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름이다. 이곳은 구월인데 덥다. 계절이 없는 이곳은 일교차가 곧 계절의 변화 같기도 하다. 아침에는 가을이고 밤에는 여름. 아니 그건 오늘이었고 어제는 아침에는 여름이었고 밤에도 여름. 아니 그건 어제였고 그저께에는 아침에는 가을이었고 밤에도 가을. 가만 생각해 보니 이곳에 봄은 없다. 겨울도 없다. 여름가을여름가을여름가을가을가을여름여름
겨울이 보고 싶다. 작년 십이월에 방문한 한국에서 나는 겨울을 보았다. 새벽 한 시에 기상해서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가면 느껴지는 공기 그것이 내가 본 겨울이다. 저녁 다섯 시에 일을 마치고 친구를 보러 걸어 나가는 길에 밟힌 눈 그것이 내가 본 겨울이다. 이주동안 겨울을 보고 돌아온 이곳에선 그저 여름가을여름가을가을가을 그렇게 계절은 뭉개지고 시간도 흐려지며 나는 어느덧 다시 구월이고 저번에 본 겨울의 기억만 선명한데 올해 난 겨울을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월 이십구일 입대한 나에게 구월은 특별한 달이고 군대 때문인지 전역한 이후에도 구월이 일월 같다. 아, 시간 참 빠르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생 젊고 싶지는 않은데, 벌써 일한 지 일 년이 되었고 벌써 일은 하기 귀찮고 이렇게 뭐라도 쓰다 보면 나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젊음과 청춘을 논하는 글을 읽으며 피식, 그 시간에 인생이나 열심히 살 것이지, 비웃던 나는 사실 나 자신을 비웃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커서 꼭 어른이 될 거야.
한번 인생을 의식해서 살아볼까 한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우버에서 살짝 신기한 냄새가 나는 운전기사를 바라보며 유레카, 나는 지난 이십오년동안 무의식에 잠겨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앞 거리 테슬라 안에서 나는 내가 어떤 강력한 기생충의 숙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정신은 자석 같은 어떤 기생충에 휩쓸려 이십오년을 살아왔다. 여름여름가을가을여름가을
그렇게 봄을 갈망하던 자네에게 주어진 봄은 결국 땀범벅이었고, 그렇게 겨울을 갈망하던 자네에게 겨울은 결국 새벽 한 시 아무도 없는 분당의 한 거리 흡연금지 표지판을 보며 죄책감이 든 자네는 육교를 건너 반대편으로 갔지, 그곳에서도 흡연금지라고 쓰여 있었고 자유롭지 않은 자네는 그날따라 더더욱 자유롭지 못해 벤치 앉아서 울었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이 원하는 게 뭐예요?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이 개새끼야. 흐느끼며 나는 그냥 담배 한 대 피우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하나님, 당신은 거기 계신가요? 왜 이곳에 계절은 없고 시간은 흐린가요?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