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갈망하던 한국은 변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오는 차에서 부모님과 나눈 대화는 재작년 겨울방학 때 나눈 대화와 비슷한 듯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보풀 같은 목소리들은 중학교 시절 집에 오면서 듣던 목소리들과 비슷하게 희미했다. 창밖에 보이는 서해바다도 같은 색이었고 샌프란시스코의 새벽인 인천의 오후에 눈을 감았다. 차 창문에 두 개의 원을 그린다. 완벽하게 동그란 두 원은 서로 겹치지 않는다. 천천히 양옆으로 팽창하는 두 원은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길어지다가 양옆 창가에 닿고, 다시 천천히 위쪽과 아래쪽으로 길어지다가 위아래 창가에 닿는다. 이제는 타원이 된 두 원 사이 빈 공간은 검은색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다음 두 타원 역시 검은색으로 채운다. 이제 창문은 완벽하게 검은색이 되었다. 더 이상 서해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검은색이 된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눈을 뜨니 아파트 지하주차장이었다. 최근 정신분석학에 빠진 여자친구 탓인지 왜 그런 꿈을 꿨는지 궁금했지만 프로이트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꿈을 기억하기로만 했다. 프로이트는 이런 추상적인 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고 나의 꿈은 정신분석학을 반증할 자료인 것이다! 여자친구에게 이론적인 것들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나의 동그라미 꿈 이야기를 해줄 생각에 무척 설레었다. 아무튼 또또는 나를 잘 반겨주지 않았다. 또또도 이제 여덟 살이고 수의사님께 여쭤보니 인간나이로 한 오십 살쯤 된다고 했다. 내가 열여덟에서 스물여섯이 되는 사이에 또또는 한 살에서 오십 살이 되었다. 그러면 또또의 삶에서 오육 년 정도는 내가 또또를 보지 못한 것인데 솔직히 그 정도면 나에게 서운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또또야. 형은 외화벌이를 하고 있었단다. 또또는 작년과 달리 잠을 많이 잤고 자면서 가끔 짖기도 했다. 또또도 원과 네모와 세모들, 추상적인 형체들이 가득한 꿈을 꾸는지 궁금했다. 그 형체들은 나의 1/50배 크기인 또또에게는 꽤나 무서울 것이다.
사회에서 나는 일을 했다, 라고 할만한 직장에 처음 다녀본 일 년 반에 대해 회고해 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보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일 년 반이 지났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다가 대학 동기와 후배가 있는 술자리에서 나 복학할 때 일 학년이었던 후배가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짜 일 년 반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에 살짝 취한 채로 화장실에 가 거울을 보니 얼굴이 좀 늙은 것 같기도 하고 부푼 것 같기도 했고, 부푼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늙은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면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한 것을, 이런 클리셰적인 문구를 지웠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시간은 정말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한 것을. 클리셰적인 문구도 한번 지웠다가 다시 썼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두 번 쓰면 더 이상 클리셰가 아닌 것이다.
일을 그만두어 다음 직장에 가기 전 쉬는 한 달이 될 줄 알았는데 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쉬다, 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연상되는 침대에서 누워보기도 하고 산책도 나가보았지만 나의 정신을 쉬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문득 쉬다와 쉽다의 어원이 같은지 궁금했지만 한국에서 중등교육도 마치지 못한 나는 혼자서 이런 고민해 봤자 해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쉬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면 잘 쉬는 것일까, 싶어서 요새 핫하다는 피츠카랄도 에디션이라는 출판사에서 책을 마구 주문했다. 픽션은 파란색 표지, 논픽션은 흰색 표지, 그리고 모든 책 커버들이 제목과 작가 이름을 제외하고는 동일하다는 점이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다. 책들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나는 책을 구매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감을 느꼈고 잘 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지난 일 년 반에 대해 생각해 보니 이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즉 인내심을 상실해 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츠카랄도 에디션의 책들은 알고 보니 영국에서 오는 것이었고 영국에서 오는 책들은 약 삼주 후에 도착한다는 말을 들었고 아직까지는 책들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내가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지 사실확인을 하지는 못했다.
활자를 읽는 것 대신 활자를 소리로 듣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애플 팟캐스트를 켰고 무엇을 들을까 하다가 미국의 여러 회사들의 기원과 역사, 그러다가 인공지능의 역사, 그러다가 코카콜라의 역사, 그러다가 냉전의 역사, 그러다가 러시아혁명의 역사, 그러다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역사, 그러다가 지금은 1600년대까지 와서 다이얼렉틱과 변증법의 역사, 그러다가 이제는 스피노자의 철학까지 왔다. 인간의 귀는 주변 환경의 소리를 들으라고 존재하는 것이지만 제대로 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헤드폰을 끼고 사는 나는 뉴잉글랜드에 사는 똑똑한 백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하니 일할 때보다 더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 같은데? 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쉴 때도 생산적이라는 생각에 마침내 잘 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나는 이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뭔지 아는, 아니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뭔지 아는 똑똑한 미국인의 두 시간짜리 요약을 1.5배속으로 들은 깨어있는 세계의 시민이라는 것을 자각했고 쉴 때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나의 강박은 자본주의의 폐해라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고 사실 내가 잘 쉬었다고 생각한 것은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버린 나의 정신세계가 낳은 착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온 뒤에야 잘 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금융계에서 일하지만 쉴 때는 가끔 이런 혁명적인 생각도 한다.
오늘도 헤드폰을 끼고 또또 산책을 나갔고 또또는 작년에 산책을 나갔을 때 다니던 경로와 다른 경로로 가려고 했다. 원래는 앞으로 가기만 하고 돌아올 때는 안아달라고 하기만 하고 누워버리는 또또였는데 이제는 자기가 알아서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확실히 오십 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또와 산책을 하면 집으로 오는 길에 항상 들리던 이스트파크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또또는 어김없이 총총 이스트파크로 발걸음을 향했고 카페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디디고 계단 틈 위로 보이는 카페 실내를 보려고 했다. 이스트파크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흰색 벽과 흰색 바닥, 그리고 빈 상자들만 가득했다. 엄마는 이스트파크가 구월에 문을 닫았다고 했고 또또도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짜 닫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렇게 나의 1/50배가 되는 몸을 어떻게든 늘어뜨려 안을 보려고 했다. 그래봤자 안보일 텐데, 나는 또또를 들어서 계단을 올라갔고 높이로 치면 또또의 한 37/50배쯤 되는 지점에서 건물 실내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또또는 가만히 실내를 십 초 정도 바라보았고 다시 내려주자 또 한 십 초 정도 가만히 실내를 바라보더니 휙 고개를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삼 년 동안 단골이었던 곳, 그러니까 또또 시간으로는 이십 년 정도 단골이었던 곳이 사라진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짠했다. 그래 또또 너는 오십 살이다.
시간은 참 빠르고 느리구나, 나는 스물여섯이고 이제 연말이고 또또는 오십 살이고 이제 중년이다. 집에 와서 오리고기 간식을 요리조리 씹어먹는 또또를 바라보며 나의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쯤 양옆에 닿은 타원 정도 되는 것 같았고 또또는 위아래까지 닿은 타원 정도 되는 것 같았고 부모님은 중간에 검은색도 채운 창문인 것 같았고 저번에 만난 친구는 나이는 나랑 같은데 그냥 동그라미인 것 같았고 돌아가신 할머니는 검은색인가 싶다가도 검은색은 죽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가 이제는 추상적인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