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인 줄 알았던 스탭급 김 부장의 현자 타임
솔직히 인스타를 하지 않았다면 사지 않았을 책. 그리고 다 읽고 나서 왜 샀을까 싶은 책.
일단 나는 금융보험학과를 졸업했다. 전문적으로 금융계에 종사한 적은 없지만, 나름 투자에 관련된 학문을 배웠던 사람이다. 파생상품 거래사라는 허접한 자격증도 하나 있긴 하다. (유효기간이 끝났겠지...?) 4년 간 등록금을 그렇게 버리고, 투자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로또를 제외하면 도박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불확실성에 대한, 그리고 '큰 손'의 움직임을 내 깜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은, '미생'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 시대의 미생을 기대했다. 드라마로 접해서는 미생 전집을 따로 구매해서 다시 봤을 정도로, 공무원이라는 지극히 정적인 생활에서 일반 회사생활이 주는 재미와 쾌감과 색다름은 경탄할 정도였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 중에, 1권만 산 것은 토마토(아내)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단 한 권 읽어보고 재밌으면 다 사자!'. 2, 3권은 사지 않을 것 같다.
간단명료하게 쓰자면, 꼰대 이야기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축약하면 '꼰대 이야기'다.
김 부장은 대기업 부장으로 남들 부럽지 않은 월급에 고급 시계와 정장, 가방에 준대형 세단을 타고 다니며 임원 승진을 꿈꾸는 사람이다. 승진에서 단 한 번도 누락된 적 없이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자신의 '승승장구'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집안일이나 하라며 큰소리쳤지만, 두배나 오른 집을 갖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부동산 투자에 일가견이 있다고 착각한다. 팀원들의 노력으로 일이 잘 되더라도 온통 자신의 공으로 돌리며, 자신의 야근과 노력으로 부서가, 회사가 돌아간다고 착각한다.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사업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 고민과 노력은 쓸데없는 짓이고, 아들 역시 자신처럼 대기업에 다녀야 행복할 것이라며 착각한다. 송 과장이 부동산 투자에 빼어난 것을 주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어리고 하급자라는 이유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착각한다. 그저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대리를 버릇없고 개념 없다고 착각한다.
그런 착각들은, 권고사직을 당하고 나서야 깨어진다.
퇴직 후 부동산 투자 사기를(엄밀히 사기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하다. 최소한 소유권은 남아있으니까.) 당하고, 주변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세차 일을 시작하면서야 자신이 얼마나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협소하게 생각하며 살았는지 깨달으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일단, 이런 서사구조를 전에 읽은 적이 없어서 생경한 것인지, 혹은 불편한 것인지 모르겠다. 김 부장의 시선에서 마치 일기를 쓰듯, 한 챕터당 약 2~3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었다. 물론, 읽기는 매우 쉽고 빠르다. 다 읽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 정도. 되려 서평을 쓰는 시간이 더 길다.
딱히 문체가 걸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읽기 편하게 잘 써졌다. 그런데 처음 20페이지 만에 읽기가 싫어졌다. 그건 아마 개인적 성향이지 싶은데, 텍스트 특화된 나로서는 이렇게 서사가 이어지지 못하고 딱 딱 끊기는 것이 귀찮았달까. 솔직히 말해서 그저, 김 부장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었는데 그 일기가 처음엔 꼰대의 일기라서 그냥 보기 좀 그랬고, 뒤에 가서는 그렇게 착하게 살지는 않은 사람인 것 같은데, 그냥 주변인이 좋은 사람들 투성이라 결국 잘 되는 거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권선징악을 좋아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면, 고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본인이 꼰대 짓하다가 회사에서 (오히려 회사에서 꼰대 짓을 쳐낸 것이다! 와우! 외국계인가?) 잘렸는데, 그저 깨달음만으로 새로운 삶이 열리다니. 세상은 불공평하다. 소설 속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던데, '김 부장은 참 복이 많네.' 그래서, 불편하다.
작가가 말했듯, 그저 직장에서 겪었던 상사 3명을 한 인물로 합쳐서 적은 소설이라니, 실화 바탕인 모양이다. 그래서 아마, 전달할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하나 건질만 한 것이 '가족의 소중함'인데, 메인으로 삼기에는 서사가 너무 약하다. 뭐, 솔직히 우리가 살면서 '남의 인생'에서 어떤 교훈을 얻기란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김 부장처럼, 구조조정당하고 퇴직해서 사기를 당하거나,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회사 다닐 때야 떵떵거리며 집에서 큰소리치다가, 잘리고 삼식이가 되고는 그제야 아내와 자식들 눈치를 보며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보고 뭔가를 깨닫진 않는다. 그저, 보고 지나칠 뿐. 작가는 지나치지 않고 소설을 쓴 모양이다.
솔직히 이 소설을 보면서 얻은 것은, '나도 정신과 진료를 꼭 받아야겠다.'라는 다짐의 재다짐뿐이었다. 저 꼰대 같은 김 부장도 교화(?)가 되는데, 나도 되겠지 싶었다.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나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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