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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an 24. 2021

사랑 (Love)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2021년을 맞이해서 쓰는 첫 번째 글이다. 많은 일이 있었던 2020년이 유독 길다고 느낀 것과 동시에 그 끝이 생각보다 허무했고 2021년을 그러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이제는 가끔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보면 콘서트장에서 공연을 하는 가수들의 모습보다 가수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모습이 더욱 눈길을 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행동과 누릴 수 있었던 자그마한 요소들이 제약을 받게 될 때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항상 한 박자 늦게 알게 된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일까, 한 박 자라도 늦게 알았기에 이젠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를 소개하는 글을 쓰다 보면 따분하고 어려운 문학 '시'라는 인식, 어렵다는 인식보다는 내가 힘들 때, 내가 복잡할 때 내게 잠깐의 여유를 전달해주는 그런 문학 '시'로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항상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시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사랑'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1895. 5. 12 ~ 1986. 2. 17)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1895. 5. 12 ~ 1986. 2. 17)는 20세기에 가장 훌륭한 철학가이자 정신적 스승으로도 간주되는 명상가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어떤 계급, 국적, 종교 그리고 전통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였으면서 학습된 정신의 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한계를 부수기 위한 신념을 추구하였다. 이런 이념은 인류를 완벽하게 자유롭게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6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강연을 하였다. 권위자로서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assumptions)을 의심하면서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관찰자로 살아가길 바랬다. 오랜 시간 동안 강연을 다니면서 그가 사용한 단어는 약 1억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가 생을 마감했을 때 그의 재단에서 강연 내용을 전 세계에 내놓았다.


그는 항상 말하곤 했다. 


"인간은 관계의 거울 속에서, 지적인 분석이나 자기반성적 해체가 아닌 오직 관찰을 통해서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의 시를 한번 보자


<사랑>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기에

언제나 새로우며


최상의 호기심으로 배움에 임하지만

결코 지식을 쌓지 않으며


무엇이 되려고 한 적이 없기에

없음이라고 불리며


끝이 없고 깊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며


앎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모름이라고 불리며


그의 힘은 무한하나 한없이 부드러우며


보지 않는 구석이 없고

듣지 않는 소리가 없으며


그의 덕은 높고도 크나

겸손은 한없이 낮으며


우리의 사고가 끝나는 곳

단어의 의미가 끝나는 곳에서


어쩌면 만날 수도 있는 

그것은 실체로서의 사랑




그의 시를 보는 내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거듭 생각하게 됐다. 내가 아는 일반적인 사랑에 대한 언급 같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처음 시를 한번 읽었을 때는 '이성 간의 사랑'으로 받아들였고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을 관찰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21세기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며, 말할 기회는 또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내 삶 속에서 타인의 개입이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회성이 본질인 사람에게 타인을 빼놓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지만 나 자신을 잃는 경우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unsplash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전달한다. 초단위로 바뀌는 감정들과의 만남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 정신인 고통 모두를 동반하지만 그런 고통을 아우르는 달콤한 감정들 때문에 우린 여전히 사랑을 저버리지 못한다.


예전에 필자가 다니던 독서모임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랑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고 나이에 맞는 사랑을 경험해야지 진정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엔 나는 연애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1차원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사랑'의 의미가 단순히 이성 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길 바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랑'을 함으로써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을 본인보다 더 먼저 생각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나를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 때문이다.


출처: unsplash


우리는 모든 사랑에 서툴 수밖에 없다. 애초에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르게 자라왔던 사람이 감정 하나만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인간에겐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이번 시가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은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시작하고 준비해도 된다라는 말을 전하면서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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