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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an 24. 2021

연후(然後)

진계유(陳繼儒)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방에 들어와 앉아서 글을 쓰면 시간이 빠름이 내 온몸에서 느껴진다. 어느 순간 거실에서 함께 TV를 보는 시간보다 방에 들어와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밖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공허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를 봤는데 시는 짧지만 강한 울림을 전달해주며 거듭 읽게 만들어 날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시는 항상 새로움을 주는 것 같다.  빠른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주는 힘도 있고 느린 시간을 빠르게 가게 해주기도 한다.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글도 좋지만 생각을 전달하는 글인 시는 나에게 멘토와도 같다


이번의 시는 < 진계유(陳繼儒) - 연후(然後) >라는 시이다.


진계유(陳繼儒, 1558년 ~ 1639년)


진계유(陳繼儒, 1558년 ~ 1639년)는 중국 명나라의 서예가이자 화가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높은 우아함을 좋아하였다. 젊었을 때 동기창, 황형이라는 저명한 화가들과 명성을 나란히 할 정도로 그림과 서예 실력이 뛰어났었다. 하지만 29살 때 의관을 태우고 관료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고 산에 은거하며 저술에 집중하였다.


시와 편지에 쓰는 짧은 글들 조차 풍치가 있었다. 그림에도 능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여러 그림들 중에 묵매를 최고의 특기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이제 그의 시를 한번 보자.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겠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겠네


일을 뒤돌아 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겠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겠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겠네



그의 시는 본디, 한자이기에 뜻을 풀어내는 사람들마다 약간의 다름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큰 뜻을 변하지 않는다. 진계유의 시를 보면서 시에 대한 소재가 예전과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게 느껴지고 그런 생각을 지금도 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출처: unsplash


어떤 일이 벌어진 다음,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나올 때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시에 '진계유'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단순하게 후회하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라는 느낌일 수도 있고 모든 구절 뒤에 경박했음, 소란스웠음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잘못이 많았음을,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해당하는 것은 진계유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자아성찰을 하며 쓴 글이라고도 생각해보았다.


학교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기에 시를 풀이하는 데 정답은 없다. 나는 진게유 자신에 단정 짓는 것이 아닌 그만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돌아보기 전에 우린 남들의 행동들을 되돌아보며 그것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린다. 옳다. 틀리다. 다르다. 등등 그러고 나서 나에게 견주며 내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런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태어날 때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기에 오로지 나만을 먼저 바라볼 수는 없다.


출처: unsplash


사회속에서의 개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많은 '가면'을 쓴다. 당연히 필요한 가면이고 없어선 안될 가면이다. 그런 중요한 가면이라도 우리는 '가면'을 벗는 법도 알아야 하고 벗은 상태로 거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가면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개인 선택이라면 존중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라면 그런 선택으로 매 순간 선택에 내가 없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출처: unsplash



'가족'이란 그런 가면 벗는 법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가족과의 대화가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일기나 글을 쓰는 것도 내 감정을 배설하기에 적혀 있는 글씨체, 단어, 쓸 때의 기분(쓰기 싫다, 나쁘지 않다 등등) 그런 모든 과정들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필자도 힘들 때 가족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그렇지 못할 생각과 일들은 혼자 글을 적는다. 내가 써놓은 단어들, 글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된다.


절대적인 방법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나를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unsplash


우린 모든 것이 처음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나에겐 처음이다.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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