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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May 10. 2020

젊은 사회적 기업가의 고백

세상을 바꾸겠다던 스물두 살 청년이 스물일곱이 되어


4년 하고도 10개월의 시간이 지났더라. 이와 중에도 깔끔하게 '5년의 시간이 지났다.’라고 쓰고 싶은 것은 내 못난 완벽주의 성격 때문이겠지. 내년 3월이 되면 브랜드를 론칭한 지 꽉 채운 5년이 되는 해였다.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20대 후반이 된 것을 보면 꽤나 긴 시간이었더라. 이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지도 벌써 2년이 지났지만,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사업이 쉽게 끝나지 않았기에 이제야 한 문장씩 써본다.


5년을 채우지 못한 4년 10개월. 나의 작은 브랜드가 끝났다. 이 이야기는 내가 창업한 브랜드와의 고별 일기이자 한 회사의 대표로서 살아왔던 나의 고백이다. 고별(告別). 고할 ‘고’와 나눌 ‘별’이 만든 이 단어는 헤어짐을 알린다는 뜻이란다. 나는 나의 창업이 끝났음을, 나의 브랜드와 이별했음을 솔직하게 알리고 싶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나오는 인터뷰가, 내가 섰던 강단이, 내게 주어진 기회들이 성공이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사에 실린 그 유망하다던 대표가 무탈하게 잘 지내는지, 강단에서 얘기했던 대로 아직까지 승승장구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도 때때로 무탈하지 못했겠지만, 괜찮은 이야기들을 골라 강단에 오르곤 했을 테다. 강단에서는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을 테니까. 무탈해 보이는 한 회사의 대표였지만, 사실 나도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어렵고 무서웠던 그런 청년이었다. 때론 그저 꿈 많고 고민이 많았던 20대 청년이었다.


열여덟 살의 나에게는 사회를 변화시키리라는 꿈이 있었다. 스물한 살을 간신히 넘어온 스물두 살의 3월, 나는 쌍둥이 동생과 함께 어렸을 적부터의 오랜 꿈과 미션을 담은 브랜드 ‘도트윈’을 창업한다. 2017년 2월 27일, 매일경제 신문에는 아래의 기사가 실린다. 신수현 기자님이 쓰신 이 기사는 ‘도트윈’에 대해서, 그리고 청년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나에 대해서 잘 얘기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트윈 박재형 대표 "점자로 진심의 언어 전해요"

점자 새긴 제품 만드는 사회적 기업
형은 복지·동생은 건축 전공…공동 창업자로 `윈윈`

쌍둥이 형제는 다른 고등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는 고2 여름방학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겠다'는 야심 찬 포부로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공동 개최한 '2011 전국소셜벤처경연대회'에 참가해 청소년 부문 대상을 받았다.

가죽지갑이나 필통, 여권지갑 등에 점자를 새겨 파는 '도트윈' 공동대표 박재형·재성 형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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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뜻하는 '도트(dot)'와 사이에를 의미하는 '비트윈(between)'의 합성어인 도트윈은 2015년 이렇게 출발했다. 도트윈은 '너와 나의 사이, 즉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점(점자)으로 연결하자'는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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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점자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랑해' 같은 숭고 하지만 대놓고 말하기엔 쑥스러운 말도 점자로 전달할 수 있고, 손으로 점자를 만질 때마다 선물을 준 사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점자를 시각장애인의 언어가 아니라 '진심의 언어'로 재해석해서 활용 범위를 넓히면 비시각장애인들도 시각장애인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다고 판단해서 점자를 새겼습니다."
...
명문대 학생으로 20대 초반에 이미 유망 사업가로 자리 잡은 박 대표에게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물었다. "궁극적인 목표가 바뀐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이제 사회적 기업가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이 글을 쓴다. 언젠가 인터뷰에서는 얘기하지 못했던 그저 청년으로서의 생각, 감정, 기분을 말하고 싶었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는 그 청년은 진정성만으로 회사를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영원할 것 같았던 팀이 깨졌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그리고 창업이라는 여정이 끝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고백하고 싶었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는 데까지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실패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인정해야 했고, 받아들여야 했다. 이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길 바란다. 용감하고 열정적였던 20대 초반, 사회적 기업가로서 살았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풀어놓아보고자 한다.


(주)도트윈스튜디오
2015년부터 2017년까지의 도트윈


언제나 나는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사회에 만연해있는 편견, 차별, 선입견들이 디자인을 통해 변화되기를 바랐고, 누구도 그것들에 의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가장 먼저 주목한 삶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의 삶이었다. 디자이너란 본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직업이면서 동시에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나는 디자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와 동생이 함께 만든 브랜드가 바로 ‘도트윈’이다. 어렸을 적부터의 꿈을 담아 만들었기에 더없이 소중한 브랜드였다. 나는 ‘도트윈’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도트윈은 점자가 각인된 가죽제품브랜드로 시작했다.
원하는 문구를 주문하면, 점자로 각인되는 커스터마이즈 제품이다.
점자를 해석할 수 있는 패키지는 점자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디자인되었다.


‘도트윈’은 사회적 기업 혹은 소셜벤처라고 불렸다.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 社會的企業)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소셜벤처(social venture)는 사회적 목표 달성을 위해 혁신적이고 체계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고자 하는 기업 또는 조직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거의 비슷한 개념으로 통용된다. 무언가로 명명된다는 것은 마치 사회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도트윈’이 사회적 기업 혹은 소셜벤처라 불려지는 것만으로 이미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힘내라 대한 청년 1] 손끝으로 전하는 진심... 박재성·박재형 도트윈 대표’
‘착한 기업을 소개합니다 _ 점자의 온기로 서로의 진심을 잇다’
‘만나고픈 사람 <진심을 전하는 남자> 도트윈 박재형’
‘보이지 않는 언어로 ‘진심’ 전하는 쌍둥이 창업자’
‘손끝으로 진심을 전하다! - '도트윈' 박재형 대표’
..


세상을 바꾸는 쌍둥이 사회적 기업가, 소셜벤처 도트윈 대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체인지 메이커, 청년 창업가, 착한 사업가. 참으로 영광스러운 수식어들로 불렸다.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내면의 나는 저편에 두고, 매체 속의 나는 사회를 변화시킬 유망한 대표가 되어갔다. 진심을 전한다는 그 대표는 이제야 진심을 말해보려 하는데 말이다.


언젠가부터 업계와 관련한 칼럼에서 '좋은 의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Good intentions are not enough'라는 관점의 글들을 보곤 했다. 좋은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맞는 말이었다. 사회적 기업을 이야기할 때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의도, 열정, 진정성이 강조되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허황된 믿음이다. 좋은 의도가 있다는 것은 때론 독이 되고, 좋은 의도만으로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 열정, 진정성은 사회적 기업가가 지니면 좋을 자질(資質)이지, 그것은 능력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자질이 없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며 잘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의 대표들을 봐오곤 했다.


사회적 기업가는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하는지, 사회적 기업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를 찾노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다.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는 이러한 방법론과 거리가 멀다. 그저 내가 겪어온 지난 시간들을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너무 오래도록 나의 진정성에 대해서 생각했었나 보다. 실은 진정성보다 사업적인 고민을 했어야 했다. 본디 기업가란 그래야 한다. 이를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는 내가 기업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하나 둘 인정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브랜드를 폐업하고자 했던 이유는 이러한 인정의 끝에 있었다.


2016년, YTN 사이언스의 ‘청년창업런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했더랬다. 강연에서 나는 팀을 잘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부끄럽게도 그 방송이 나가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나는 나의 팀을 지켜내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은 이미 기세를 잃었고, 다시 팀을 꾸리자고 생각했을 때는 원래 함께 했던 팀만큼 좋은 팀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좋은 리더가 아니었다는 것. 그때의 깨달음이 어쩌면 나의 첫 번째 인정이었다. 그 이후로 한 회사를 이끌 리더로서의 자질에 대해서, 또 역량에 대해서 생각하며 3년의 시간이 지났다. 1년은 폐업을 고민하며, 2년은 투자금을 상환하며.


폐업을 결심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고민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길어진 고민은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나에게 이상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게 했던 시간이었다. 실제로 나는 사업을 잘한 것은 아니었다. ‘도트윈’이라는 브랜드는 잘 만들어냈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지는 못했다. 투자사에 매월 보고해야 했던 경영성적표는 스스로를 질타했다. 폐업을 결심했던 것은 저조한 매출 때문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기업가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고민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나는 내가 만든 회사 안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러고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비즈니스가 아닌 디자인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긴 고민 끝에 회사를 정리했던 것은 진정 내가 잘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더 잘하는 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영성적표가 나빴다고 ‘도트윈’이 4년 10개월의 시간 동안 사회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사회의 전부를 바꾸지는 못했겠지만, ‘도트윈’을 스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변화들을 겪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점자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삶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해봤을 것이다. 어떤 젊은이들은 ‘도트윈’을 보며 사회를 변화시키리라는 꿈을 키워내기도 했었다. 국내의 사회적 기업과 소셜벤처들이 다양하지 못했던 시기에 태어난 ‘도트윈’은 소셜섹터 공동체에 또 하나의 선례로 남았으리라. 그 흔적은 국내 소셜벤처 역사의 한켠에 남아 그 만의 역할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도트윈’이 사회에 남긴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마치 세상을 지킬 것처럼 수식되곤 했지만, 본인 회사 하나 지켜내지 못했던 애석한 청년이었다. 스물두 살, 꺼지지 않을 불처럼 타기만 했던 열정은 아슬아슬 불씨를 잃곤 했다.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 시절의 나는 참으로 순수했더라.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믿었던 팀이 깨지고, 대표라는 자리는 어린 날 꿈꿨던 것과는 달랐다. 디자인과 비즈니스에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에서 갈등할 만큼 나는 흔들리기도 했다. 젊은 날의 창업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다. 어려웠고, 외로웠고, 힘들었다. 그렇게 사회를 바꾸겠다며 반항기 가득했던 청년은 어느새 사회가 무서워졌더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행이 끝났다고 여행 자체가 실패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여행에서의 아쉬움에 대해서, 혹은 그 감정에 대해서 조금 솔직하게 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가 있다면, 아마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여전히 청년창업에 대한 열기를 식을 줄을 모른다. 어쩌면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그리 성공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실패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에 나의 브랜드를 정리하고자 결정하는 데에는 성공과 실패로 나뉘지 않는 20대 청년의 고민이 있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면, ‘도트윈’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브랜드는 진정 하나의 생명과도 같아서, 창업자의 의도대로 성장하는 일이 결코 없고, 이렇게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나의 브랜드를 알고, 좋아하고, 또 사랑하고, 미워하고, 실망했던 그 모든 경험들이 소중하고 특별했다. ‘도트윈’은 나와 그들의 기억 속에, 글로 써 내려간 이 고백 속에 담길 것이다. 앞으로의 이야기에는 열여덟 살 소년이 스물두 살 청년이 되어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기까지, 동생과 함께 5평 남짓 공간에서 30평이 넘는 작업실로 키워내기까지, 함께 했던 팀과 헤어지고는 혼자서 회사를 지켜내기까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나가기까지, 투자금을 상환하며 회사를 직접 정리하기까지, 폐업을 하고서 진정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되기까지, 지난 시간들을 회고하며 했던 생각과 감정과 기분을 고백할 것이다.


당신이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그 창업으로 사회가 변하기를 바란다면 앞으로의 고백이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두근 되고, 벅차오르고, 영광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어렵고, 외롭고,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데에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의심 없이 말해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폐업을 하기로 결심한 청년이라면, 일단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 말이 가장 필요했다. 당신이 누구이든 앞으로의 이야기가 당신 편에 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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