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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May 24. 2020

사실, 사회복지보다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요

진정으로 꿈꿨던 사회를 위한 디자인에 대해서


명문대 재학생으로 착실히 공부해서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될 것을, 왜 밤을 새워가며 고생을 하는지 물었다.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고,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복지학과를 간 것도 제가 하려는 디자인에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요. 지금 이 나이가 아니면 해볼 수 없을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
- [탑클래스 2016년 2월호 | 점자로 메시지 전하는 가죽 제품 브랜드 ‘도트윈’ 박재형·박재성 공동대표]에서 발췌


창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 많은 곳에서 나와 동생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곤 했다. 2015년 3월. 도트윈을 창업했을 그 당시, 성수동에는 사회를 바꾸겠다는 청년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었다. 나는 초창기 성수동을 소셜섹터로 이끌었던 이들의 노력을 기억한다. 이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언론매체에서는 성수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유난히도 어렸던 나와 동생. 그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하겠다는 스물두 살의 쌍둥이 창업가들이 궁금했더랬다.


언론매체에서 젊은 대표들에게 물었다. 명문대를 다닌다면서 왜 무모하게 어린 나이에 창업을 했는지, 창업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는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그중에서도 어떤 계기로 ‘사회를 위하는 디자인,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비즈니스’를 구상하게 되었는지는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우리의 답변들은 한 편의 짧은 드라마로 완성되곤 했다. 누군가 우리에 대해서 물어봐준다는 것. 잡지와 신문에 나온 나와 동생을 본다는 것. 검색 포털에 우리의 이야기가 소개된다는 것. 이런 것들을 스물두 살의 평범한 우리가 겪기에는 꽤나 특별한 경험들이었다.


나는 디자이너를 꿈꾸던 고등학생이었다. 미술대학을 준비하던 그런 고등학생. 나의 삶을 다룬 책이 있다면, 고등 시절은 꽤나 주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당시 인터뷰의 내용에는 나의 열여덟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고등학생이 2011 전국소셜벤처경연대회 청소년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 그 계기로 사회적 기업을 알고 공부했다던 이야기, 미술대학을 준비했던 내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다는 이야기들은 모두 풋풋했던 나의 고등 시절 이야기들이었다.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디자인학과가 아닌 사회복지학과로 대학을 진학했다고 했다. 이것이 줄곳 인터뷰에서 실렸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이유였다.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복지학과를 간 것. 미대를 낙방해서 포기했다는 얘기는 인터뷰에 담기지 않았다. 인터뷰는 마치 내 의지로 사회복지학과를 진학한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실은 디자인과는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였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디자인,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자 했던 내 뜻이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한 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인터뷰의 내용은 그저 잘 편집된 이야기였다. 디자이너를 꿈꾸던 내가 디자인학과가 아닌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편집되지 않은 나의 이야기를 말해보려 한다. 사회적 기업가이기 이전, 사회복지 학도이기 이전, 사회적 기업과 소셜벤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열여덟의 내가 고민했던 디자인에 대해서. 디자인이 사회를 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그 일련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부산에 있는 한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부터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그저 영어를 좋아하고 더 잘하고 싶어서였다. 입시학원을 연상하게 하는 학교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진정한 ‘외국어고등학교’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 잘하고 싶었던 외국어는 뒷전으로 수능, 그리고 대학이 학교의 주된 관심이었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미술을 하겠다는 학생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진로상담은 늘 목표대학이 기준이 되었고, 좋은 대학의 미대를 가려면 그림보다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며 나를 부추겼다. 공부만 잘하면 그림을 못 그려도 좋은 대학의 미대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열일곱 살의 나는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며, 수능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라며,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자퇴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어머니는 성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학교 내외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해보라고 조언하셨다. 어머니는 참 지혜로우셨다.


학교를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청소년 자원봉사단체, 청소년 모의의회, 비영리 민간단체 등에 속해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일들을 실천했다. 독학으로 배운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단체에 필요한 로고, 포스터, 브로셔 등을 디자인하기도 했었고, 청소년 활동가로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활동했었다. 환경에 대해, 또 인류에 대해, 사회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순수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때였다. 청소년이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과 목소리밖에 없었지만, 실제로 사회에는 그 목소리가 필요했다. 물 부족 현실에 대해, 자연 생태계의 파괴에 대해, 제3세계 국의 아이들에 대해 고민했고, 피켓을 만들어 들고 사회에 목소리를 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보다는 스스로 찾아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경험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자산이다.


그 당시 나는 학교에 앉아서 듣는 공부가 아닌,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각기 다른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육을 주입하고 있는 기성 교육은 잘못되었다며 비판했고, 꿈 없이 대학만을 쫓는 친구들을 걱정했다. 또한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쫒아야 한다며, 학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주고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넘어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디자인이 다양성을 존중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디자인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고, 누구나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디자인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렇게 나는 내심 디자인을 통해 편견과 차별이 없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2010년, 당시 서점의 [디자인] 서가를 가면, ‘착한 디자인’, ‘지속 가능한 디자인’, ‘사회를 위한 디자인’ 등의 키워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비영리단체, 자원봉사단체, 민간단체 등에서 청소년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고등학생인 나에게 이런 키워드들은 내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는 그때쯤부터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역할, 사회적 디자인 등에 관심이 커지고, 지구를 위하고 인간을 위하는 디자인에 대한 담론이 본격적여졌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때는 디자인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걱정하고, 가난을 걱정했다. 지구온난화는 그 시절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지구의 위험이었고, 세계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문제와 제3세계의 빈곤문제는 어딜 가나 들을 수 있는 사회의 위험이었다. 전례 없는 불균형 사회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경제적, 생태적,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음을 이야기했다. 그때 내가 사서 읽었던 몇 권의 책들은 디자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산업 디자인보다 더 유해한 직업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극소수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위선적인 직업은 단 한 가지일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족한 돈으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하도록 설득하는 광고 디자인이야말로 오늘날 현존하는 직업 중 가장 위선적일 것이다.

사회와 환경에 책임을 지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빅터 파파넥은 저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서 디자인이 사회에 유해하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러고는 디자이너에게는 높은 사회적, 도덕적 책임이 요구된다는 말을 한다. 그의 주장은 내게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디자인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또 그 책임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내가 어떠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지, 또 누구를 위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던 스승과도 같았던 사람이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외에도 당시 읽었던 책들에서는 크게 인간 중심적인 문제와 자연중심적인 문제, 그리거 그 외에도 생태적 문제, 환경적 문제 등 지구와 인류,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디자인과 연관 지어 이야기했다.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며, 디자인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자인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그들이 제시한 사회문제 중 인간 중심적인 문제들에 주목하게 했다.


Victor Papanek by Lorrin Windahl.


우리가 디자인해야 하는 것은 가난한 자, 병자, 노인,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들이 중산층 부르주아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 인구의 실질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디자인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빅터 파파넥은 디자이너가 기술과 부, 그리고 문화적 엘리트를 형성하는 작은 집단에 의해 향유되는 사치품들을 디자인하기 일쑤이고, 오지에 사는 90%에는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나를 설득했고, 나의 디자인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했다. 과연 소외된 이들을 위한 디자인이란 것은 어떤 것이며, 그런 디자인이 가능한 것일까. 당시 함께 읽었던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적정기술은 저개발국•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개발된 디자인이었다. 전기 펌프 대신에 물을 길어올 수 있는 큐드럼부터 오염된 물을 바로 정수해주는 라이프 스트로(정수 빨대), 제3세계를 위한 노트북의 사례들을 보며, 제3세계를 위한 디자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Q-Drum. Designer: PJ and JPS Hendrikse. Photo © 1993 PJ Hendrikse


알라 스테이 풔드 우크의 저서 <디자인 액티비즘>에서는 “인류와 자연의 더 큰 미덕을 위해 디자인의 힘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디자인 행동주의자라고 정의하며, 디자인 행동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지구와 사회가 처한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디자이너이고, 디자이너들이야 말로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사회와 환경, 인간을 위하는 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그 당시 읽었던 책들은 내가 앞으로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 또 디자인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려줬다. 현세대를 향한 뜨거운 분노에서 나온 사회를 위한 디자인들. 진정으로 사회가 변화되기를 바랐던 디자인들. 내가 원했던 디자인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나의 사명처럼 여겨오며,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 나의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기성 교육과 학벌주의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했던 나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다. 기자들은 종종 특목고를 졸업하고 명문대를 진학한 나에게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네요’라는 말을 하곤 했다. 결코 대학만을 위해 살지 않았던 터라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사회를 위한다는 디자인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했다. 청소년 활동가로서 내가 속한 단체의 브로셔를 만들거나, 로고를 디자인하는 등의 일들을 고등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디자인이라며 실천해나갔다. 학교 성적보다는 진정 원하는 일에 시간을 쏟았던 내가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해왔던 활동들을 인정해준 연세대학교 수시전형의 결과였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던 나는 왜 디자인이 아닌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되었을까. 어찌 된 일인지 디자인학과로 지원했던 대학은 모조리 낙방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사회복지학과로 지원했던 연세대학교만이 나를 받아줬다. 이것이 내가 디자인이 아닌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진짜 이유였다.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었음에도, 사실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복지보다는 디자인이었다. 대학을 가면 디자인을 공부하리라 그토록 바라왔는데, 그것이 안된다는 생각에 꽤 많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못해 의기소침했던 열아홉 나에게 아버지는 “사람을 다루는 학문을 배운다니 얼마나 잘된 일이냐,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나는 당신의 조언 덕분에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것이 내가 하고자 했던 디자인을 이루는 데에 가장 적합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디자인을 하겠다던, 사회의 특정계층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하겠다던, 소외되는 이들의 이야기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겠다던 나는 사회복지와 디자인의 융합을 꿈꾸며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한다. 지나고 보면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디자인을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배운 사회복지는 사상과 이념을 넘어선, 보다 실용적인 차원의 학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복지(福祉, welfare)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 그로 인한 행복을 말했다. 사회복지는 인간의 존엄과 본질에 대한 탐구를 기본으로 하는 학문이었고, 그 끝은 늘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장애인 등 복지의 다양한 대상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고, 복지서비스와 제도 등 사회에 필요한 정책으로서의 복지를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배운 복지는 흔히 생각하는 불쌍한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주장이자 목소리였다. 고등 시절 나의 생각은 사회복지라는 학문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나는 사회 소외계층 혹은 사회적 소수자라는 분류에서 벗어나 복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시혜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내가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사회문제를 다루는 큰 기준이 되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디자인을 업으로 하며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디자인과 사회복지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도 사회복지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에 있었다. 디자인은 문제를 발견하고, 더 나은 방향의 해결점을 찾는데에서 복지 영역이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성격을 가진다. 허버트 사이먼은 “기존의 상황을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고 행동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문제해결의 관점으로 디자인을 접근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다른 형태의 사회복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고등 시절 내가 꿈꿔왔던 디자인은 내가 디자인이 아닌 사회복지를 전공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디자인과 사회복지는 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디자인 학교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점은 그들이 디자인을 가르치는데 몰두하지만 그 디자인이 실제로 행해지는 생태학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는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등등 다양한 학문이 섞여 만들어진 응용학문이라고 한다. 나는 디자인이 실제로 행해지는 생태학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에 대한 교육을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나의 대학 진학은 인터뷰에 소개되었던 것처럼 의도된 계획은 아니었지만, 대학시절 디자인이 아닌 사회복지를 공부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면,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배웠던 것들이 내가 디자인을 하는데에 가장 큰 기준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디자인과 사회복지는 같은 고민을 하기에 디자인학과를 준비하던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할 수 있었다 말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복지를 전공한 내가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사회복지학도로서 인간의 더 나은 삶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치에 대해서, 이를 넘어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들을 디자인으로 실현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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