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괴로운 건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츠라이(つらい). 괴롭다. 성격이 달라서 함께 살기 괴롭고,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 신청서가 프린터에 걸려 이혼 하지 못해 괴롭고, 이혼을 하자니 할머니의 생신이 걸려 괴롭고, 이혼하고도 그 얘기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괴롭다.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쓴 <최고의 이혼>은 결혼이란 대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괴롭게 하는지를 유려한 말과 대사로 그려낸 작품이다. 미츠오는 모든 게 꼼꼼하고 세세하며 치밀한 남자다. 반면 그의 아내인 유카는 후지산을 보고 자라 느긋한 성미며 왈가닥하고 대범한 여자다. 당연히 둘은 자주 부딪히는데 끝내 이혼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둘은 이혼을 하고도 함께 사는, 그러니까 동거 생활을 유지한다. 다소 어처구니 없는 소동극 같아 보이지만 이건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다. 사카모토는 좋아한다고 결혼하는 게 아니며 결혼했다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며 결혼과 사람의 마음, 감정을 별개로 얘기한다. 사회적 제도나 고정관념이 놓치고 가는 우리의 마음을 얘기한다. 이를 구현화하는 건 그의 촘촘하고 세밀한 언어며, 절묘하고 능숙한 묘사다. 사카모토는 제도나 규범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언어로 드러낸다.
사카모토 유지는 감정의 연금술사라 할 정도로 사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그래도 살아간다>에선 자신의 여동생을 죽인 범인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는 남자와, 그와 사랑에 빠졌지만 자신의 감정 앞에서 발을 빼는 여자의 마음을 그렸고, <마더>에서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학생을 유괴한 교사가 그 학생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도발적인 내용이다. 그렇다. 사카모토 유지는 위험하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딘가 납득하게 되고 인물들을 이해하게 된다. <최고의 이혼>에서 미치오와 유카가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이 특히 그렇다. 둘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날 우연히 만난다. 조그만 충격에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사람 둘의 만남이다. 이 나약하고 가녀린 상태의 둘은 서로의 마음을 서로에게 기대고 자연스레 결혼에까지 이른다. 결혼은 사랑의 결과라는 도식을 뒤흔드는 서사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결혼을 위한 게 따로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사카모토 유지는 그 아닐 수 있음을 얘기한다. 그의 드라마는 결코 무엇이라 단언할 수 없음의 서사다.
<콰르텟>과 <최고의 이혼>은 <그래도 살아간다>와 <마더>와는 톤이 꽤나 다르다. <콰르텟>과 <최고의 이혼>이 빠른 템포의 발랄한 어투를 가졌다면 <그래도 살아간다>와 <마더>는 진중한 템포의 느긋한 어투를 지녔다. 얼핏 서로 다른 작가의 다른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는 모두 아닐 수 없음의 서사이자 그럴 수 있음의 드라마다. 동시에 무수히 많은 대사들로 이뤄진다. 마치 프랑스 영화 특유의 대사 신처럼 인물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아닐 수 있고 그럴 수 있음을 설명하고 묘사한다. 그래서 명대사가 많다. <최고의 이혼>의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되는 게 누군가에게는 변기 커버에 불과할 수 있다. 타인이니까'란 말이나 <콰르텟>의 '세상에는 세 가지 언덕길이 있다. 노보리사카(오르막길), 구다리사카(내리막길), 그리고 마사카(설마)'같은 거 말이다.
사카모토 유지의 말이 종내 다다르는 곳은 삶이다. 보도 블럭만 밟고 걸을 정도로 작은 것에 집착하는 미치오가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면서까지 옛 여자친구였던 아카리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건 자신의 주관과 고집, 철칙을 붕괴시키고서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사람에게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생은 긴 줄넘기나 테트리스와 같아 들어가라는 말에 들어가니 걸려 넘어지고 멈춰버리며, 다음에서 다음으로 맞추어 나가기만 할 뿐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며 목적도 없고 끝도 없는, 그러니까 동시에 쫓기고 재촉당하기만 한다는 비유는 우리의 현실을 그럴싸한 언어의 형태로 표현한다. 더불어 <그래도 살아간다>에서 감정의 격한 굴곡을 지나 드라마가 다다른 건 바로 사람이라는 소실점이다. 하지만 그 소실점이 어둠과 암흑의 그것은 아니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비가 그치고 깨끗이 씻겨 내려간 거리가 빛나는 것을 봤어요'라고 읊조리는 히로키의 말로 문을 닫는다. 그러니까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괴로운 건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사카모토 유지는 마음을 가장 올곧게 구현해내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