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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28. 2017

가냘프게 흐르는 시간,
홀로 남겨진 사랑

문라이트가 그리는 연약한 성장 이야기

한 소년이 있다. 키가 작고 체구도 외소해 '리틀'(알렉스 R. 히버트)라 불리는 아이다. 그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라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여지없이 괴롭힘을 당하던 어느날 리틀은 친구들을 피해 한 창고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후안(메허살레하쉬바즈 엘리)이란 남자를 만나고 영화는 이후 후안과 리틀의 관계를 그려나간다. 후안은 리틀에게 '무엇이 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문을 뒤로 하고 앉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흑인은 어디에도 있다'며 얼굴이 까맣다고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더불어 리틀이 호모란 단어의 의미를, 자신이 게이이냐고 물어봤을 때 '아직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그러니까 그는 유사 아버지 역할을 한다.


영화는 샤이론(애쉬튼 샌더스)이 소년이던 시절의 '리틀', 나이가 들어 중학생(어쩌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의 '샤이론', 그리고 완전히 성인이 된 '블랙'의 세 챕터로 나뉜다. 리틀이던 시절 샤이론은 나약하기만 한 자신을 부끄러워 하고 숨기려 한다. 현실을 외면하고자 자꾸 옆으로 돌아 눕는다. 영화는 유독 그가 홀로인 장면을 자주 잡는데 어둠과 컬러가 대비돼 연출된 끈적끈적한 색감은 리틀은 더욱 외롭게 보이게 한다. 샤이론이 되었을 때의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한 걸음 가깝게 다가간다. 샤이론은 케빈(안드레 홀랜드)이란 아이와 친구가 되는데 둘은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케빈이 지어준 닉네임 '블랙'의 시절 때 샤이론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 애쓴다. 약하고 가냘팠던 때의 자신을, 그리고 동성애라는 성 정체성을 잊으려 한다. 그래서 그는 운동을 해 몸을 키우고 금니를 끼워 남성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안탑깝게도 후안을 닮아 마약을 판매하는 일을 하게된다. 그는 어찌됐든 완전한 소위 세상이 얘기하는 남자가 된다.  


<문라이트>는 한 소년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는 자신의 에고, 그리고 성적 정체성이 자리한다. 거칠게 보자면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끌림을 부정하며 스트레이트가 된다는 이야기겠지만 <문라이트>는 그렇게 단순한 도식으로 이야기를 몰지 않는다. 10년이 지나 블랙은 케빈을 만난다.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 셰프가 된 케빈이 한 챕터가 지나 전화를 해 온 것이다. 샤이론은 케빈이 일하는 식당으로 찾아가고 둘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눈다. 부쩍 변해버린 샤이론, 아니 블랙. 영화를 보며 처음엔 그가 샤이론인지 몰랐다. 그만큼 샤이론은 완벽하게 남성적인 남성이 되어버렸다. 케빈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블랙은 여전히 샤이론이었다. 케빈과 이야기를 하는 블랙의 얼굴엔 샤이론의 가냘픔, 연함, 부드러움이 보였다. 잊으려고, 지우려고 애써봤지만 결국 자신을 외면할 순 없었던 거다. 다소 어색한 대화가 오가는 꽤 긴 장면에서 영화는 한낱 손장난에 그쳤던 둘의 관계가 거짓은 아니었음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리틀과 샤이론의 시절까지 영화는 고독의 무게를 힘겹게 이고 진행되는 것 같다. 마약에 빠진 엄마, 아빠의 부재, 친구들의 괴롭힘, 그리고 확신할 수 없는 성 정체성에 포위된 샤이론은 가엾어 보이기 그지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리틀에겐 '왜 당하고만 있냐'고 따져준 친구가 한 명(딱 한 명) 있었고, 무엇보다 유사 아버지와 같은 후안이 있었다. 또 샤이론 시절의 그에겐 유일한 친구 케빈이 도움이 되워줬다. 그래도 딱 한 명씩은 있어서, 딱 한 명이 곁에 존재해서 최악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달빛 아래서 흑인들은 파랗게 보인다는 후안의 말처럼 암흑같은 샤이론의 삶에도 가냘픈 희망은 있었던 거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도 침묵을 묵직하게 가르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바이올린 선율이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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