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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ul 19. 2017

상실의 끝에서

이 글은 다시 태어나는 저에게 보내는 생일 축하의 글입니다.

새벽의 어느 오후, 해가 중천의 어디 쯤 걸려 멈췄을 때 저는 상실에 시달렸습니다. 불현듯 사라진 옷들의 추억이 지나갔고, 없어진 물건의 기억이 괴롭혔습니다. 입원을 하고 있을 때 저 없이 엄마와 누나들이 이사를 하면서 저의 많은 것들이 곁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밀려오는 추억과 기억을 밀어내는 것을 제외하면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시달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상실이 남기고 간 황폐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돌이킬 수 없고 돌려 세울 수 없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알려고 해봐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이 다가오는 게 미웠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눈앞의 세상엔 겁이 났고 마음은 움츠러들었습니다. 엄마는 자꾸 얘기해도 달라질 게 없다고 하셨지만 저는 달라지기를 바랬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어떻게든 달라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잔인하게 맑았던 여름 어느 오후 이후 제 삶은 과거를 어찌하지 못해 굴러가는 현재였습니다. 현재가 현재일 수 없고 과거가 온전한 과거일 수 없을 때 삶은 절름발이가 됩니다. 그래서 아팠고, 그래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를 어찌할 수 없음을 안 건 지난한 시간이 또 한 뭉텅이쯤 흐르고 난 뒤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제야 비로서, 온전한 현재를 삽니다. 그러니까 내일은 찾아옵니다. 


가녀리고 연약한 마음의 남자와 닳고 닳아 윤곽만 남은 마음을 지닌 여자의 영화를 본 날을 기억합니다. 영화에는 마음이 소심해 사소한 거에 집착하는 아빠가 나옵니다. 그는 슈퍼볼 경기를 보며 손에서 손수건을 놓지 못합니다. 혹여 손수건을 손에서 놓치면 응원하는 팀이 패배할까봐서입니다. 징크스에 사로잡힌 남자입니다. 그에게서 저를 보았습니다. 세계가 멈춰버린 듯 싶었던 때, 저만 빼고 모두가 제 속도로 굴러가고 있다고 느껴졌던 때, 저는 징크스에 기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정어를 말미에 놓지 않으려 애썼고, 밥알을 씹는 횟수를 세곤 했습니다.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또 어느 때, 풋내 나는 용기의 노래를 들은 날을 기억합니다. 누나가 준 티켓으로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는데 출연한 테너가 유치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문제없어’ 나는 문제 없다고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나 솔직하고 직설적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무방비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지는 몰르겠지만 제게 다가온 것의 의미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실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새벽의 어느 오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위로 한 마디, 용기를 북돋는 노래 한 구절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을 세상의 한 자락에서 만났습니다. 잊고 살았던 저, 아픔에 쩔었던 저를 말입니다.


세상엔 작고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작은 성취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로 뒤범벅된 삶일지라도 작은 승리의 순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고있던 것이 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고, 일상이 일상이 아닌 게 되었을 때 저에게 이 사실은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까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감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최소한 약이 되나 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자 생각이 빛을 찾았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 삶은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는 사실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겐 엄마가 있고, 누나들이 있으며, 강아지 곰돌이가 있다는 사실에 용기가 났습니다. 혼자 우울해 할 순 있어도 혼자 실패할 순 없다는 오기도 일었습니다. 제가 바뀌자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어느 오후 거실에서 보았던 카카오톡의 문자를 기억합니다. 일하던 시절 알게 된 지인이 함께 일을 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글을 씁니다. 누군가 읽어줄 시간을 생각하며, 누군가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며 말입니다. 이제야 삶을 알 것 같습니다. 여전히 모르는 거 투성이고 아픔이 도저에 산재하지만 제 앞의 내일만은 껴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이 서른 여섯. 저는 무직입니다. 종종 글을 쓰긴 하지만 고정된 수입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울했습니다. 세상과 떨어진 것 같은 기분에 좌절했고, 하던 걸 할 수 없음에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제 곧 생일을 맞이합니다. 세상이 제 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적은 아니란 사실을 지금은 느낍니다. 여전히 모나고 아픔 시간을 살지도 모르지만 아픔의 시간을 내일을 위한 밑천으로 삼을 수 있는 품이 이제는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다시 태어나는 저에게 보내는 생일 축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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