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힘, 애달픈 희망

I'm alone with you.

by MONORESQUE

연약한 세계는 얼마나 가녀린가. 가녀린 세계는 얼마나 연약한가. 막막하고 출구 없는 질문을 <재꽃>은 던진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시골 풍경이 시간이 흘러 드러내는 건 숨통 하나 찾을 수 없는 막막한 세계, 열 여섯 살 소녀의 세계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모자를 쓰고 밭에 나가 블루베리를 따며 살아가는 소녀는 현실을 버텨낸다. 너무나 조용해서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공간은 소녀의 삶을 누르는 무게다. 그녀가 유일하게 생기를 띄는 건 아무런 목적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달릴 때 뿐이다. 소녀는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반겨주는 이 없어도, 도착할 안락한 품 없어도 그녀는 달린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이다. 들판 너머 빌딩이 억누르고, 보이지 않는 어둠이 짙게 그을린 이 영화에서 희망은 소녀의 두 발 뿐이다.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도, 아무리 쓴 세상이라도 두 발은 움직인다.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다행이다. 박석영 감독은 신인임에도 침묵을 이겨낼 줄 알고 우리는 고작 보고 있을 뿐인데도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영화는 현실을 이겨낼 때 가장 빛나는 게 아닌가 싶다. <재꽃>은 내가 본 올해 가장 아프고도 아름다운 영화다. 가녀린 눈물처럼, 연약하고 가냘픈 삶의 자락처럼.


소녀의 이름은 하담이다(배우 정하담은 영화에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쓴다). 그런데 이 소녀의 모든 게 미궁이다. 아빠는 없이 사는 것 같고 학교는 다니지 않는 것 같으며 형제 자매도 없어 보이는데 알 수가 없다. 영화는 하담을 그저 비추기만 한다. 밭에 가 일을 하고 길에서 숨을 돌리며 그저 달리고 또 달리는 장면을 바라만 본다. 정하담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삶을 여백 가득한 얼굴로 훌륭하게 표현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냥 있다. 그럴 뿐이다. 시골 한 켠에서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하고, 필요한 만큼의 숨을 쉬며. 그런데 이 아무 것도 없는 듯한 하담의 삶에 또 다른 소녀가 등장한다. 언니~언니~. 들려오는 소리에 뒤돌아 보니 그녀보다 열살이 적은 여섯 살 소녀가 있다. 이름은 새별이다. 새별은 엄마가 주고 간 사진 한 장으로 아빠라고 믿는 박명수를 찾으로 가는 중이다. 하담은 그 길을 안내하겠다고 하고 하담의 삶이 조금씩 진동한다. 하지만 그렇게 찾은 박명수는 새별에게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라고 한다. 아빠 아닌 아빠, 삼촌 아닌 삼촌. 그렇다. 새별은 혈연의 끈이 끊어졌다. 아무 일도 없을 듯이 적적한 세계에 고작 벌어진 일이 엄마, 아빠를 잃은 소녀의 아픈 마음이다. 새별은 하담의 집에서 묵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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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에겐 어여쁜 버릇이 하나 있다. 처음 본 아빠(라고 믿는)에게 동화 속 멜로디를 불러주고 평상에 앉아 보이지 않는 엄마를 향해 대화를 건네는 작은 마음의 손짓. 이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동심이고 실패한 소원의 앳된 눈물이다. 그리고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하담이 새별을 반복한다. 여기서 영화는 불투명했던 하담의 과거를 들려준다. 풀숲에서 놀며 기다리던 엄마는 오지 않았고, 그렇게 혼자가 되었으며, 아직도 가끔은 그 풀숲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고. 그래서 하담의 지금은 섬과 같다. 그녀는 아직도 단절된 과거의 벼랑 끝에 서있다. 그녀가 달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영화는 새별이 하담의 멈춰진 과거의 어느 시점일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일러준다. 똑같이 하나로 묶은 긴 머리, 서늘하게 생긴 눈코입, 끊어져버린 혈연의 끈. 혼자와 함께 혼자였던 하담은 새별과 함께 혼자가 된다. 그리고 영화는 둘의 재꽃같은 일상을 보여준다. 경주를 하듯 걸레질을 하고,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음료수를 마시다 병에 입을 대고 부-부-소리를 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래서 가슴이 미어온다. 부-부-.


블루베리를 따는 하담의 들판 반대편에 공사가 한장이다. 하담과 함께 사는 오빠 아닌 오빠 철구는 새별의 아빠인지 아닌지 모를 아빠 명수와 함께 일을 한다. 둘은 함께 돈을 모았고 그게 7천만원이나 됐다. 하지만 명수는 철구에게 돈을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철구는 여자 친구인 경진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고 경진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사기를 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시골에서 하담과 새별, 그리고 침묵을 위협하는 건 공사의 소음이고 자본주의의 물결이다. 그리고 그 사기극이 명수가 새별의 친 아빠가 아님을 폭로한다. 세별의 세계가 무너진다. 하담의 시간이 사라진다. 좋은 우연을 만났고 간신히 끊어진 시간을 이었으며 애써서 붙잡고 있었던 하담의 세계는 무참히 박살난다. 마치 공사장의 포크레인에 의해 무너져내리는 폐허들처럼. 고함과 욕설이 나뒹구는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는 하담과 이를 차마 보지 못해 멀어지는 새별. 영화는 여기서 작은 기적같은 순간을 하나 빚어낸다. 둘의 뒷모습을 비춘 카메라는 둘이 하나의 세계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시간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공사장의 비명처럼 애달프게, 처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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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은 어둠을 헤치며 달린다. 새별을 찾아, 과거의 자신을 찾아. 하지만 사방은 온통 어둠일 뿐 그녀를 달래주는 건 점 하나 크기의 불빛이다. 영화가 소중할 수 있는 건 현실에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걸 느끼게 해주거나, 칠흙같은 상황 속에서 거짓말같은 기적의 순간을 전할 때인 것 같다. 아빠를 잃은 새별은 그 부재의 공간을 하담으로 채우려 한다. 어둠을 이기고 만난 둘은 서로를 부여잡고 발을 구른다. 맨발을 땅에 딛고 부서진 시간의 잔해를 추스리기라도 하듯. 배우 정하담의 발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가녀리면서도 올곧이 솟아 있는 힘줄이 딱 영화 속 하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어딘가에서 피워놓았을 모닥불이 불똥을 튀긴다. 영화는 이를 불꽃놀이의 불빛처럼 비춰낸다. 작지만 커다란 전환이다. 내게는 이 장면이 존재하지도 않고 누구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재꽃이 피워나는 순간처럼 보였다. 영화가 마술을 부리는 장면이다. 또한 길을 걷다 지쳐 앉은 하담 곁에 피로에 지친 시간이 내려 앉는다. 영화는 이렇게 작은 순간도 놓지지 않는다. 소중하기에, 그냥 두면 바스라질 것 같기에 멈춰 보듬는다. 동시에 나는 영화가 울음을 참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아프고 힘들어도 어둡고 막막해도 하담은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그리고 이러한 애씀이 모여 작지만 소중한 희망을 빚어낸다. 연약하고 가녀린 세계는 끝도 없이 연약하고 가녀리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와 함께라면 연약하고 가녀림은 그대로 완전할 수 있는 것 같다. 스푸쟌 스티븐스의 노래 속 가사 한구절이 떠오른다. I'm alon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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