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생각

사랑

by 심재경



조깅을 하고 오면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구로 담배를 사는 것이 막힌 이후에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한 갑에 이십 불하는 담배를 피우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유럽도 아닌 이곳 미국에서는 서민들이나 피우는 것이어야 하는 담배가 한 갑에 이십 불인 아이러니. 하여튼 한 달 만에 조깅을 하러 밖으로 나갔고 오르막길을 달리는 것은 하루에 열 시간 자고 두 시간 뛰던 대학시절 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따분하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너무 따분하다. 따분한 생각들과 사고밖에 하지 않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이메일이 이십 개 정도 도착해 있고 불안감에 떨며 기상하던 신입 시절의 나와는 달리, 요새는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그렇게나 많아도 그저 귀찮고 따분할 뿐이다. 생각이 많은 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쓸데없이 깊은 생각들을 지워줄 것이라 생각했었고 쓸데없이 깊은 생각들의 부재는 곧 행복일 것 같았다. 이 일은 나의 쓸데없이 깊은 생각들은 없애주고 쓸데없이 얕은 불행들을 선물해 주었다. 욕심이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행복했을까. 어디선가부터 잘못된 것 같기도 하고 잘된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가족은 잘 지내는 것 같다. 가족 톡방에 들어가면 항상 강아지 사진이 있고 우리 가족은 다들 차분하고 부끄러워하지만 사랑은 가득해 강아지를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듯하다. 또또가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한 칠 년이 되었고 사랑을 지나치게 먹고 자라서인지 대리석에 엎드려 있는 사진 속의 또또는 통통하다. 사실 통통하지 않은 적이 잘 없었던 또또는 나와 꽤나 비슷하다. 시간은 정말 빠르고 또또는 어느새 여덟 살이고 엄마 아빠도 나이가 들었지만 사실 우리 가족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얼굴이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센치하긴 해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다. 가끔 엄마 아빠 동생 사진 뒤에 있는 특유의 한국 간판과 나무들, 한국에만 있는 나무들의 특유의 진한 초록색 같은 색감이 있는데 그것을 오피스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내가 참 멀리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 멀리 온 서부는 참 살기 좋은 곳이다. 토요일에 너와 번개로 세바스타폴이란 지역에 가기로 했는데 가는 길 포도밭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간 세바스타폴은 참 좋은 지역이었다. 우리에게 와인을 소개해준 소믈리에는 와인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술이 약한 너에게만 와인을 두배로 주는 소믈리에 때문에 몰래 잔을 바꿔치기해가며 나만 와인을 세배로 마셨는데 햇빛이 쨍쨍 지치는 여름 어느 토요일 대낮에 그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와인을 사랑하는 소믈리에도 반쯤 취한 채로 자신은 결혼만 네 번 했다고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나는 웃으며 앞은 그저 파스텔 톤일 뿐이었고 너는 그런 소믈리에를 봤다가 나를 본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눈을 잘 못 마주쳐서 하늘을 잠깐 봤는데 햇빛이 너무 쨍쨍해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고 너는 나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나는 눈을 감은 채 웃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 온 서부는 참 살기 좋은 곳이구나.


영화를 잊고 살았던 나에게 너는 내가 근처 샌프란시스코 영화관의 큐레이터가 된다면 어떤 영화를 선보일 것 같냐고 물어보았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히치콕의 <현기증>과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흑인 사나이> 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아니 그거 말고, 그냥 아무 영화. 아무 영화 … 했더니 홍상수 극장전 키에슬로프스키 카메라버프 소렌티노 신의 손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네마 파라디소 하면 뭔가 멋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들을 좋아하는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귀엽다는 생각을 했고 나도 영화를 좋아하는데 잊고 살았구먼, 그렇게 또 번개로 너와 같이 록시 시어터 가서 기요시 구로사와의 신작 클라우드를 보았고 개인적으로 영화가 꽤나 구리다고 생각했고 나와서 담배를 피우며 너에게 영화가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열변을 토했고 그런 나를 웃으며 바라보는 너를 보며 이렇게 실망스러운 영화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버를 타고 집에 가며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다. 창문을 열자 공기는 차가웠고 너는 따뜻했고 나는 살아있었다.


일주일에 칠이 있다면 여섯과 반은 따분함 속에 살아가는데 인간은 살아있을 수 있는가, 나에게 반 장난으로 그냥 다른 애들이랑 같이 노조결성해봐, 하고 나도 오피스 가서 애들한테 마르크스는 우리를 위해 싸운거야, 라고 반 장난으로 이야기하고 말만 그렇게 하지 이메일 하나 날라오면 가장 먼저 답장하는 내 성격에 노조결성은 무슨, 일에 싸울 수는 없고 이상한 나의 욕심인가 열망인가 야망인가 하여튼 내 자의로 선택한 일인걸, 그니까 내말은 칠 중에 반, 그러니까 십사 분의 일이라도 살아있게 해주는 너에게 고맙다. 주말에도 말하다가 갑자기 노트북 꺼내서 표정 심각해져도 그냥 빤히 쳐다보다가 책 읽는 너의 따뜻한 단순함, 그 단순함은 사실 복잡한 것이고 넓은 것이고 나였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글을 쓰려고 하면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던 시간이 길었다. 왜냐면 나의 시간 중 살아있다고 느끼는 시간은 없었기에 쓸 것도 없었다. 조깅을 마치고 침대에 누운 오늘 밤 딱히 사랑에 대해 쓰려고 메모장을 연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일기는 곧 시간도 많이 보내지 못하는 너와 멀리 있는 가족에 대해 밖에 쓸 내용이 없는걸. 담배값만큼 내 삶에 가치 있는 것들은 비싸고 하늘은 나에게 쉬운 사랑을 주지 않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