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으로 진급한 지 9개월만의 일이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밤 11시, 퇴근하는 택시 안에서 여지없이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왜 내가 또 작성하고 있는 거야...하...'
'내일 가서 개발팀에 그거 되나 확인 한번 해보고, 팀에서 만든 샘플 콘텐츠 퀄리티 체크한 다음에 운영팀에 넘기고...'
'A씨는 오늘 또 하루 종일 뚱하고 있던데, 내일은 또 A씨랑 다시 이야기 좀 해봐야지...A씨가 영 설득이 안되면, B한테 좀 A씨 협업 잘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해야지...'
고요한 택시 안에서 머리 속은 여러 생각과 계획으로 빠르게 굴러갔다.
팀원들이 '팀장님은 MBTI가 J라서 그래요!'라고 했던가, 잠시 멍 때리는 순간에도 내일 출근하면 해야할 일들을 나열하며 시뮬레이션 해보고 있었다.
어쩔 때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았다. 계획을 짤 때의 예상 결과는 늘 긍정적이었으니까.
퇴근 길에 차분히 이후에 할 일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 결과가 절대 좋을 거 같지 않은 일들이 내가 짜는 계획 안에 늘어났다.
'그래도 해내야지, 책임감을 가져야지. 나는 기획자고, 팀장이니까' 스스로 다독였다.
그러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반기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엉엉 울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눈물 짓던 것이, 소리 내어 우는 울음일 때도 생겼다.
울고 난 다음 날에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일상으로 복귀하여 업무를 처리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무너지는 것은 남편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누구라도 하나, 나의 무너짐을 받아줄 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버텼다.
그냥 버티니 버텨졌다.
그래서 이것 또한 나의 성장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디까지 핸들링 할 수 있는 지 경험하는 과정, 내가 핸들링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크게 놀랐던 남편이 점차 내 눈물에 익숙해질 무렵, 나에게 권했다.
너, 병원 가보는 게 어떨까?
지금 확실히 정상적인 감정 상태는 아니야, 너.
생각해보지도 못한 정신의학과 진료 권유에, '운다고 뭐라고 하는 거야? 알았어, 앞으로 그만 울도록 노력할게'하고 어이없어 했다.
이정도 힘든 건 당연하지, 하고 있는 업무량이 얼마나 되는데...그래도 이 것만 끝나면, 이 만큼만 해내면 그 뒤로는 괜찮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어이없음과 믿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원래도 수면 장애가 있던 나는, 점차 불면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잠을 자고 싶어서 정말 병원을 가봐야 하나 고민했다.
새벽에 간신히 잠드는 나를 보다 못한 남편 손에 이끌려 간 병원.
진료에 앞서, 사전 문답지를 작성하면서 이미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사실 그동안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다.
불면의 끝은 항상 우울감이었으나, 다음 날 회사에 가서 다시 웃고 떠들며 즐거웠으니까.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A부터 Z까지 다 설명을 하기는 귀찮은데...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그러던 중에 이름이 호명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나요?
그 한마디에, 무엇을 어디서 부터 이야기 할까 하던 고민이 무색하게 그동안의 답답함과 불안함, 괴로움을 줄줄 읊어냈다.
'자꾸만 제가 부족한 거 같아서요.'
'결국 내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상대가 내 진심을 전혀 몰라주는 거 같아요. 나에 대해서 오해만 쌓이는 거 같고, 왜 닿지 않는 지...'
'상사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라서, 가능하면 해내고 싶었거든요. 그런게 그게 또 팀원들에게는...'
누군가 들어주려고 작정하고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읊다보니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서, 종국에는 펑펑 울어버렸다.
진료실에는 곽티슈가 있었다. 정확히 환자가 앉은 자리 앞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능숙하게 휴지를 권하셨다.
"편히 쓰세요. 이러려고 여기 있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휴지를 손에 쥐고 울었던 걸까.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티고 버티다가 이곳에서 터졌을까.
눈물이 흐르는 와중에 괜히 위안이 되었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
그 날, 나라는 사람은 완벽에 대한 강박을 지녔다는 사실과 그래서 불안이 높다는 것, 결론적으로 현재는 우울증 증상임을 확인 받았다.
팀장으로 진급한 지 9개월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