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첫째와 둘째 사이_아빠
부끄럽지만, 최근 큰 다툼이 있었다. 부부싸움의 장면이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늘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해진다(?). 작은 화젯거리로 말이 오가다가, 서로의 감정이 자극되기 시작한다. 상대의 마음과의 교집합 영역은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급기야는 서로에 대한 공감 표시계가 ‘제로’를 가리키는 순간,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 그랬어? 왜 나한테 난리야?
시작이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날 선 비난을 쏟아 놓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일 뿐만이 아니라, 예전에 섭섭했던 일까지 풀어놓는 통에, 다툼의 판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첫째의 출산 후에는 사소한 짜증이 정신없는 육아에 덮여버려서 그런지, 실로 오랜만의 큰 다툼이었다.
신혼 초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라고 믿고 싶다) 우리 부부는 참 많은 싸움을 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온 지금이야 둘 다 너무도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었다고, 그때로 돌아가면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의 서재 씬처럼 과거의 자신에게 당장 결혼을 중단하라고 소리 지르겠다며 소름 끼치는 농담을 웃으며 건네지만, 그때의 우리는 참, 굉장히 힘들었었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내가 가진 자괴감은 더욱 컸다. 우리 부부간의 싸움은 서로에 대한 섭섭함뿐만이 아닌 양가의 집안을 비롯한 여러 복잡한 정황들과 역동이 총 망라된 것이었으니, 불씨는 머금은 채 타다 남은 재처럼 어떤 사건이나 감정이 우리를 들쑤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정은 머리끝까지 활활 타올랐다. 부부싸움에 관해서 쓰자면 정말 팔만대장경을 쓸 정도로 지리하고도 수많은 이벤트들이 나를 관통했다. 그 동안, 내 감정의 밑바닥, 인간 관계의 복잡 오묘함, ‘나’라는 인간에 대한 처절한 실망감의 경험이 내 몸과 마음을 쓰리게 핥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분노는 다시 고스란히 아내를 향해 투사되곤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군 복무를 시작한 3년의 기간 동안 우리 부부의 관계는 그제야 성숙해지기 시작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아이를 가져보려 노력했지만 잘 안 되었고, 반강제적으로 아는 이들이 많이 없던 지역에, 그것도 밤 10시만 되면 적막강산이 되는 곳에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자연스럽게 부부는 누구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일상에 대한 정제되지 않은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매개로 결혼했지만, 부부에게는 동지애(partnership) 또한 무척이나 중요한 덕목임을 그제야 서로 깨달았다. 군 복무의 막바지에 생긴 첫째는, 금 갔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동여 매 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출산과 함께, 둘 사이의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휴전이었지만!).
오랜만의 싸움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의 감정은 불타올라 이성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숨기고 있었던, 혹은 자신도 모르게 억누르고 있었던 기억들이 총알이 잇달아 장전되듯 쉴 틈 없이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상대를 향해 발사되었다.
싸움을 멈춘 것은 아이의 반응이었다. 아이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다 이내 아빠의 품에 급하게 안겼다. 나름의 해결 방법이었으리라. 하지만 아이를 안은 채로 엄마를 향해 독을 뿜어대는 아빠의 목소리에 첫째는 이내 안긴 채로 ‘얼어버렸다’. 서로에게 던질 말을 생각하며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를 때, 아이는 너무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자신을 탓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누가 들어도 ‘서러움’의 감정이 묻어나는 울음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다툼은 소강상태를 맞았다. 아이는 몇 차례 칭얼대다, 평소보다 늦게 지친 듯 곯아떨어졌다.
오랜만의 큰 다툼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쉽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툼의 원인이나 그 당시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상처가 아문 한참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둘 다가 지루한 다툼의 시간 동안 깨달은 탓이다. 하지만, 다음 날 첫째를 보던 아내의 말이 나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아이가, 평소와 달라. 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전화하듯이 뭐라뭐라 목소리를 높이다가, 소름 끼치게 소리를 질렀어. 예전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거울 뉴런 (mirror neuron)이라는 이론이 있다. 90년대 이탈리아의 한 과학자의 연구에서, 원숭이가 특정 활동을 할 때와, 다른 원숭이가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을 바라볼 때 모두 동일한 뇌 부위가 활성화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상대방을 볼 때, 마치 내가 상대방인 것처럼, 상대방의 마음에 이입하여 반응할 수 있다는 가설을 입증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empathy)과 마음이론(theory of mind), 그리고 모방과 학습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있다는 것은 인간의 여러 행동을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성장하는 아이의 뇌의 어딘가에서는, 부모의 말과 행동, 상황에 반응하는 특정 패턴들을 인식하고 암호화하여 저장하며, 다시 저장된 내용을 바탕으로 부모의 행동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특정 상황에서는 특정한 반응으로 대처하는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게 된다.
돌이 갓 지난 첫째 아이는 뇌의 신경체계가 정교하지 않아 자신의 경험을 잘 정제해서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경험의 처리 과정 또한 일관적이지 않다. 아이에게는 너무 두려웠던 다툼의 기억이 그대로 뇌의 어딘가에 파편처럼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놀이를 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을 때, 우리 부부가 했던 그대로 서툴지만 격렬하게 그 감정을 표현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우리의 다툼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머쓱함도 잠시, 이내 굉장히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투명함은 그날 이 후 우리 부부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의 말과 행동, 감정표현의 결이 하나부터 열 까지 모두 부모의 몫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여과없이 그대로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좀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가끔은 이 중요한 사실을 잊을지라도, 아이라는 거울은 우리 부부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이를 상기시킬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그러한 아이의 모습을 통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며, 아이가 비추는 자신들의 모습이 부모 또한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