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생각

재미

by 심재경


Sunrise/Sunset


거실에서 영화를 볼 때면 창문을 등지고 보아야 한다. 우리 집 텔레비전은 창문과 구십도 각도를 이루고 있어 창문을 등지고 보아야 한다는 것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구십도 틀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집 창문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동쪽인가?) 한 오후 세시 정도만 되어도 햇빛이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면 밝기를 최대로 올려보아도 햇빛은 이길 수가 없다. 해가 아홉 시는 되어야 지는 샌프란시스코이기에 나는 그렇게 하루 종일 창문을 등지고, 쿠션을 이용해 어떻게든 태양을 가린 채 고개를 구십 도로 돌리고 영화를 본다. 그렇게 꾸역꾸역 본 영화들에 대해 생각하면 주로 영화의 이미지 그 자체보다 영화를 보았던 나의 자세와 불편함이 기억에 남는다.


어제는 오랜만에 조깅하면서 에이아이 관련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에이아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는 전에 사진과 영화라는 매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카메라의 발명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예술은 종말 했다며, 이제 현실을 설명하거나 상징하거나 표현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물을 만들거나, 그러한 행위 따위는 이제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했다. 그러자 추상주의 미술이 등장하고 초현실주의가 등장하고 예술의 필요를 재증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렇다면 영화의 필요는 기존에 있었던 포괄적인 예술의 필요를 대체하게 된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는 현실을 설명하나? 아니 현실을 상징하나? 표현하나? 설명과 상징과 표현은 다른 것인가? 영화의 필요에 대하여.


십일 학년 여름에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이학년 마치고 겨울방학,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육 주짜리 인문학 캠프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내가 들었던 세미나의 주제는 중세시대의 로맨스, 그러니까 연인 간의 사랑 개념의 로맨스라기보다는 낭만주의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어떠한 중세시대의 글들에 대한 세미나였다 (그냥 대충 이쁜 글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았지만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나와 그곳에서 만난 나의 친구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쁘기만 한 글들에 불만을 품었다. 이러한 글들을 읽는 것이 어떤 쓸모가 있나요? 이 글들이 현대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이 글들을 해석하고 너의 해석이 맞고 틀리고, 이러한 토론들에 왜 우리들의 시간을 허비해야 하나요? 그러자 교수님들은 웃으시며 재밌으니까,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 거야. 재밌으려고 너네 캠프 온 거 아니야? 재밌으려고 사는 거 아니야?


예술의 필요에 대하여.


예술에 대한 글들은 차고도 넘치고 예술은 차고도 넘친다. 영화에 대한 글들도 차고도 넘치고 영화도 차고도 넘친다. 깊이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은 예술에서도 깊이를 찾는다. 이제 영화가 현실을 대변하게 되었으니 예술은 현실과 닿아있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기에 예술은 현실을 다르게 해석해야만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가 현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대변하면 그것이 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영화는 기술적으로 훌륭하고 재미도 있으나 크게 의미가 없기에 평점 삼 점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래, 세상은 다양하고 사람들도 다양하지만, 결국 예술은 인간과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이 전쟁에 관해서이든 집안의 가족싸움을 주제로 한 것이든 삶의 본질에 대해 찾아가려고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어젯밤 한 주 일을 마치고 골목길에서 이제는 꺼져가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내가 한 생각은 일은 재미가 없다는 것, 영화는 재미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왜 여기서 죽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삶은 재미있기에, 아니 재미있는 순간들이 있기에, 그렇기에 죽을 수 없는 것이다. 재미가 곧 본질이고 그렇게 영화와 예술은 재미로 사람을 살린다. 재미있다면 그렇게 예술은 제 기능을 다한 것이다.


이전에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불과 일 년 전이지만 내가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사람은 사실 크게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더 이상 젊음을 노래하지 않는다. 매번 술자리에 나가기만 하면 젊음, 젊음 거리고 청춘, 청춘 거리고 했던 그런 모습의 나는 이제 없는 것 같고 글에 여러 한국의 지명들, 을지로에서는 무엇을 했고 그러다가 상수동에 갔고 등등을 읊조리는 것을 즐겼던 나는 이제 지명을 글에 적어내는 것을 머뭇거리게 된다. 에이샙라키나 빈지노가 가사에서 명품 브랜드들을 나열하듯이 한국의 지명들을 나열하는 것이 하나의 멋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멋에 대해 조차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으나 요새는 그저 나의 재미,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 수 있을지, 일만 하다 보면 도저히 재미가 없는데 재미가 없는 채로 언제까지 살아갈 수 있을지. 그러한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주말이 찾아오면 텔레비전에 영화 한 편을 틀어놓고 두 시간 정도는 화면에서 재미를 훔쳐온다. 그렇게 훔쳐온 재미를 품고 또다시 한주를 지낸다.


이렇게 글을 쓸 때에도 재미에 대해 생각한다. 삶이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차라리 일을 처음 시작해서 극한으로 우울하던 작년 가을이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는 재미있는 삶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며, 가끔씩 창작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 책상에 앉아 볼펜을 집어 들면 십 분간 한 글자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볼펜이라는 매체가 문제일까 싶어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또다시 십 분간 한 글자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에는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 삶을 반복한다. 삶에서 재미를 찾으려면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도 일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재미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도 생각하고 그래, 이렇게 고민하는 것을 글로 끄적이면 남들에게라도 재미가 있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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