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법적으로 성인은 19살. 법적으로는 시간만 지나면 우리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딱히 법적 둘레에서 오진 않는다. 시간적 요소 역시 중요하지 않다. 가끔 누군가는 아직 선반에 물건을 내리기 어려운 시기에도 스스로를 독립된 객체로 느낀다. 혹 누군가는 어느새 굽어져 버린 허리가 되려 움직이기 자연스러운 나이에도 스스로를 독립적 객체로 인식하지 못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식물은 그 상처마다 그 진津으로 메우며 기괴한 모습으로 변한다. 하지만 사람의 상처는 그런 진액으로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겉으로 드러나질 않는다.
그렇게 속으로만 곪아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괴물은, 바로 가장 가까이에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책의 1막에서는 작가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며,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가족 내부에서 본인이 겪었던 상처들과 그 상처로 인해 반복되는 학대의 유형에 대해 알아보며, 지금에야 돌아보고 느낄 수 있는 그때의 마음들을, 또 그때의 마음들을 어떻게 돌봐줬어야 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2막은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 작가가 마음의 안정과 내면의 상처를 돌보기 위해 실천했던 방법들을 알려주며 그 방법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작가 스스로 어떻게 상처들을 치유하고 이겨냈었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3막에서는 이제 부모가 된 작가가 육아를 대하는 태도와 육아를 하면서 본인의 내면과 아이의 내면을 동시에 살피며, 자신의 상처를 대물림하여 아이에게 다시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마지막인 4막에서는 작가가 단순히 한 가족의 딸이자 한 가족의 엄마로서가 아닌 독립된 객채로써 여전히 남아 있는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어떻게 직면하고 치유하여 이 상처마저 온전한 자신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고심한 내용과 그 결과 스스로 도출해낸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혹,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그만큼 마음에 생체기가 나 있을 것이다. 본인이 모를 뿐. 그리고 그런 생체기는 당장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국에는 본인 스스로 뒤틀리고 말라버린 내면에 의해 인간성을 상실해버릴 것이다. (뭐 후자의 사람들까지 신경 쓰며 살기에는 우리 삶의 시간이 너무 짧으니, 저런 사람은 버리자.)
다시 돌아가서,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안고 산다. 작가가 어려서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비꼬인 언어폭력에 당하며 자란 것처럼 우리들 역시도 알게 모르게, 사회적 용인에 의해 허용된 갖가지 폭력들에 의해 상처받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그런 상처들에도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우리가 상처를 받아 잠시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시간이 멈춰주진 않는다. 우리가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우리가 자라는 것을 멈추고 어른이 되는 순간을 더 뒤로 미룰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상처들을 다 치유하지도 못한 체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되고 나서,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입는 상처들은 어른으로써 스스로 대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처 우리가 대응법을 알기도 전인 어린 시절, 그것도 늘 내 옆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가족에게 입은 상처는 치유하기 어렵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고, 본인 스스로 감내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상처를 굳이 꺼내 들어 이미 상처를 준 대상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할 일을 소리 지른다고 해서 좋아질 것이 무엇인가.
긁어 부스럼. 흔히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긁고 싶다는 것은 그곳에 분명 곪은 무엇인가가,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임시방편으로 잠시 덮어둔 상처를 다시 불러내 함께 들여다보며 치료할 기회를 잡는 것이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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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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