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Jul 12. 2017

오늘의 기억

'그 후'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세상엔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가는 순간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가령 에어콘이 세게 틀어진 실내에서 나와 마주하는 더운 공기 같은 거. 최대한 오감을 열어 놓고 살려고 한다. 조금도 놓지고 싶지 않아서, 살아온 길이 후회되기에 더욱더.


그래서 우울은 벽이다. 모든 감각을 닫게 하고 오로지 우울로만 치닫는 길을 뻗어 나가는 그 감정은 때때로 무섭다. 강아지가 짖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고 누나의 별 거 아닌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었던 어제. 나는 또 한 번 우울 안에 갇혔었다. 수도 없이 내 머리 속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과 함께.


일본 드라마 '콰르텟'을 보기 시작했다. 고작 1화만 봤을 뿐인데 말들이 주옥같다. '세상엔 세 가지 길이 있다. 노보리사카(오르막길), 쿠다리사카(내리막길), 마사카(설마)'부터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었는데 ...  


퍼블리와 함께 리포트를 쓰고 있다. 마감은 진작에 다 했는데 몰랐던 인물이 하나 있어 추가로 더 쓰고 있다. 동시에 얼마나 팔렸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퍼블리의 리포트에 관심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연애를 하는 기분으로...


영화 '재꽃'을 봤다. 재꽃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꽃이 있다면 그건 너무나 연약해서 아스라질 것 같은 두 소녀의 마음 뿐이다. 혈연의 줄이 끊어진 두 소녀는 안간힘을 써 자신들만의 세계를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건 밤 하늘의 점처럼 작은 불빛 하나와 병에 입을 대고 소리를 냈던 추억 뿐. 부-, 부-.


서른 여섯. 나이가 궁금해진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의 인생이 있고 그 수만큼의 아픔과 눈물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콰르텟'의 바이올린을 켜는 남자는 서른 다섯이라고 했다. '재꽃'의 두 소녀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시절 그 어딘가다. 사람은 얼마나 자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세상은 얼마만큼 우리의 편이 되어줄까.


강하게 살려고 한다. 엄마가 그러라고 하셨다. 강하게 산다는 게 무엇일까 생각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우울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어쩌면 그냥 나대로 나답게 나처럼 매일같이 변함 없이 사는 게 아닐까. 똑같이 혼잣말을 하고 잡생각을 하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요즘 자주 느낀다. 그래서 아픔은 더 아프고 기쁨은 더 기쁘다. 기쁘고 좋을 땐 잘 모르다가 아프고 슬플 땐 절감한다. 요즘 매일 밤 자기 전에 기도를 한다. 엄마가 사주신 작은 수첩만한 기도책을 펴고서. 무슨 기도를 할까 생각해보지만 매번 고백의 기도다.


'그 후'의 아름은 신에 대한 믿음을 여러 일상과 상황에 대한 믿음으로 에둘러 말한다. 수사가 매우 아름답고 경건하다. 근데 나는 그게 삶인 것 같다. 있지만 드러내지 않고, 드러내지 못하고 간직한 채 살아가는 거. 종교는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거면 되지 않나 싶은 게 나의 요즘이다.


'그 후'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홀로 있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