱톡, 다자이 오사무를 읽다



지난 2021년 여름, 일본에선 좀 별난 베스트셀러가 탄생했다. SF 작가로 알려진 츠츠이 야스타카의 1989년작 ‘잔상에 립스틱을(残像に口紅を)’이 왜인지, 갑작스레 상위 판매 순위권에 올랐다. 이 소설은 ‘세상에서 글자 하나가 사라진다는’ 설정 자체가 좀 독특한, 그래서 나름의 마니아 팬을  가진 작품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30년이 지난 그 이야기가 다시 이곳에 소환될 이유는, 딱히 없다. 책이란 늘 신간이 신간을 밀어내고,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넘어서며, 그렇게 잊혀지는 한 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해 7월 14일 한 인기 틱토커가 츠츠이 씨의 이 소설을 얘기하기 시작했을 때, 30만 팔로워를 보유한 틱톡명 ‘켄고 씨’가 300페이지 넘는 ‘잔상에 립스틱'을 단 15초 안에 담아 발신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서점 창고에 잠자고 있던 재고가 하나둘 팔리기 시작했고, 곧 동이나 단 1주 만에 3만 5천 부를 증쇄. 그 해가 끝날 무렵에는 무려 누계 판매부수 1백 만부를 찍는 일이 벌어졌다. 4반 세기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는 이현상, 혹은 비현실. 이렇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세우는 책이 또 있을까. 아니, SNS란 이렇게나 문자 친화적이었을까.



본 책의 판권을 담당하는, 프로모션 담당자 코니시 타츠야 씨는 ‘틱톡의 화법이 보는 이에게 말을 거는 투인지라 30년 넘는 세월의 갭도 좁혀주는 효과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아니 그래서인지 실제 일본에선 틱톡을 활용한 책 마케팅법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이다. 같은 해 겨울 ‘소학관(小学館)’은 자사 인기 소년 만화 잡지 ‘주간 소년 선데이’를 10만 팔로워를 갖고있는 또 한 명의 틱토커 ‘서점인 하나(書店員はな)’ 씨와 콜라보, 15초 짜리 영상을 수 십개 제작, 발신했고, 토털 수 천 만의 PV수를 기록했다. 책 시장의 여름 장사 치고는 단연, 성공한 수치이다. 심지어 근래엔 이런 틱토커들을 가리켜 ‘새로운 유형의 ‘센쇼가’라 부르기까지 하는데, 가장 오래된 미디어와 가장 지금의 미디어가 공존하는 기이한 시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다만, 확실한 건 책 읽는 틱토커, 그들은 요즘 여느 출판 관계자보다도 실적 좋은 인플루언서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3_cAASoAckE?feature=share


그런데 틱톡의 이 책을 말하는 화법이, 역으로 책을 소개하는 신문 광고의 카피와 좀 닮아있다. 

1989년 발간된 소설을 2021년 여름의 베스트셀러로 끌어올린 켄고 씨의 영상은 ‘만약, 이 세상에서 ‘아(あ)’라는 글자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나요?’란 제목으로 시작한다. 바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다.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시작하고, 조금의 서먹함도 없이, 30년 전 소설이지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어투로 이야기를 꺼낸다. 츠츠이 씨의 소설, 그 세계의 미스테리함을 담아내는 데에도 가뿐히 성공하고 있다. 책의 소갯글로서, 전혀 모자라지가 않다. 종이가 아닌, 스마트폰 화면에 쓰여질 뿐, 신문에 게재되는'신쵸사'의 카피와 무엇이 다르고 또 같을까. 

켄고 씨는 틱톡 책 영상에 대해, ‘책을 보지 못한 사람을 항상 의식하며 만든다’는 말을 했다. 이는 곧, 최대한 보는 이의 입장에서 만들고 발신한다는 이야기이고, 그러니까 중요한 건 미디어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거리,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거리감이다. 비록 1989년, 30년 전 쓰여진 이야기이지만, 철저히 오늘의 시점에서 MZ의 감각으로 전달하고, 독자 아닌 시청자는 그와 같은 시점과 감각으로 반응한다. 아무리 오래된 소재라 하더라도, 너와 내가 공감하는 주제라면 사실 별 지장은 없다. 그것이 설령 틱톡이라 할지라도, 신문 하단의 광고라 하더라도, 공감을 얻는다는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를 공유한다.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아무리 발전, 변화해도, 그 과정이란 여지없이 '말'을 경유하는 너와 나의 오고감이라는 사실. 

틱톡과 100권의 책과의 만남은 그 변하지 않는 책과의 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주고 있는 건 아닐까. 디지털 시대에도 그 맘이 퇴색되는 일은 없고, 틱톡은 그렇게 조금은 책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츠츠이의 ‘츠’ 자도 모르던 젊은 독자가 생겨나고. 30년 전 아빠 세대의 소설을 사고, 읽는 MZ 독자가 일어난고. 아무튼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 시절 책은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수수께끼의 열쇠를 하나 얻었다. 


 말의 크리에이티브, 그 100년 



그리고 한 가지 돌아봐야 하는 건, 이와 같은 틱톡의 화법을 ‘신쵸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한 때 ‘독서의 강국’이라 불리던 시절, '신쵸사'는 중고등학생의 여름을 공략, 1970년대의 ‘문고본 러쉬’ 현상을 만들어냈다. 80~90년대에는 이토이 시게사토, 나카하타 타카시 등 유명 카피라이터를 광고 제작에 등용해, ‘문고는 오락 문화의 왕도’, ‘ 여름 방학은 서점에 가는 시간’이란 이미지를 정착시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말에 의한 크리에이티브’를 오랜 세월, 수 십년간 실천하고 있는 출판사이다. 물론 출판사가 제작하는 광고이니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왜 SNS와 틱톡은 책을 이야기하며 '신쵸사'의 그 화법을 차용하고 있는 걸까. 혹은 그렇게 되어가는 걸까.

2022년 여름 공개된 광고를 보면, 장문의 글이 먼저 눈에 띈다. ‘이번 여름, 100권의 책을 읽는 100개의 이유(この夏、100冊を読む100の理由)’란 메인 카피를 시작으로, 그 100개의 이유가 문장 그대로 쓰여지기 시작한다. 바탕은 2015년 광고 시안을 리뉴얼하며 채택한 샛노랑에, ‘신쵸문고’ 캐릭터 ‘큔타’를 귀엽게 그려넣기는 했지만, 광고를 구성하는 건 압도적으로 문장, 텍스트, 글자이다. 즉, ‘작은 읽기’를 통해 ‘커다란 읽기’를 제안하는 형식을 이 광고는 취하고 있다. ‘글자의 집합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또 하나의 말과 말로서 어필하는 것이다. 이미지와 감각, 말에 의존하지 않는 광고를 추구하는 현대 광고 시장을 생각하면 지극히 구시대의, 그야말로 철지난 소통의 방식이다. 게다가 광고가 게재된 건 '아사히 신문'을 비롯 일본 주요 신문사 14곳. 요즘 신문을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다시 또 강조하면, 여기엔 반듯이 글이어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존재한다.



먼저 100권. 그 타이틀을 온전히 다 담아낼 매체란 신문, 아니고 없을 것이고, 텍스트, 나아가 글자란 쓰는 사람과 읽는 이, 보는 시간과 자리, 상황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 그렇게 복합적, 가장 넓은 세계를 끌어내는 언어이기도 하다. 메인 카페 ‘이번 여름, 100권의 책을 읽는 100개의 이유'을 다시 보면, 이 말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곧 보는 이를 생각하게하고 나아가 행동, 어쩌면 책을 꺼내보게 한다. 오직 문장 하나로, 단 하나의 말과 말의 결합으로, 그리고 보이지 않는 너와 나 사이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그를 수행한다. 어쩌면 말이란, 2차원의 그림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 말의 표현이란, 현실을 구분하는 도구로서의 차원을 넘어 보다 넓은 지형의 너와 나의 맘을 오가는, 긴밀하고 드넓은 우주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또 하나의 말을 기다리며.

‘말이란 함으로서, 말 됨으로서 하지 않은, 되지 않은 것까지 드러내는 이상한 효과를 갖는다’고, 2014년 본 광고의 카피를 작업했던 이토이 시게사토는 이야기한다. 


말하지 않고, 전하다

여백의 커뮤니케이션



코로나가 시작하고 지난 3년, ‘신초문고’의  여름 북페어, 그 광고의 카피들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2020년에는 ‘책은, 곁에 있어요(本は、そばにいるよ)’, 그 다음 해는‘너의 등을 밀어줄 말(背中を押してくれるコトバ), 그리고 이듬해는 ‘여름이니까(夏だから)’와 앞에서 이야기한 2022년의’ 이번 여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100개의 이유. 은율도, 라임도 보기좋게 만져진 이 문장들은, 그 자체만 놓고봐도 책을 추천하기에, 독서를 권하기에 썩 괜찮은 말들이다. 동시에 어느 상황에서도 웬만하면 틀리지 않다. 

다만, 이 광고가 세상에 나오던 시절, 여름이지만 조금은 달랐던 여름, 그 무렵을 우린 알고있고,  마스크를 쓰고, 약속은 미뤄지고, 돌연 찾아온 낯선 비일상의 일상 속에서, 이 문장의 숨겨진, 가리워진 의미를 아마 난, 그리고 너도 이미 알고있을 것이다. 말되어지지 않은 것들을 알아차리는 직감을, 우린 아마 갖고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는 곧 말의 성취이기도 하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여름이면 고전, 명작 100선을 간추려 새로이 전하는 그들의 광고 방식은, 다름아닌 우리 일상 속의 말, 그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이를 테면, 2020년 앞서 이야기한 ‘이 감정은 뭐지?’와 ‘책은, 곁에 있어요’란 메인 카피는, 이후 수 십 줄의 바디 카피로 이어진다. 두 메인 카피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말 되어지지 않은 너의 나의 감정’이 빼곡히 채우고 있다. 


‘병 중에도, 전쟁 중에도, 미증유의 불경기에도, 그리고 실연을 했을 때도, 실패 그 현장에도, 슬픈 이별에서도, 무엇이라 해도, 인류는 포기하지 않아. 그런 응원이, 지혜가, 힌트가, 책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 여름도, 책방으로.”와 같이. 


물론 다 아는, 모르지 않는, 어디 하나 특별한 표현이 담긴 문장도 아니지만, 때로는 새삼, 부러 말함으로써 드느끼게 되는,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너무나 당연해, 혹은 흔하고 평범해 놓치고 가는, 그렇게 보여지지 않은, 동시에 말되지 않은 것들의 의미, 혹은 가치가 숨어 숨쉬는 게 곧,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작스레 변해버린 현실에서 그렇게 가리워진 우리 일상 대부분의 것들은 이렇게 새삼, 다시 말 되어질 필요가 있다. 나가오카 씨의 말을 다시 한 번 빌리면 말을 한다는 건 보이지 않던 의미를 도출하는 일아고, 형태를 갖지 않은 마음, 감정을 소리, 글자로 남겨놓는 행위, 그렇게 오늘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는 “말, 글자를 쓴다는 행위는 수천 년 역사 속에 아날로그로 남아, 살아있는 자산’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그 오래된 자산을 ‘신쵸문고’는계승한다. 아마도 곧 희밍이라서? 어제를 돌아보며 내일을 다짐하듯이? 아니면 내일에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일상, 곧 삶이기 때문에.



2018년 ‘신쵸문고’의 북페어는 고민을 주제로 하며, 이런 카피를 썼다. ‘여름이니까.’ 아마도 가장 짧은 한 줄이었는데, 뒤이어 응모를 통해 수집된 독자들의 다양한 고민들이 쓰여졌고, 그렇게 너와 나의 고민이 한바탕 이야기를 한 뒤, 카피는 다시 이렇게 말을 닫는다. ‘너를 생각했더니 이 100권이 되었습니다(きみのことを思ったら、この100冊になりました).’ 책을 말한다는 건 곧 로망이었을까.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과 어쩌면 같은 감각의 일상이었을까. 말이 다 지나가고 마음 속 남아있는 이 아련한 감정은 또 무엇일까. 아마도 이 광고의 포인트는 100년 전 소설을 다시 오늘의 일상으로 품어내는 일종의 '계기'였겠지만, 2019년의 카피 그대로 ‘그 감정은 또 뭘까. 당시 이 광고는 카피를 작업한 이야이 요우코 씨에게 ‘도쿄 카피라이터 클럽(TCC)’ 신인상을 안겼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신쵸문고’의 그 100권이란 게 자체로 하나의 가치, 간판, 얼굴이라 느끼게 됐어요. 그 100권 안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세계가 있고 재미는 물론 명작들 투성이기에 그게 곧 바디 카피라 생각했습니다.” 



100권이라는 건 하나의 숫자로 간편히 얼버무려 있지만, 사실 그 안엔 수 십 년 세월의 서로 다른 세계가 응축되어 있고, 그건 아마 우리 세월과도 비슷하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너의 속마음처럼, 글로 적으면서 비로소 드러나는 너와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이라는 세계. 고작 광고이면서도 사람 맘을 이렇게 울리는 건, 말 그 안에 다 담기지 못한 너와 나의 이야기가 새어나와서가 아닐까. ‘신쵸문고’의 말에 의한 크리에이티브는 그렇게 다시 한 번 오랜 책들의 힘을 믿고, 그 책은 우리 일상을 긍정하게 한다. 어떤 크리에이티브도 대신하지 못할 좀 물컹한 소비자에의 유혹, 나아가 말하고 쓴다는 것에 대한 믿음. 이 독서의 모티베이션이란, 또 한 번의 100권(년)을 다짐, 책을 읽는 일상은 그랗게 계속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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