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년대 그 시절, 우리네 시골 마을에는 정신을 놓아버린 심성 착한 사람이 한 두 명은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내 나이 여남은 살 때쯤의 이야기이다. 우리 마을에도 흔히 말하는 실성失性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점순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녀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년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춘하추동春夏秋冬 같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녔다. 온종일 들판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아무데서나 치마를 걷어 올리고 오줌을 누었다. 머리카락 사이엔 지푸라기나 오물이 묻어 있었고 귀밑머리엔 늘 꽃송이를 꽂고 다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녀가 하는 행동들은 대 여섯 살 수준의 어린 아이 같았다.
그런 그녀가 자주 하는 행동은 베개를 긴 광목 기저귀로 감싸서 등에 업고 다니는 것이었다. 여름, 뙤약볕이 쏟아질 때는 나무 그늘에 앉아 그 베개가 아기인 양 젖을 먹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가도 해질 무렵이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노을 지는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다보곤
했다.
그녀는 이웃 마을에 사는 청상 과부였다.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이 영영 돌아오지 않자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린 그녀를 동정했지만, 그들에게 그녀는 그저 미친년일 뿐이었다. 남편이 죽고 난 얼마 후 그녀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뱃속에 아이를 가진 채 남편을 떠나보낸 충격이었을까, 얼마 후 아기까지 잃고 말았다. 그 후 정신을 놓은 그녀는 베개를 업고 다니기 시작했다.
짓궂은 동네 아이들은 점순이를 따라다니며 나뭇가지로 치마를 들추기도 하고, 귀밑머리의 꽃을 빼앗아 제 머리에 꽂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미친년이라고 조롱을 퍼부을 때마다 그녀는 업고 있던 베개를 가슴 쪽으로 돌려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어디론가 달려가곤 했었다.
점순이는 밥 때가 되면 우리 집으로 왔다. 종일 마실 나갔다 제 집 찾아 돌아오는 우리 집 복구처럼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녀에게 밥을 줄 때 사람에게 주는 음식처럼 주지 않았다. 밥을 쪽박에 퍼 담고 김치를 그 위에 덜퍽 엎어 주었다. 마치 개밥 주는 것처럼 그랬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방에는 들이지 않았지만 부엌 바닥에 새끼를 꼬아 엮은 멍석을 펴고 그 위에 밥상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앉아 동문서답하는 그녀를 따뜻한 가슴으로 받아주었다. 그녀가 마을에 나타나지 않는 날에도 무쇠 솥 안에는 한 그릇의 밥이 사랑처럼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점순이는 어머니의 말이라면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잘 들었고,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타인을 부르는 유일한 호칭, 아줌마. 그것은 어머니를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그녀는 “아줌마, 점순이 배고프다”라고 했다. 그런 그녀를 어머니는 마치 시집간 딸을 대하듯 했다. 머리에 묻어 있는 지푸라기를 떼어주고, 속곳이 다 보이도록 치마를 아무렇게나 입은 그녀의 옷매무새를 고쳐 주시곤 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물기를 머금어 살을 에이 듯 했다. 일순간 사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매섭게 춥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점심을 고구마로 때우고, 눈 내리는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데 점순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겨울에 점순이는 통 바깥으로 나 돌아다니지 않았다. 마을에서 그녀를 보는 것은 매우 오랜만이었다. 어머니는 집나간 딸이 돌아온 것 마냥 그녀를 반기셨다. 유난히 추운 날 찾아온 점순이를 아랫목으로 데려가 앉히셨다. 고구마 바구니를 가운데 두고 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날따라 점순이는 정신이 말짱한 사람 같았다. 어머니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대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낮잠에 빠져 들었다. 깨어보니 그녀는 가고 없었다.
따사로운 봄볕에 눈이 다 녹아내릴 때까지 점순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앞산에 진달래가 꽃망울을 맺을 무렵, 눈이 아직 녹지 않은 바다 쪽, 둑의 어느 후미진 곳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이미 가마니뙈기로 시신은 덮여있었다. 지서에서 순경이 도착했고 가마니는 들추어졌다.
점순이었다. 옆으로 웅크리고 누워 있었지만 분명 점순이었다. 그녀는 가슴에 베개대신 분홍 보자기로 꽁꽁 묶어 싼 작은 보따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보따리 안에는 찐 고구마 두 알, 많이 낡았지만 꼼꼼한 바느질 솜씨로 무릎근처를 꿰맨 자국이 역력한 빨간색 내의, 그리고 빛바랜 두툼한 외투와 양말, 장갑 등이 들어있었다.
살을 에이 듯 추웠던 그날 그녀는 제 정신이 들었던 것 같다. 베개 말고 어머니가 싸준 물건들을 가슴에 품고 눈보라 치는 바닷가 둑길을 홀로 걸었나 보다. 죽은 남편과 미처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난 아기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바닷가 둑길을 걸었을 그녀가 죽음에 이른 것은 정신 놓은 사람의 지각없는 행동이 불러온 사고라고 두런거렸지만, 그날의 그녀는 말짱한 정신으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그날의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지서에서 사람이 한 명 더 파견된 후에야 시신은 수습되어 손수레에 실려 떠났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울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냥 혀를 찰 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 해의 겨울과 봄이 지나고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이사를 했다. 그렇게 떠난 지 몇 해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버리셨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난 후 첫 추석을 맞이한 나는 홀로 고향을 찾았다. 이웃들은 거기 그대로 살고 있었다. 고향에 살 때 어머니와 각별하게 지냈던 아주머니 집에 들렀다. 토방 앞에 신발들이 옹기종기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으며, 가끔씩 웃음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토방 가까이 다가가니 때마침 나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연히도 내가 문밖에 있는 것을 알 리 없는 그들이 내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에 대해 무슨 이야기들을 할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안타까워했다.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의 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 방문을 열지 못했다. 떠나가신 어머니가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떠났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와 이곳에서 동행하고 있는 것은 생전에 보여주었던 사랑과 선행이었고 그 사랑과 선행의 한 자락에 점순이가 있었다. 점순이의 죽음에 유일하게 눈물을 흘려준 어머니를 기억하며 어머니의 빈자리로 먹먹해졌던, 나의 가슴은 서서히 어머니를 닮아가고픈 소망과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