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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18. 2022

수상한 신장개업,
‘줄 서는 흡연구역’을 가다

고작, 꽁초가 이야기하는 '우리 함께 다시 만나는 날'





이제와 하는 이야기이지만, 갑작스레 시작된 코로나와의 일상이 바꾸어 놓은 건 비단, 의식주의 변화 만이 아니다. 동시에 그건 타인에 대한 믿음, 내가 아닌 너와의 일상을 시험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m란 숫자가 의미하는 것처럼, 감염을 조심하는 시절에 나와 타인의 관계, 곧 거리감은 안전한 생활권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에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낯선 타인과의 접촉에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고,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라 말하는 계절에 나란 개인은 점점 더 그와 그들로부터 멀어져간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의 시작, 원인 모를 불신감의 확산. 코로나 3년이 그렇게나 힘겨웠던 건 결국, 잃어버린 ‘우리’, 그 상실에서가 아니었을까. 재채기 소리에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작은 손동작에도 공포를 느끼던 '일상의 암흑기.' ‘함께’일 수 없었던 그 날들이 지금 이곳에 남긴 건 무얼까. 

코로나 1년차, 그런 와중에 도쿄에선 좀 별난 공간이 문을 열었다. 사소한 입김도 조심스런 시절에 공중 흡연소이고, ‘모이는 모든 이에게 ‘편한 시간’이란 품질을’을 모토로 한다. 얘기만 들어도 화들짝할 판인데, 대체 무슨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시대. 이건 모두 고작, 담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다.


꽁초를 버리(지 않)는 선택,

'새로운 투표'를 제안하다



지난 22년 5월, 선거를 앞둔 일본 도쿄엔 좀 괴상한 투표함이 설치되었다. 일견 우편함을 연상케 하는 박스에 당시 선거 운동에 열을 올리던 후보들 이름은 보이지 않고, 웬 설문 조사 같은 질문이 쓰여져있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건 돈인가 사랑인가.’,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용담, 아니면 생생한 뒷담화?’, 좀 더 나가면 ‘사랑은 있지만 평생 가난, 대금을 손에 넣었지만 죽을 때까지 고독, 당신의 선택은?’ 당시 일본은 제 26회 참의원 선거가 한창이었는데, 이 투표형 박스는 좀 다른 선택을 요한다. 일본 내 젊은 층 투표율의 저조는 오랜 시간 문제라고도 지적되지만, 이 별난 투표박스가 꿈꾸는 건 꽤나 다른 그림이다. 이건 바로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공존을 지향하는 공간 프로듀스 기업 THE TOBACCO의 ‘투표형 박스 재떨이’이다. 이후 이는 깨끗하고 쾌적한, 전에 없던 유형의 흡연소로도 이어진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공생을 모토로 ‘주식회사 코소도(コソド)’의 THE TOBACCO는,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시부야 센터가이(渋谷センター街 ), 우다가와 클라스트 스트리트(宇⽥川クランクストリート)에, 모두 5대의 ‘투표형 재떨이’를 설치했다. 질문에 답을 하며 자연스레 담배 꽁초를 (투표함으로 위장한) 쓰리게통에 버리는 식이고, 그렇게 길바닥에 버려진 꽁초를 줄여나가는 시도이다. 그러니까 5년제 국회의원에 걸어보는 먼 미래가 아닌, 바로 내 발끝 밑에 내일을 위해 한 표?를 던진다. 다소 장난처럼도 느껴지는데, 담배 꽁초가 투표함을 만난 이유는 뭘까. 투표함 아닌 쓰레기통을 설치한 ‘코소도’의 CEO 야마시타 고로는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상생을 위해 먼저 담배 꽁초를 줄이자 생각했습니다”라 이야기했다. 코로나 이후 더욱더 흡연의 자리가 위축된 시절, 그렇게 피고 안피고로 나뉘어진 시대. 투표함을 위시한 이 재떨이는 설마 지금, 투표를 경유해 너와의 대화를 제안하는 걸까.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이란 때로 엉뚱한 샛길에서 시작하곤 한다.


피자 위 파인애플의 취향을 묻는 재떨이 박스부터 드라마 속 좋아하는 캐릭터,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 우승팀의 예측과 중국 길거리 버젼의 투표함 재떨이(왼쪽 좌부터 시계 방향)


단순히 투표함으로 디자인된 재떨이이지만, 애초 투표란 내일 이후의 일상을 그려가듯이 ‘더 토바코’의 이 재떨이 역시 투표(버리다)라는 행위를 통해 담배 문화의 미래를 개선하는 역할을 갖는다. 먼저, 투표함이 설치된 건 평소 꽁초가 많이 버려지기로 악명높은 지역이고, 야마시타는 가장 중요한 건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감각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투표 용지를 넣는다’와 ‘꽁초를 버린다’는 행위 사이의 유사성을 이용해, 능동적으로 꽁초를 ‘버리지 않는’ 방식, 혹은 습관을 설계하는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담배 꽁초를 버리는 이유란 질문에 무의식이라 답한 이가 절반을 넘었는데, 그 사실을 감안하면 꽤나 적절한 조치의 계획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 ‘투표형 재떨이’는 버리다는 행위를 무의식에서 다시 의식, 나아가 ‘의식을 갖고 행동하다’라는 범주의 실천으로 데려오려 한다. 

그리고 실제 이 투표는 꽤 좋은 효과를 보였다. 앞서 이야기한 지역에서의 버려진 꽁초는 전에 비해 90% 정도가 줄었고, 그에 더해 이와 꼭 같은 시도는 근래 영국, 미국, 그리고 한국으로도 확장하는 추세라, 연 400만 개의 꽁초가 버려진다는 영국의 경우 46%의 꽁초 쓰레기를 줄였다는 결과도 나왔다. 당시 영국의 투표함에 적혔던 질문은, Best Phone? 당신이 iphone을 고르든, android를 택하든 어쨋든 꽁초는 (길가에) 버려지지 않았다.


담배의 시간을,

'함께' 살다

 


오래 전, 그리고 지금도 일본의 담배인삼공사 격인 JT의 공식 캐치카피는 ‘사람의 시간을 생각하다(人の、時を思う)’이다. 고작 담배 한 대를 이야기하면서 시간까지 논하는 게, 다소 거창하다 느끼기도 하지만, 흡연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때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란, 곧 당신이 차를 마시며 느끼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엄연히 휴식, 즉 일상이다. 그리고 ‘더 타바코’의 투표형 재떨이 역시, 바로 이러한 ‘담배와의 시간’을 바탕에 하고있다. 애초 시부야의 두 거리가 투표함 설치 지역으로 선정된 건, 단순히 그래보이는 혹은 그런 이미지로 인한 결정이 아니다. 철저한 조사, 그리고 분석에 의한 것이었다. ‘더 타바코’는 2020년, 길가에 버려진 꽁초의 실태를 조사하는 리서치 기획 ‘꽁초 도감 프로젝트(ポイ捨て図鑑プロジェクト)’란 걸 실시했다. 동일한 이름의 어플을 개발했고, 버려진 꽁초를 발견한 이가 그를 촬영, 버려진 장소의 위치 정보와 함께 업로드한 뒤, 확산시키는 시스템이다. 야마시타 씨는 이를 ‘재떨이에 가지 못해 미아가 된 꽁초 몬스터’라 지칭하기도 했는데, 심각하기만 꽁초 문제를 좀 다른 감각으로 풀어보려는 ‘의도된 놀이화’ 전략이다.



“담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간접흡연과 버려진 꽁초 때문이라 생각해요.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기 위해 긍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판단했고 포켓몬처럼 게임 감각으로 해결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장난같은 시도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모르지만, 전세계적으로 버려지는 꽁초의 수가 매년 4조 5천억 개라는 어마무시한 현실을 감안하면, 의외로 유효한 방식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모아진 정보는 이후 흡연소 설치 지역을 선정하는데 활용이 된다. 거리에 버려진 꽁초의 실태를 가시화해 흡연 유동 인구의 밀집 지역을 추려낼 수 있고, 즉 흡연소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다. 담배가 소비되고 꽁초가 버려지기까지, 마치 ‘담배의 일생’을 아우르듯 꽁초의 문제, 나아가 흡연과 비흡연, 분연의 문제를 풀어간다. 달리 말하면, 담배를 팔기만 하고 그 후는 책임지지 않는 사업주의 마음이 아니라, 담배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함께하는, 담배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흡연, 혹은 비흡자와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게임, 또는 리서치인 것이다. 어쩌면 담배는 이제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최대 10분 정도. 이는 곧 대체로 꽁초가 버려진 반경 100m 이내에서 담배를 소비했다고 예측할 수 있어요. 이를 데이터로 실증하기 위해 버려진 꽁초를 가시화하자 생각했고, 흡연소 설치와 청소 활동 등 다음 스텝을 위한 데이터 수집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더 타바코’는 2020년 칸다(神田)와 아카사카(赤坂)를 시작으로, 지난 3년 새 도쿄 내 모두 10곳의 흡연소를 설치, 오픈했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알고있던 답답하고 어두운, 더럽고 담배 연기 풀풀 풍기는 흡연소가 전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토 ‘모이는 모든 이에게 ‘편한 시간’이란 품질’을 충족시키는, 전에 없던 그야말로 쾌적한 흡연소이다. 

첫번째 ‘공중흡연소’가 문을 연 건, 일본 내 ‘개정건강증진법(改正健康増進法)’, 실내 흡연을 원칙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 직후인데, 야마시타 씨는 당시 ‘담배를 필 수 있는 장소가 대폭 줄어들면 흡연자가 곤란한 것 뿐 아니라 길가에 꽁초까지 늘어나며 비흡연자도 곤란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 뿐 아니라 피우지 않는, 비흡연자의 편의까지 고려한 ‘흡연소’이다. 

흔히 흡연소라면 당연스레 담배를 피우는 이들만의 장소라 생각하(되)지만, 사실 그건 흡연소 밖과도 연결되어 있어 비흡연자의 일상과 분명 관계하고 있다. 흡연 구역이 줄어 거리에서의 흡연이 늘어날 때, 비흡연자는 담배 연기로부터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 흡연 문제가 제기될 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마냥 흡연 구역 설치에 대한 논쟁이 반복되지만, 어쩌면 그건 ‘흡연소’의 방식, 혹은 흡연 매너, 그리고 흡연의 일상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흡연, 담배에 불을 붙이고 꽁초를 버리기 까지. 도쿄에 늘어나는 그 흡연소는 지금, 흡연/비흡연의 방식을 새삼, 고민하고 있다. 여기에서 담배란, 새삼스럽게도 어김없이 흡연/비흡연자의 문제가 되어있다. 


줄 서는 흡연소,

마스크를 벗다



‘더 타바코’의 이상은’ 한 마디로 쾌적한 흡연과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는 ‘흡연 방식의 이노베이션’으로 이어진다. 실내 흡연이 전면 금지되던 무렵 시작된 이 흡연소 아닌 흡연소는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 환경에 대해, 새삼 고민을 한다. 가령 2020년 시행령이 실시된 직후 6월 도쿄 칸다에 문을 연 흡연소는 ‘보다 매너 좋은, 기분 좋은 분연의 실현과 흡연 문화의 발신’을 목적으로 했다. 프랑스 파리의 카페 ‘메종 키츠네’를 비롯 수 많은 살롱을 프로듀싱한 공간 디자이너 코메다 슈헤이를 데려왔고, 흡연소 바로 옆에 입구를 달리하는 카페 스페이스를 함께 설치했다. 흡사 짐 자무시의 영화 ‘커피와 담배’가 완성되었다. 더불어 담배 관련 궂즈를 팔고, 대부분 잉여 공간으로 남고마는 흡연소의 벽면을 활용해서는 전시도 기획, 그 1탄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카네야스 료의 전시가 열렸다. 그의 그림이 그려진 성냥과 라이터, 티셔츠와 토트백 등 관련 궂즈가 제작 판매되는 건, 이제 콜라보를 진행할 때 당연스레 따라붙는 공식이기도 하다. 

흡연소의 카페, 잡화점, 휴식 스페이스로의 확장. 흡연 구역은 부쩍 줄어드는 가운데, 흡연과의 일상을 점점 확장하고 있는 이 ‘흡연 아닌 흡연소'의 의미는 무얼까. ‘더 타바코’의 공중 흡연소에선 자판기의 기계 진동음이 아닌, 클래식 음악의 BGM이 흐른다.

“일반적인 흡연소는 코스트를 줄이기 위해 쳥결함이 결여된 경우가 많아요. 조명이 어둡거나 별로 좋은 이미지가 아니죠. 하지만 저희는 흡연소의 디자인을 중시했고, 조명을 밝게 설정, 소파나 의자도 배치하며 청결함을 확보하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야마시타 고로는 ‘쾌적한 흡연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의 시간을 생각하다’라 말하는 JT는 오랜 시간 흡연 매너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어쩌면 가장 핵심은 흡연의 나쁨과 폐해가 아닌, 혹은 찬반이 아니라, 그 흡연을 소비하는, 나아가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가 아닐까. 적절한 매너와 올바른 담배의 소비로 쾌적한 흡연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더 타바코’의 흡연소에선 특히 환기에 신경을 써 최고 수준이라는 비행기(3분에 1번)보다 약 300배가 강화된 40~50초 만에 1회 배기가 되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담배를 피고 나와도 옷에 냄새가 남지 않을 정도의 철저함이다. 운영 중에는 상시 스태프가 상주해 당일의 날씨, 기온과 습도 등을 고려 최적의 환경을 콘트롤 할 뿐 아니라, 안전까지 책임진다. 그야말로 네거티브한 이미지로부터 흡연을 구해오려는, 혹은 지어내려는 시도이다. 그런 이유로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는 흡연소 내 인원 제한을 시행하느라 입장을 대기하는 줄이 늘어서기도 했더는데, 세상에 이런 흡연소가 또 있을까. 


어플을 통해 모아진 꽁초의 '신상정보'는 이후 추려져 각각의 스토리가 적힌 '도감'으로 제작, 거리에 공개되었다.


쾌적함을 넘어 커피도, 알코올도, 잡화도 파는 꽤나 별난 흡연소. 하지만, 이는 근래 장르를 넘나들며 확장하던 ‘공간의 리뉴얼’과 다르다. 오히려 공간으로서의 흡연소, 점점 더 사라지는, 지워져가는 흡연의 자리를 다시, 일상의 한 구석에, 엄연한 휴식의 시간으로 데려오려는 애씀에 틀림없다. 커피를 마시는, 쇼핑을 하는 너와 다시 한 번 또 함께이고 싶어. 손님이 입구에 줄을 설 때, 야마시타 씨는 다음의 스텝을 위해 앙케이트를 진행한다고 이야기했다. 담배를 피우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행복한 미래는 무엇일까. 

모두가 조금은 마스크를 벗기 시작한 계절, 담배를 피우는 일상에도 쾌적한 내일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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