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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Feb 02. 2018

부모되기 연습, 그 아름다운 작별

(7) 첫째와 둘째 사이_엄마

 외동딸로서 부모님의 관심 가운데 자란 나, 외아들로서 집안에서 가장이나 다름없이 자라온 남편. 이런 둘의 결혼은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결별을 예고하고 있었다. ‘품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어느 집이나 30년 가까이 함께한 자식을 떠나보내고 나면 부모로서 서운한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동시에 자녀 또한 결혼 후에 이전의 가족구성원들과 거리감이 형성되면서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혼 전에 친정어머니와 일상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던 나는 결혼 후에도 작은 의사결정도 친정어머니의 인생지혜에 기대는 버릇을 이어갔다. 10년간 혼자 살던 서울에서 떠나와, 친정과 시댁이 가까운 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친정어머니에 대한 나의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하던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에게 심리적 의존도가 높으셨던 어머님 또한, 아들을 집에서 떠나보낸 후 아쉬움이 크셨을 것이다. 평소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지만, 눈에서 멀어지자 이내 불안감이 생기셨을 것이다. 아들 가진 엄마들이 모이면, ‘며느리한테 아들 뺏긴 스토리’를 자주 듣는다고 하셨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시는 속내를 보이신 것이리라.      


 당시에 나는 작은 일도 친정어머니와 상의한 후 남편에게는 결정된 사실을 알리는 일이 잦았다. 시댁에 예를 갖춰 어떤 일을 해야 하거나, 배우자 친인척 접대 등에 있어서 남편도 나와 같이 처음 겪는 일이 많았으므로, 인생을 더 오래 살아오신 친정어머니께 여쭤보는 편이 좋았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친정어머니는 신속하게 행동력을 발휘해 주셨기에, 남편보다는 친정어머니께 자연스레 도움을 요청했다. 친정어머니 또한 자식의 어려움을 들은 이상, 도와주실 수밖에 없었으리라. 동시에,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의존은 결혼 후에도 계속 되었다. 그렇다고 나 역시 “어머니,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결혼 전이랑 똑같이 아들을 대하시면 곤란 하세요.”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해오던 대로 하는 건데,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 네 사람. 따라서 우리부부는 결혼 했지만,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몸은 함께 있지만, 많은 부분이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 머무른 채였다. 그야말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모두 바보여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며느리, 사위, 장모, 시어머니 같은 역할들을 처음 하면서 겪는 미숙함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 전의 상태는 관성이 붙을 대로 붙어서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친정엄마 말이 더 합리적이잖아.” , “우리 엄마가 (너보다) 나한텐 더 중요해.” 이런 류의 철없는 말들이 당시에 오갔던 걸로 보아, 양가 부모님과의 관계의 관성이 부부사이를 더 힘들게 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사랑에도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혼 전에) ‘해오던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몰랐다. 아니, 알았어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의 기초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어야 했다. 결혼을 앞두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수업을 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닥치고 나서야 우린 겨우 깨달아갔다. 남편의 군 복무지가 양가 부모님들로부터 약간의 거리가 있는 곳으로 결정되면서, 부부관계는 조금씩 개선되어갔다. 물론 두 사람의 뿌리인 부모나 형제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다.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부부 두 사람이 기초가 되는 결혼에서 둘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이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부가 서로에게 적응해 나가기도 바쁜 그 시간에, 다른 여러 관계들로 몸살을 앓지 않도록,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줘야 한다.   

  

 부부의 다툼이 반복되던 어느 날 친정어머니는 선포하셨다. “나한테 이제 묻지마. 둘이 알아서 결정해.” 시어머니 또한 조금씩 달라지셨다. “내가 아들내외한테 전화를 너무 자주 한 것 같아. 모임에 갔더니, 요새 시어머니 아무도 안 그런다더라. 난 며느리가 내 식구로 들어온 게 좋아서 그대로 표현한 건데, 그게 좋은 게 아니였어” 수줍게 거리두기를 실천해 보이셨다.     



 시댁과 친정으로부터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자, 둘은 진짜 부부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둘만 덩그러니 있는 상태가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둘은 부부관계의 질서를 자연스럽게 익혀나갔다. 사소한 결정도 우리 두 사람이 이룬 가정을 우선순위로 두는 연습을 해나갔다. 가정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이 시작된 결혼이라 실수는 필연적이었지만, 실수하지 않고도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최선의 의사결정'은 부부 두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결정이었다. 합리성이나 경제성이란 측면에서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부 두 사람이 각자 수용하기 어렵다면,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선택지라고 우겨도, 좋은 결론이 아니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묻는 것, 관계를 망치지 않고, 서로의 입장을 헤아린 다음, 배우자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 서로의 마음에 더 좋았다.   

  

 한번 상처 입은 마음은 돌이키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많이 봤다. 부부가 함께 결정해 조금은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둘이 관계가 좋다면, 다시 머리를 맞대고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나와 우리 아이들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할 것이다. 부모라는 존재는 가장 마지막 보루, 울타리가 되어주는 정도면 좋을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옆집 아주머니’ 정도로 지내는 게 좋을 것이다. 옆집 사람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정해지는 존재다. 내 아이 역시 나와 남편의 이러저러한 유전자의 조합으로 태어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열 다섯 살 터울의 옆집 아주머니와 친구처럼 지냈다. 무슨 이야기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한참 인생 선배인 그 분과의 교제는 참 편안했다. “애 아빠가 집에 없거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하면 바로 우리집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다. 하지만, 늘 존대해 주셨다.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거니와 서로에 대한 기대도 없다.  채근하지 않는 관계, 그게 참 맘에 들었다. 어쨌든 서로의 사생활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거리에서 긴급할 땐 도와주는 '이웃' 정도로 아이들과도 지내면 좋겠다. 예의를 갖추어 서로를 대하고, 서로의 삶이 있음을 존중하는 사이 말이다. 옆집 아주머니는 내 인생을 좌지우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우리의 과한 사랑과 기대가 아니더라도 배우고 성장한다.

 ‘기대가 없는 관계’가 가장 편안하다. 기대는 그 기대에 대한 실망과 늘 맞닿아 있기 때문에. 아직 아이를 본격적으로 교육시킬 연령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큰 기대가 없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공중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 옆집 아주머니가 그런 이웃이라면 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욕심을 부린다면,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고, 제 밥벌이를 하는 아이라면 더 좋겠다. 이 역시도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의 연장선이다.     


 관계에서 '기대가 곧 족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내가 아니다. 자신의 좌절된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면 안 되는 이유다. 부모가 유학을 준비했다가 실패 했다고, 아이에게 유학을 강요하고, 영어를 못해 힘들었던 유년시절 때문에,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영어를 열심히 가르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유학을 강요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이를 교육하면서 부부가 싸울 일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가정경제를 꾸려나갈 때에도, 향후 자녀가 성장하고 나서 어느 수준까지 교육비를 지원할 것인가, 어떤 교육기관에 보낼 것인가 등 1년, 5년, 10년 단위로 계획을 부부가 함께 세우고, 수정해가야 한다는 것도 배우는 중이다.  '아빠의 무심함,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를 명문대로 보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 두 사람의 안정된 커뮤니케이션이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될 것임에 나는 더 무게를 둔다.


 태산을 옮기는 무모한 짓도 부부가 함께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당신 혼자 시작한 일이잖아. 당신 혼자 책임져. 너희 모녀가/너희 모자가 한 일이잖아.” 이래서는 부부사이의 깊은 골을 메울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관성에 약한가.     


 신혼의 단꿈은 커녕, 양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둘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들이 있다면 꼭 말해줄 것이다. 임신을 알고 난 후 아이를 만나기까지 7~8개월 동안이라도 결혼의 기초를 든든히 하는 ‘부모되기’를 준비하면서, ‘결혼 전 가족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꼭 연습하라고. 내 아이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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