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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14. 2022

고작 비닐 봉다리, '공존'을 생각하다

'읽는 봉지'가 이야기하는, 버리지 않는다는 옵션




2022년 4월 매장 내 일회용잔 사용이 다시 금지됐다. 코로나로 잠시 유보되었던 재활용품 사용의 제한이 상황이 조금씩 호전되며 다시금 허리를 졸라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테이크아웃 잔에 마시다 들고 나와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여름의 특권을, 더이상 누릴 수 없다. 물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야기한 환경 이슈에 따른 ‘작은 실천’에 다름 아지만, 아마 진짜 이유는 매장 운영이 불가능한 시절 ‘테이크아웃 장사와 일회용잔’이 세트로 한시, 허용되었을 뿐인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지구가 아파하는 만큼, 우리 일상도 아프니까. 환경을 지킨다는 건 그렇게 우리 삶과 긴밀하게 관계한다. 사람도 여지없이 자연의 일부, 지구의 1인인 것이다.



플라스틱 절감을 위해 테이크아웃 잔을 줄인다 해도, 요즘은 배달 한 번에 테이크아웃 컵 10개 분량은 쓰레기가 나오고 마는 시절이다. 일회용 컵이 좀 줄었다 해도, 코로나 이후 필수템이 되어버린 마스크, 손소독제, 그리고 검사 키트 속 플라스틱은 쌓여간다. 그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 우린, 정녕 플라스틱과 영원한 이별을 할 수 있을까. 플라스틱과 함께 살아오길  200여 년. 어쩌면 이곳에 필요한 건, 줄이다, 곧 ‘쓰지않다가 아닌 ‘잘 쓰다’거나 ‘오래 쓰다’와 같은, 보다 지속가능의 옵션일지 모른다.

지난 2020년 7월, 일본에선 한 편의점이 소설이 적힌 비닐 봉투를 공개했다. 이름하여 ‘읽는 봉지(読むレジ袋).’ 요시모토 바나나,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 쓰여진 비닐 봉지인데,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모두가 플라스틱 절감을 말하는 시대, 어느 비닐 봉투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쓰레기 이전의,

비닐 봉지를 생각하다



2020년 7월, 갑작스런 코로나 일상에 모두가 정신없던 가운데, 도쿄에선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간 무료로 제공해오던 편의점, 슈퍼 등에서의 비닐 봉지의 유료화, 돈을 받기로 결정한 것인데, 이미 2018년 유료화가 시작된 우리와 비교하면 좀 늦은 조치이다. 이유야 별 새로울 것도 없이, 폐기물, 자원 제약,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와 지구 온난화 등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의 위기감에 의한 것. 나아가 유료화를 통해 아무렇지 않게 받고 쓰고 버리던 비닐 봉투를 새삼 생각,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걸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생각, 고민할 수 있는 계기’란 말이 다소 생소한데, 당시 일본 환경청이 공개한 발표 내용은 이렇게 적고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받았던 비닐 봉투를 유료화함으로서 정말 그게 필요한지 생각해보고,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걸 목적으로 한다.”

물건을 사고 그를 담는 용도로 받는 비닐 봉지가 하루아침에 돈을 주고 사야하는 것이 되었다면, 보통은 그로 인한 비닐 봉지 사용의 감소, 플라스틱 쓰레기의 절감 정도를 떠올린다. 요즘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의 논리이다. 하지만 여기엔 그렇게 간과되는 나의 일상이란 항목의 자리가 하나 더 있다.  유료화를 통해 사용량을 줄이고, 덩달아 쓰레기도 덜 발생케 하는 것 뿐 아니라, 말하자면 부정적 측면에서의 비닐 봉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일상의 한 요소로서, 나의 일상을 도와준 물건으로서 비닐 봉지로서의 내일을 고민하고 있다. 즉, 쓰레기가 아닌, 쓰레기가 되기 이전 비닐 봉지와의 일상을 생각하는 것이다.


비닐 봉지의 유료화를 알리는 슈퍼,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ekōD Works의 콘비니는 에코백을 좋아해


그리고 실제 수 십년 공짜였던 비닐 봉지가 유료화 되었을 때, 일본 내에선 이러한 분위기가 있었다.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 편의점 3사는 유료화의 지침을 발표하면서도 일방적 고지가 아닌 ‘변해가는 고지.’ 봉투 구입의 의향을 표현하는 카드를 제작하거나, 유료 봉지를 구입한 고객에게 에코백을 무료 증정하거나, 나아가 바이오 소재 플라스틱이 25% 이상 사용된 봉투로 대체해,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무료 배포를 이어갔다. 바이오소재가 25% 이상 사용된 봉투는 유료화 비적용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비닐 봉지와의 단절에 신중했다. 그도 모자라 한 스타트업 기업은, 편의점 비닐 봉투 모양 그대로 에코백을 제작, 비닐 봉투 아닌 비닐 봉투를 판매했다. 고작 비닐 봉다리인데, 그게 이럴 만한 일일까.

아무튼 비닐 봉지가 아닌, 비닐 봉지 쓰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왜인지 그곳엔 있다. 다분히 일본 국민의 기질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쉽게, 그리고 간편히, 간단하게 버리지 못하는 어제의, 추억이 되려하기 전 일상을 그리는 마음이 그곳엔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 절감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나의 일상이란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고 버리는 비닐 봉지이지만, 그게 매일 지속된다는 건 우리가 모르는 쓸모, 부가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는 건, 앞에서 이야기한 ‘읽는 봉지’의 개발자, 온라인 벼룩시장 플랫폼 ‘메르카리(メルカリ)’의 프로덕 담당자 한승훈 씨이다. 애초, 플라스틱 쓰레기가 문제인 건 버리기 때문에. 무분별한 '버리는 행동'으로 인한. ‘읽는 봉지’는 편의점 체인 '로손'과 벼룩시장 '메르카리'의 합작이기도 하다.


버리지 않는다는 옵션,

읽는 봉지의 탄생



‘읽는 봉지’는 말그대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비닐 봉지이다. 가로, 세로 30 X 38cm, 너비 15cm 기존의 편의점 봉지 규격 그대로 봉지 뒷면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사카 코타로,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이 쓰여있다. 평소라면 편의점 로고거나 이벤트 상품의 광고 자리로 쓰였을 비닐 봉지를, 마치 원고지처럼 활용한다. 앞면에 표지처럼 제목이, 뒷면엔 글이, 그리고 하양 바탕에 빨간색 글자는 흡사  200자 원고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야말로 별로 버리고 싶지 않은 비닐 봉지이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 작가의 글이 쓰여있다 해도, 이걸 굳이 읽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혹은 얼마나 읽을까. 그것도 플라스틱 쓰레기의 절감을 말하는 시대에.

하지만 어쩌면 ‘계기.’ 2020년 6월, 비닐 봉투의 유료화가 시작되기 직전 공개된 이 소설을 적은 비닐 봉투는 봉지에 대한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장치에 보다 더 가깝다. 무의식적으로 쓰고 버리는 봉지에 '읽다'라는 전에 없던 행동을 하나 삽입하며 발생하는 어떤 멈춤의 시간. 로손 상품 개발 본부 와시즈 히로코 부장은 “평소 쓰고 버리기 마련인 편의점 비닐 봉지에 가치를 부여하며 새삼 물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라고 개발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당연한 일상은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자주 쓰는 일용품은 생각할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하는 것처럼, 비닐 봉지 역시 너무나 당연해, 자주 쓰고 버리느라 간과되는 우리 일상은 아니었을까. 한 때 나에게 필요했던, 그리고 너에게도 쓸모를 가졌던. 코로나 전 일본 내 연간 비닐 봉투 사용량은 450억 장. 그리고 이는 곧 버려지는 비닐 봉지의 양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쓰레기가 문제인 건 곧, 그걸 버리기 때문이다.


로손과 ‘메르카리’의 ‘읽는 봉지’는 각각 100장 씩 단 300장 제작됐다. 일본 전국 1천 곳에 운영되는 '로손'이 아닌 138개 점포를 가진 ‘내츄럴 로손’에서 단 3일간 무료 배포됐다. 그러니까, 로손과 ‘메르카리’의 이 비닐 봉투가 새로운 비닐 봉지의 역할을 주장하며 만들어진 게 아니다. 비닐 봉지와의 추억을 그리며 유료화 시행에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 또한, 당연 아니다. 다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이유로 하루 아침에 일상 저편으로 버려버리는, 쉽고 간단하고 간편한 대책 이전, 쓰고 버린다는 것, 물건이 가진 가치, 일상에 가치를 가지는 것들에 대해 잠시 멈춰 생각, 사고, 고민할 시간적 여유의 기회를만들어보자는 게, 이 봉지의 아마 가장 큰 역할이다. 바나나 씨의 소설을 읽으며 설레거나 야스타카 씨의 문장에 감탄하거나 이사카 추리 소설에 맘을 조리면서.

‘메르카리’ 한승훈 담당자는 “버려지기 마련인 비닐 봉투에 소설이라는 부가가치를 더 함으로써, 내 주변에 있는 물건에도 하나하나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고, 물건에 대해 새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세상 모든 쓰레기는 사용 그 후의 잔여물이라는 것, 곧 일상 그 후라는 사실. 버린다는 건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곳에 ‘다음’은, 아마 없다. 친환경이란 또 한 번의 건강한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실천임에도, 우린 쓰레기를 너무 소홀히 해왔는지 모른다.


고작 0.3kg의,

잠자는 가치를 깨우다



그리하여 이 ‘읽는 봉지’는, 봉지 주제에 ‘오래 쓰기’를 이야기한다. 어차피 버려질 걸 알면서 잠재된 가치를 드러낸다. 그렇게 버려짐의 봉지가 아닌, 몰랐던 가치를 발견, 발휘하는 봉지가 된다. 사실 쓸모라는 건 매우 주관적이라 상대에 따라, 시기와 경우에 따라서 매우 달라지고, 때론 없던 쓸모가 새로 생겨나기도 한다. 벼룩시장의 원리가 애초 이런 ‘상대적 쓸모’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더불어 이번 봉지 위에 쓰여진 세 작품의 공통 주제는 ‘물건.’ 이는 사실 같은 해 4월, 보다 일찍 진행한 물건과 쓸모에 대한 소설 프로젝트, ‘모노가타리 by mercar’의 일환이기도 하다. '메르카리'는 인기 작가 10명에게 물건에 대한 소설을 의뢰, 트위터의 4장의 이미지로 공개했다. 몇 번의 타래를 엮어서. 묻히고 잊혀지기 쉬운, 그 휘발성의 자리에. 단 140자의 트윗과 금방 쓰고 버리는 비닐 봉투, 이 '오묘적절'한 조합은 또 뭘까. 그러니까 이는 리사이클을 하는 기업의 자기 고찰적 성격의 프로젝트이기도 한 것이다.

‘일상 가까이 물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끌어내, 매일의 생활 속 평소보다 조금은 더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 이런 기획을 떠올렸습니다.’ ‘메르카리’는 본 프로젝트를 이렇게 소개했다. 물건은 일본어로 모노(もの), 이야기는 모노가타리(ものがたり). 그저 말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엔 너무나 익숙해 알아차리지 못할 뿐, 이용되기를, 발견되기를, 그러니까 가치를 발휘할 그 언젠가를 기다리는, 일상의 잠재된 가치가 있다.



이사카 코타로는 늦은 밤 아들 몰래 가죽 재켓을 팔려 시도하는 아빠의 이야기를 ‘좋은사람에게 가거라!(いい人の手に渡れ!)’란 제목으로 비닐 봉지에 썼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할머니, 엄마를 거쳐 나의 왼손가락에서 빛나는 산호 반지 얘기를 ‘산호 반지(珊瑚のリング)’란 제목으로 비닐 봉지에 담았다. 봉지 한쪽에 가득 적힌 츠츠이 야스타카의 ‘오이란 빗(花魁櫛)’은, 엄마 유품 속 고가의 빗, 에도 시대 오이란이 사용했다는, 무려 거북이 등껍질로 만들었다는 빗을 발견하고, 팔가말까 고민하는 심적 좌충우돌의 이야기이다. 버려지는 물건, 이어 쓰는 물건, 그리고 잊고있던 물건의 가치가 이야기를 한다. 버려지기 직전, 비닐 봉지에서 이야기가 새어나온다. 한두번 쓰고 버리곤 했던 그 비닐 봉지가 지금, 이야기중이다.

봉지를 디자인한 야마나카 유스케 프로듀서는 ‘한 장에 다 읽을 수 있는 길이와 편하게 읽히는 비닐에서의 폰트를 궁리했고 문고본 디자인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비닐 봉지란 새삼,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메르카리’의 모토처럼, '다시 쓰다', '내가 아닌 네가 쓴다'는 건  쓸모의 확장, 곧 물건의 수명을 늘리는 일이고, ‘버리지 않는다’는 건 아마도 새로운 가치의 시작일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정말 심각하다는 요즘, 소설이 쓰인 이 비닐이 고작 얼마나 더 오래 쓰여질진, 혹은 살게될지 별로 기대할 수는 없지만, 수 십년 일상을 함께한 무엇과의 이별이라면, 보다 '이야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쓰레기가 되기 이전, 그 무언가는 분명 나와의 수 많은 일상을 기억하고 있을테니까.

고작 비닐 봉다리, 단 0.3kg의 일상. 그 작은 하루기 지금, '버리지 않는다'를 주제로 한, '잘 쓰다'와 '오래 쓰다'의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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