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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Nov 15. 2022

집사의서평#67 푸르게 빛나는

욕망의 답습과 불안


들어가는 말


 우리의 공포가 오는 곳은 예상외로 일상이다. 어릴 적, 홍콩할매라든지 몽달귀신같은 토속 귀신이나 드라큘라, 강시 같은 딴 나라 괴물들이 주는 공포는 이제 조금 식상하다. 그리고 그렇게 이물적이고 기괴한 상상의 공포들이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자, 우리는 일상적이지만 색다른 공포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자유로 귀신 혹은 도시괴담 등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일상적인 출퇴근길에 나타난다는 미상의 여인. 혹은 버스에서 시비가 붙은 노인이 내리라 하자 따라 내리려던 여인의 코앞에서 문을 닫으며 아까부터 웬 승합차가 따라오더라는 버스기사의 코멘트. 지하철 몇 호선 몇 번 물품보관함에는 장기가 들어있다는 소문. 

 얼핏, 어릴 적 밤 12시 칼을 입에 물고 그릇에 담아둔 수면을 보면 미래의 신랑감이 나타난다는 괴담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요즘 최신 공포는 그 디테일이 남다르다. 누군가 말했지 않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열린 문, 우물 속, 푸르게 빛나는, 공포


 - 열린 문, 닫아. : 엄격한 어머니의 디지털 다이어트라는 횡포에 늦은 밤 잠 못 드는 자매. 숨겨진 라면 한 봉지를 부셔먹고는 심심해하는 동생에게 도둑잡기 놀이를 제안한 오빠. 둘은 현관문을 활짝 열고 혹시 들이닥칠 도둑에 대비해 낡은 야구 배트와 돈가스 나이프를 들고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서는 다다 낯선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오빠에게 혹시 아빠거나 이제 들어오는 엄마라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지만, 오빠는 절대 그럴 일 없다며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도둑이 아닌, 거꾸로 들린 남자가 나타난다. 

 - 우물, 솟지 않는 욕망 : 극심한 액취증에 시달리는 주영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인간관계도 힘들 정도. 유일한 친구는 비염이 너무 심해 그런 주영의 악취를 맡지 못하는 효민뿐이다. 하지만 그런 효민마저 비강 수술을 결심하게 되고, 수술 후 처음 만나는 날 효민은 주영을 만나자마자 구역질을 하고 만다. 유일한 친구마저 잃은 주영은 방황하다 이상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 여자는 인체의 70%는 물이며,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가 된다는 허황된 말을 한다. 그러면서 검은 물을 건네는데 역한 기분에 주영은 뿌리치다 물을 옷에 엎지르고 만다. 나중에야 그 물이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고, 겨우겨우 여자를 찾아내 어딘가 외진 곳에서 우물을 파 물을 구하는 방법을 알아낸다. 액취가 없이 잘 지내던 중, 자신에게 우물을 알려준 여자가 횡문근 육종이라는 암이라며 물을 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물의 효과가 한시적임을 듣게 되고 다시 여자를 따라 우물을 향해 가지만 여자에게 생매장을 당할 뻔한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 주영은 우물의 비밀을 알게 되고 여자를 우물에 떠민다. 

 하지만 결국 주영 역시 그 여자의 전철을 밟게 되고, 재물로 효민을 다시 찾지만 효민의 구역질이 자신의 냄새 때문이 아니었고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 푸르게 빛나는, 루머가 현실이 될 때 : 여진은 임신을 하고, 규환과 경기도 외곽에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는다. 겉으로는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엄청난 대출에 대한 압박, 비현실적인 임신, 들쭉날쭉한 심경변화로 조금씩 서로에게 불만이 쌓인다. 그러던 중 여진이 푸른빛의 벌레를 목격하고 아파트 단톡방과 카페에서 그 정보를 공유하지만, 아파트 가격 하락을 우려한 사람들과 규환마저도 그저 덮고자 한다. 그러던 중 이 벌레를 연구했다는 최진호라는 사람을 만난 여진은 벌레에 대한 걱정이 극에 달해 자해를 하게 되고, 병원에서 여진을 데려오던 규환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자 결국 여진은 폭발해버린다. 그 벌레의 이름, ***를 들은 규환은 정신이 아득해지고, 결국 교통사고를 내고 만다. 죽음의 순간에 와서야 규환 역시 여진의 말로만 듣던 벌레를 실제로 본다. 



욕망의 답습과 불안


 세 편의 단편을 직통하는 것은 욕망 아닐까. 열린 문에서 자매는 디지털 다이어트라는 명목 하에 소통이 단절되어 버린다. 통하고 싶은 욕망. 도둑잡기라는 기상천외한 장난으로 둘은 늦은 밤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이것이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인지 혹은 억압에서의 탈출인지 아니면 오지 않을 구원(도둑)에 대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열린 문 너머로 다가오는 그 거대한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준 것은 온전하지 못한 반쪽짜리 육신(만족)이었고, 그 반쪽짜리 육신은 나머지 반쪽에 대한 어떤 힌트나 가능성도 주지 않고 열린 문을 닫으라고 지껄였다. 

 우물은 욕망의 클리셰와 다름없다. 액취증으로 모든 것과 단절된 주영은 오로지 액취증을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비상식적인 행위를 저지른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경위를 보자면, 앞서 그런 비뚤어진 욕망의 해소 방법으로 이미 비상식적인 착취를 저지르던 인간들을 답습한 것뿐이었다. 하나뿐이던 친구를 잃은 것은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지만, 진짜로 그 친구를 잃게 된 것은 이미 욕망에 물들어 횡문근 육종에 걸려버린 자신 때문이었다. 우리가 타인의 삶을 욕망하여 이를 취할 수 있다면, 당신은 타인의 삶을 취할 것인가. 

 푸르게 빛나는 벌레는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을 총체적으로 망라한 존재가 아닐까. 급등하는 부동산, 소위 영끌족과 부동산 가격 하락에 기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공포에 편승하는 루머들과 덮으려는 사람들. 임신과 육아에 대한 무지와 스스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근심, 책임에 대한 강압과 임신으로 인한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우려가 결합한 불행. 이 모든 불안들이 한 번에 뒤엉켜 들어가 종국에는 우리 몸 깊숙이 파고들어 내부를 삭게 만들어버리는 것 아닐까. 


 세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관통하는 주제는 아마 욕망이지 않나 싶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스스로 느꼈던 불안들에서 이 소설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그 불안의 시점에는 아무래도 욕망이 있지 않았나 싶다. 

 불안의 시작은 우리의 욕망이 아닐까. 작가의 걱정에서 보듯이, 친구가 떠날까 봐 불안한 것은 친구에 대한 소유욕에서 발현된다. 열린 문에 대한 공포는 우리 집이라는 안전한 장소에 대한 욕구, 즉 안전에의 욕구에 다름없고, 반려자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결국 믿음과 의존의 욕망이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인 것 아닐까.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에게 이런 욕망이 없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이뤄낼 수 없다는 것. 소유욕이 없다면 친구를 사귈 수도, 안전욕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도 없고, 믿음과 의존의 욕망이 없다면 인류는 빠른 시일 내에 멸종해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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