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Dr Zorba Mar 03. 2018

돌잡이의 추억_골프공이 어때서?

(9) 첫째와 둘째사이_엄마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돌잡이 시간이었다. 사회자는 아이가 무엇을 잡았으면 좋겠냐고 부부에게 물었다. 남편은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뜻으로 실을, 나는 “즐겁게 살라”는 의미로 마이크를 대답했다. 사회자는 실과 마이크를 맨 위에 놓았다. 시어머니는 평소에 “아빠 뒤를 이어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하셨으니, 청진기를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모두의 기대를 뒤로 하고 첫째는 ‘골프공’을 잡았다. 골프공이 나쁜가? 내 표정이 별루였나? 사회자는 아쉬운 분이 계실까하여 아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돈’을 집어 들었다. 굴러가는 물체와 종이에 아이가 관심을 갖던 때였다. 아마 마우스가 있었다면 마우스를 잡았을 것이다. 판사봉은 없었고, 청진기와 마패는 맨 아래에 깔려 있어 아이가 들기에 무거워 보였다. 사실, 아이가 무엇을 잡든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돌잡이에 대해 묻자, 나도 아이가 장차 무엇을 하면 좋을 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됐다.     



 사회자는 “어머니, 연예인을 생각하신 거 같은데, 아쉽지 않으세요?” 했다. 사실 내가 대답한 마이크의 진의는 ‘창작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인문/예체능 계열이라면 작가나 작곡가, 자연계열 쪽이라면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잡스나, 페이스북을 만든 주커버그 같은 사람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 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 산다. (중략)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중     


 어떤 직업을 가져야 행복할까? 라는 질문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답변이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 내 존재가 가장 빛나는 일이라니, 그런 일을 생업으로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음악을 하든, 글을 쓰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다. 사실 엄마 된 마음으로, 기왕이면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창작도 잘하는 저작권 부자 이적, 유희열, 성시경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열화 위주의 사회에서 자란 엄마의 자동사고의 습성이니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만의 개성과 기획력으로, 조그마한 공방을 하든, 국수가게를 하든 나는 아이가 정말 즐거운 일로 평생의 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100세 인생 아닌가.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리 살면 좋겠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재능만으로 밥벌이 하는 외길을 걸어가는 일에 큰 부담을 느낀다. 어떤 분야에 재능을 감지해도 ‘나는 부족하다’라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나는 이를 악마의 속삭임 이라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느 직종이건 흔들림 없이 직진하기란 쉽지 않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는 역으로 직진하는 자들이 희소한 만큼 그 진가를 누린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때늦게 깨달은 바로는 누가 뭐라고 하든, 마음먹은 분야로 뚝심있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결국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한때 <넛지>라는 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1만 시간의 법칙’이 이야기 하듯,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을 거듭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나는 힘주어 믿는다. 그래 까짓 것, 최고, 전문가가 아니어도 어떤가. 자신만의 소신으로 행복하게 생을 유지해 나갈 힘만 있다면 잘 사는 인생 아닌가.     



 아이 돌잡이 얘길 하다가, 왜 이리 생각이 많아지는 것일까. 소아정신과 노경선 선생님의 명저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에는 ‘내 부모를 잘 알아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라는 메시지가 중요하게 서술된다. 그렇다. 내 아이가 이러저러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혹은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나가 크게 작용함을 느낀다.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결국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음을 이 글을 연재하며 더 자주 느낀다.     


 솔직히 회사원으로 살았던 날들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가는 보람, 한 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실감하는 일, 세계를 무대로 기업이 상품을 만들고 홍보하고 판매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일 등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일의 규모가 크다 보니,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야근 후 새벽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일의 재미를 느끼는 것 이상으로 강행군을 하다 보니, 팀원 대부분이 치질, 변비, 생리불순, 만성두통 등 갖가지 지병에 시달렸다. 노동 강도가 높다보니, 직원들은 예민했고 일의 즐거움도 사그라 들었다. 친구들과도 연락이 뜸해졌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물론,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고, 어느 직급 이상이 되면, 스스로 업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연차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봤지만, 주위 팀들을 둘러봐도, 선배들의 삶은 내가 그리는 40대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내가 여러모로 그 직군과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다른 팀이나 리더십 아래에서 일했다면 또 달랐을 수도 있다. 내가 이 분야에 대한 흥미를 느껴 더 오래 견뎠다면, 잦은 야근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나의 커리어의 청사진을 그리지 못하고 퇴사했다.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나의 짧은 경험이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만한 노력을 이 회사가 아닌 나 자신에게 쏟는다면 어떨까? 4시간을 겨우 잠들었다 화장을 고치고 다시 출근하는 아침 전철에서 나는 자주 생각했다. 어떤 노력에 대한 보상의 기대치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돈, 명예 보다는 ‘행복’쪽이 먼저였다.     


 퇴사 이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프리랜서로서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했다. 스스로 스케줄을 만들고, 내 삶을 기획하는 즐거움은 꽤 컸다. 그때 느낀 것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직업 탐색의 기회를 더 많이 가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인턴십이나 봉사활동으로 직업 경험을 하려하지만, 막상 본인이 하고 싶은 다양한 직군을 경험해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는 사실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방송국, 신문사의 기자를 가장 많이 봐왔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나와 보니, 너무나 다양한 분야와 직업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이 내게 맞고, 하는 탐색에 소홀했음이 후회스러웠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재능과 끼를 가진 친구들과의 교제가 즐거웠다. 그러나 그들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졸업을 앞두고는 초조해져갔다. 자신을 받아주는 회사에 자신을 내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공채 인원이 점점 줄어가던 시절이었다. 인생에서 큰 실패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미취업 상태는 공포 수준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취준생에서 하루 바삐 직장인이 되고자 하는 갈망에 도취됐다. 나의 적성, 1인 기업을 해볼 만한 용기, 프리랜서로서 직진하고자 하는 패기 등을 가져본다 해도 사실 주변에 롤모델이 없었다. 수능 배치표에 의해 서열화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10대를 마감하고, 되도록 안정적이고 큰 조직의 일원이 돼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20대를 지내왔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대리, 과장, 차장, 팀장이 되어 간다. 행복은 사치였다.


 

 내가 아이에게 할 일은, 아이에게 가능한한 다양한 직업들을 직간접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걸려도 아이 스스로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그려볼 시간을 갖게 독려하는 일일 것이다.    

 

 대학시절 국문과 전공수업인 ‘소설창작론’ 시간에 인문계열 학생은 물론 공대, 의대생들까지 수업에 참여하면서 각양각생의 수준있는 창작물이 쏟아져 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소설창작론 수업시간에 극찬을 받은 이들 중 현재 직업 작가로 사는 이는 손에 꼽힌다. 물론, 대중적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방증일 수도 있다. 최근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소설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에도 꿈을 향해 직진해온 삶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재능과 용기를 가졌더라도,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대부분은 꿈을 접게 마련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 중 절대다수가 안정적인 밥벌이를 향해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월급쟁이를 1차적 목표로 하지만, 대부분 마음속에 작가나 글을 쓰는 어떤 일을 염두에 두고 산다. 소설가 장강명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부럽다. 나도 사실 작가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동료 기자들의 고백이 이를 보여준다. 그 역시 공대 출신이지만, 기자 생활을 거쳐 결국 창작활동에 매진하게 된 작가다.     


 사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죄다 이름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수십장의 입사원서를 쓰고, 떨어지고 좌절하기를 밥 먹듯 했기 때문에. 아니, 이 정도 똑똑한 사람들의 꿈이 결국 ‘자기 밥벌이’ 였나. 그렇게 패기가 없나 하는 아쉬움 말이다. 나는 못하더라도, 나보다 용기있는, 혹은 재능있는 누구라도 그리 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것이 내 아이가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된 모양이다.      


 사실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시대에 재능을 운운하는 자체가 베짱이 울음소리로 보일 수도 있다. 취업마저도 제 때 못 하면, 겨우 오른 계층이동의 사닥다리에서 완전 퇴출될 것 같은 공포, 내 용기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무언가가 우리를 더 독하게 거대한 조직사회의 일원으로만 살다가 죽게끔 내몰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어쩐지 서글프고, 누군가는 다르게 살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생업으로 당장 행복하게 살 순 없어도, 취미생활이나 다른 인생의 즐거움을 더 누리며 살 순 없을까. 일본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시절, 가장 부러웠던 것은 3학년 때 이미 취업할 회사가 정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비슷한 현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대학에서 배운 것과는 별개로 토익 공부를 더하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에,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를 하고, 제 2외국어 자격증에, 인턴십에, 공모전에,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복수전공 하지 않아도, 본인에게 걸맞는 직장을 찾고,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대학생들 대부분이 운동이나 음악 등 취미생활이 과도하다고 할 만큼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할 시간 여유가 많다는 사실이 더욱 부러웠다. 나아가 대학에 다니면서도,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든, 혼자 자취할 공간을 갖고 자기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사실 역시 부러웠다.     


 그렇다면 돌끝맘이 꿈꿀 수 있는 희망이란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일에 매진하고, 그로써 보통의 삶을 일구어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아닐까. 생업은 그렇다 쳐도 취미생활이라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삶을 살게 할 순 없을까. 그 근사치에 나마 다가가기 위해 나의 세대가 할 일은 무엇일까. 개탄만 하고 끝내기엔 너무 비겁한 것 같아 잠을 설친다.      


 손 쓸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사교육 시장과 '계층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명문대의 강남출신 쏠림 현상, 사회적 박탈을 내면화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 그걸 손 놓고 볼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한숨짓기보다, 내 아이다움으로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제는 더 이상 좋은 대학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 않듯이, 여타의 선진국들처럼 전문학교나 직업교육으로 다채로운 직군의 롤모델을 소개하는 장이 넓어지고, 아이들이 계층을 막론하고 ‘행복한 삶’의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꼭 판사봉에 청진기여야만 하나?  행복하면 안 되나?  이젠 좀 그런 이야길 해도 되는 아이들의 시대가 되면 좋겠다.

keyword
첫째와 둘째 사이에서의 육아를 늘 고민하는, 초보 아빠.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엄빠가 함께 쓰는 육아 일기, <첫째와 둘째 사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