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서평 #14 불편한 편의점

숨겨진 12첩 산해진미 도시락을 찾아서

by 히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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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나도 꽤나, 지인들 사이에서는 위트 있다는 평을 듣는다. 생소한 이미지를 적용시키기도 잘한다. 신박하다는 칭찬도 잘 듣는다. 농담을 할 때는 잘 웃기기도 하지만, 잘 웃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초면인 사람들 앞에서는 낯을 가리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내 글은 그다지 위트가 없다. 웃음 포인트가 적다.

감수성도 나름 있는 편이다. 책이나 TV를 보다가, 혹은 노래를 듣다가도 울음이 울컥 나올 때가 있다. 아아. 불혹이여. 나이 탓은 아닐 것이다. 아아. 불혹이여.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연민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현실에선 잘 드러나지 못한다. 가상, 현실이 아닌 것을 나의 현실(주로 부모님, 가족, 정의감, 사회 온정)에 연부 시켜 울지만. 남의 현실을 내 현실에 투영시키기는 잘 못한다. 그래서 감성 에세이를 못 쓰나 싶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은 그런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와 초면일 테니까. 나와 초면이 사람들에게 맘 편히 약간은 삐딱한 내 위트를 드러내지 못한다.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알 수 없으니까. 내 감정도 숨기는 편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글이라서 부러웠다. 동경의 대상이다.



뻔, fun!


상투적이라거나 뻔하다는 말은, 어찌 보면 거의 모든 글에 통용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판타지라는, 이세계異世界물 마저도 요즘엔 뻔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세상에, 용이 등장하는 소설인데 뻔하다니. 어찌 보면 내가 너무 고인물인가. 하지만 많이 읽어본 독자들은 식상함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런데, 늘 하던 말처럼, 이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탄생한 수많은 작품들 모두가 어찌 매번 새로울 수 있을까. 재산세에서 건축물의 기준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것은 지붕과 기둥과 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이한 구조의 집이라고 하더라도 지붕과 벽과 기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빼다 박은 듯 비슷하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런 구조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독고는 서울역 노숙자로, 알코올성 치매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연히 얻게 된 파우치를 돌려주는 과정에서 편의점 사장님을 만난다. 편의점 사장인 염여사는 왠지 모를 측은함과 우연히 받은 도움, 알 수 없는 교정의 이끌림에 독고를 편의점 알바로 취업시킨다.

편의점에서 알바로 지내면서, 같은 알바인 시현과 선숙, 단골손님인 경민과 인경 그리고 곽 씨까지. 우둔하며 굽힘이 없는 성정으로 그들의 삶에 불편한 진실을 전하면서 삶의 편의를 찾아준다. 그렇게 옥수수수염차로 금주를 하면서 다른 이와 소통을 하고, 그 결과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결국은 자신의 과오를 바로 잡을 기회를 잡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누구 편의?


위에 언급했지만, 어찌 보면 상투적인 스토리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 숨겨진 과거. 어눌하지만 강직한 주인공의 면모와 조언을 받고 유화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보며 기억을 되찾고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의 회한과 반성, 귀환.

그러나 작가는 위트 있는 필력으로 이 상투적인 줄거리를 재밌게 풀어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에피소드가 우리 주변에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옮겨놓은 듯, 너무 사실적이라 쉽게 마음이 움직였다.

자식 때문에 속 썩이는 부모, 미래가 걱정인 청년, 꿈을 접을 기로에 선 사람, 가족의 무게에 짓눌려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누구 하나 고민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저 '몰라요'라는 말만 하는 독고를 제외하고는.

편의를 위해 우리의 곁에 항상 존재하는 그 편의점. 독고가 근무하는 그 편의점은 아마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가족일 것이다. '내'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편'하기 위해 있는 곳. 서로가 서로를 위해 편의를 제공하는 곳.

편의점(가족)이 불편해지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을 제공해주지 않아서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불편해하기 전에, 이미 그들이 내게 주고 있는 것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허름하고 부실한 도시락 밑에, 12첩 산해진미 도시락이 숨겨져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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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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