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무엇보다 자신의 삶이 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병이 힘든 건 아파서가 아니다. 힘들어서도 아니다. 그건 세상에서 고립된다는 느낌 때문이다. 아무리 가족이, 친구들이 알아준다 해도 환자의 아픔을, 좌절을, 힘겨움을 백프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결국 우리는 혼자고, 아픔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하니까. 혼자인 걸 누구도 달래줄 수는 없다. 매튜 매커너히가 에이즈 환자로 출연한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봤다. 영화는 호모 포비아에, 여자 밝히는 색정인 우드루프가 에이즈에 걸려 세상과 싸우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우드루프의 처지를 그리는 영화의 태도가 어딘가 묘하게 걸렸다. 하루 아침에 친구들은 우드루프를 호모라 비난하고, 함께 술마시고 섹스 하며 놀았던 집엔 빗장이 걸린다. 갈 곳도, 함께 할 이도 없다. 세상 천지에 그는 혼자가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위로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멈춰서 울먹일 때조차 카메라는 오래 머물지 않고 지나친다. 결국 살아가야 하는 건 본인 자신이고, 아픔을 이겨내야 하는 것 역시 본인이라면서 말이다. 우드루프는 지지 않는다. 마약만 끊었을 뿐 여전히 술을 마시고, 여자를 부른다. 자신의 삶을 끌고가는 건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강하다. 아니, 우드루프는 강하다. 우드루프는 병 앞에 한 순간도 주눅들지 않는다. 유일하게 그가 나약해진 순간은 에이즈 환자 후원회 모임 이후 성당을 찾아갔을 때다. 그는 기도한다. 그리고 또 기도한다.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 해달라고. 아직은 관에 들어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 장면을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신 앞에선 작아진다는 생각에, 그나마 기댈 곳이 어디 한 군데는 있다는 믿음에 마음이 아려왔다. 영화에 내 맘대로 부제를 하나 붙여보면 이렇게 될 것 같다. '꺾이는 일이 있더라도 구부러지진 않는다.' 우드루프는 대차다. "내 약은 내가 정한다"고 소리치고, 링거를 끌고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클럽(실은 불법 약 거래소)을 홍보한다. 그에겐 자신의 신념이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이 있다. 병 앞에서 기죽지 않고, 병과 정면으로 맞선다. 억지로 끌려간 병원에세조차 "여기 에이즈 환자 있다. 들어오라"고 의사들에게 윽박지른다. 세상이 아무리 등 돌려도, 모두가 그 곁을 다 떠나가도 그는 당당하다. 위축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에게 주어진 세상은 그만의 것이다. 그렇게 그는 혼자가 아닌 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