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 이어서 쓰는 87번째 습작
2023년에 첫 번째로 쓰는 글이다. 항상 글의 첫 문장을 쓸 때 많은 고민을 하다가 글을 쓰는 횟수나 날씨등 상투적인 표현을 쓰게 된다. 습관인 걸까?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글 쓰기 전에 예열과정인 것 같다.
우리가 친한 사람 외에 처음 보거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런 의례적인 말들을 계속 쓰는 건 그 말의 사전적인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그 말 이외의 말의 온도나 말하는 속도, 표정과 같은 이외의 나를 알리는 신호 같은 느낌도 있다.
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글을 안 쓰고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왓챠에서 '조금 매울지도 몰라'라는 드라마인데, 주연 역을 맡은 한석규 배우가 작가로 강연을 하는 장면에서 말한 대사가 있다.
"우린 보통 이 글쓰기를 할 때, 이 어떻게 이것에만 신경을 많이 써요 그렇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쓰는 걸까요? 자, 이 글쓰기가 하기 싫은 숙제 억지로 하는 것 같은 그런 고역이 돼선 안 됩니다. 예쁘게 잘 쓰려고만 하면 글쓰기 숙제가 되고 스트레스가 돼버려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먼저 그냥 써보는 겁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바로, 그런 글쓰기를 하세요. 오늘 수업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조금 매울지도 몰라' 2화 中 (대사 인용)
한석규 배우님의 목소리로 들어서 인걸 수도 있고, 솔직히 글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보고 난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글을 읽고 들었던 생각을 붙잡고 싶어서 시작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잊게 되는 것이 싫고 아까웠다. 그래서 메모부터 시작하여 점차 공책에 독후감을 쓰고 블로그까지 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럼 그때의 행동이 어땠냐면 잘 쓰려고 했다기 보단 그냥 썼다. 쓰면서 내 생각과 책 내용을 곱씹으면서 몰입하다 보면 즐겁고 뿌듯했다. 그래서 이젠 잘 쓰는 것과 쓰는 것에 비중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브런치에 들어왔다.
오늘의 감정을 잘 버무려 만든 글은, 물 먹는 순간을
여러 파편으로 쪼개 언어로 표현해본 시, '바람'이다.
< 바람 >
갈증을 풀기 위해 정수기로 달려간다.
가쁜 호흡 때문에 약간 흐려진 초점을 종이컵을 찾는다.
일회용 종이컵은 얄궂게도 딱 붙어 입구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뭉뚝한 손톱을 그 사이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간신히 핀 종이컵 사이로 물이 채워지는 모습은
'컵 들고 있는 손이 시원한 걸 보니 차가운 물이네.'
'빨리 마셔야지, 빨리, 빨리...' 등
사람을 생각에 잠기거나 생각을 멈추게 한다.
기다림 끝에 나온 물을 마신 순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여러 번 기침을 했다. 사레가 들렸다.
다시 물 따르는데 전처럼 시원하지 않아 생각해 보니
기침하며 손 짚다가 '정수'로 바꿔놨다.
마지막으로 다시 '냉수'를 눌러 물을 따랐고
그제야 갈증을 풀 수 있었다.
난 생각처럼 안된 순간에 짜증을 내야 할지
난 생각처럼 물을 마셨다는 사실에 괜찮다고 생각해야할지 고민하는 중에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다시 뛰어갔다.
시를 쓸 때마다 느끼지만 내 시가 누군가에게 작은 공감 혹은 질문을 던져졌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나는 글 을 쓸 때 우리가 살아갈 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하는 지를 정할 때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에서 만큼은 작은 찰나에서라도 내가 하는 선택이 내 마음을 지키는 쪽, 그런 결정을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