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 <전라남도 독서왕 선발대회 대상 수상작>
아마 내가 그 검은 개를 본 것은 중학교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직은 나의 그림자도 확정하지 못할 어린 나이에 검은 개는 마치 아스라이 피어오는 안개처럼 희뿌연 무언가였다. 마치 거대한 항아리에서 귀퉁이 일부 파편만 떨어져 나간 구멍으로 들여다보이는 검은 무언가.
빈곤한 가정과 어려서 도시로 떠나버린 형제들. 노부모와의 세대차이. 못난 외모와 동년배들과 유별나게 동떨어져있던 감수성. 모든 것이 검은 개에게는 맛있는 먹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검은 개는 한적한 시골길 위를 달리던 나의 자전거를 마주 오는 검은 무쇠 차에 몰아붙였다.
그러나, ‘자신을 죽이는 것은 타인을 죽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에 어린 나의 힘으로는 나 스스로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검은 개는 한 번 허탕을 치고 잠시 나를 떠났었다.
‘검은 개는 그 주인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쫓아낼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다.’한 번 나의 발목을 물어 넘어뜨렸던 검은 개는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죽일 능력’을 키우길 기다리며 나의 상처를 끈질기게 주시하고 있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면서 다시금 검은 개는 날 찾아왔다. 그것은 마치 에피소드를 반복하며 더욱더 깊은 수렁에 빠져든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한번 발목을 치고 물러났던 파도가 이내 다시 달려들어 정강이를 적시는 것처럼 더욱 강렬한 울림을 가져왔다.
성년에 다다른 나에게 이제 어린 시절의 고뇌들과 좌절들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도저히 나의 힘으로는 타개해 나갈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장벽을 마주칠 때마다 검은 개가 남은 발목을 물어 끌어당겼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허름한 본가에서 거대한 LPG 가스통 두 개를 내 옆에 뉘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검은 개의 지도 하에 갖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학수’처럼 내적인 분노로 폭력성을 드러낼 수 없었고, 그렇다고 ‘공동 탈출’처럼 내 속 내를 털어놓을 곳도 없는 상태의 내가 마지막 고통까지 모두 벗어놓을 기회를 놓친 것은 그저, ‘이상한 예감’에 나를 찾아온 친구 하나 때문이었다.
‘미친 XX’. 나를 다시 검은 개의 옆에 앉힌 친구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리고는 일언반구 없이 돌아갔다.
내가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도 1~2년이 지난 뒤였다. 그저, 만사에 무력감이 있는지, 사는 게 즐겁지 않은지, 죽을 생각을 얼마나 했었는지. 간단한 질문 몇 가지와 아이큐 테스트와 비슷한 설문지 몇 장을 작성하자 내게는 간단한 ‘우울증’이라는 진단과 함께, 뭔가 희망적인 하늘색과 깨끗한 하얀색의 알약 몇 가지가 처방되었다.
한 달 정도 약을 먹기는 했지만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때 즈음에는 재수에 성공하여 대학생활을 즐기던 터라 진료와 투약을 중단했다. 캠퍼스의 낭만, 연애, 친구들과 술. 그렇게 대학병원 전문의는 한순간 ‘돌팔이 임귀섭 교수’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차를 바꾸고, 신축 아파트에 전세분양 계약을 하고. 나의 과거 검은 개는 어디에 있을까. 아니, 내게 검은 개라는 것이 있었는가.
그 뒤로 단 한 번도 내게 있던(있는) 검은 개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우울하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하던 말처럼 내게도 그저 같은 ‘오늘은 기분이 별로다’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 책 안에서 나는 검은 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전학수’처럼, 이 시대의 모든 우울증 환자들은 마치 치부를 가리듯 본인의 감정을 숨기느라 급급하다. 나 역시도 단 한 번도 나의 과거 검은 개를 제대로 쳐다보질 못했다. ‘지금은 괜찮으니까.’
마침 이 책을 읽던 때, 나는 태국을 여행 중이었고, 래프팅 도중 급류에 휩쓸려 빠졌다. 수영을 전혀 못했기에 물을 많이 먹긴 했지만 구명조끼를 입은 덕에 죽지는 않았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죽다 살아났다.’라는 생각에 와이프에게 숨기진 않았지만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와이프는 그 일에 대해 ‘정신적 장애’라고 생각하기 전에 그저 나를 걱정해주었다.
내게도 검은 개에게 입마개를 씌워 줄 반탁신이, 박이음이, 조노훈이 생겼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은 ‘지독하게도 혼자’다. 말을 해도, 함께 평생을 지낸다 해도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심지어 부모자식 간이라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타인이 날 이해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맹목적이 되는 순간, 그 누군가는 ‘김열’이 된다. 우리에겐 검은 개가 온다.
지금도 누군가는 아마 ‘고통 없이 편안히’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상당히 달콤한 유혹이고 강렬한 욕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내게 달려드는 그 검은 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순간, 마주 으르렁대는 순간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오는 반탁신이, 박이음이, 조노훈이, 혹은 부모가, 형제가,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혼자다. 그러나 ‘여럿인 혼자’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 ‘우리’라는 굴레를 만든다면 분명 검은 개를 영원히 가두어 둘 수 있는 행복의 ‘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개는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내 옆의 ‘우리’역시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다.
서평보다는 독후감에 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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