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메마른 감정, 그리고 오만
난 트렌드에 둔감하다. 둔감하다기보다는 약간 몽니를 부린달까. 나름 밀레니얼 세대이면서도 엑스세대를 동경했다.
토마토(아내)는 늘 내 대학 때 사진을 고대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고, 남아있지 않음에 감사한다. 그 사진을 보면 얼마나 놀려댈지 뻔하니까.
군대 가기 전, 대학 때 나의 패션은 지금 내가 생각해도 약간 '컬처 쇼크'다. 일단 열 손가락 중에 최소 여섯 군데에는 금속성 물질이 결합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사이보그이거나 성투사 성시에 나오는 검투사급이다. 손가락만 보호할 순 없으니, 경추 보호를 위한 목걸이도 있었고, 손목 보호를 위해 팔찌도 있었다.
남자는 하체다. 하체보호를 위해서 최소한 바지에는 부가적인 끈 혹은 체인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에서 그렇듯, 노출과 방어력은 비례하기 때문에 청바지는 많이도 찢었다.
쓰고 보니, 지우고 싶다. 부끄럽다. 잔디 머리라고 불리던 머리를 하고, 늘 녹차를 들고 다녔던 나. 하지만 나의 역사이고 그때는 그게 멋있다고(아... 과거의 나) 생각했다.
그런 영향일까. (물론, 지금은 토마토의 지도 아래 깔끔하고 귀여운(?) 스타일을 유지한다.) 난 대세인 계발서나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썼다. (위에 홍보를 다시 한번 봐주시라...)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꿈은 아니었다. 다만, 글쓰기를 좋아했을 뿐.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결국 책이 인쇄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책은 읽혀야만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나. 단순히 많이 팔려서 떼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욕심이었다면 아무래도 에세이를 썼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지만 그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쓸 수 있는 건 결국 소설뿐 이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 글쓰기의 시작은 어릴 때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 혹은 내내 썼던 일기. 중학교 때 뭔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유치한 서정 시. 고등학교 때 문학동아리였던 빛바라기(였던가...), 대학 때 술잎문학이라 불렸던 풀잎 문학.
한 때는 연습장 두어 개를 가득 채울 정도로 시를 적고, 시화전을 하던 자칭 '문학도'였던 내가 왜 에세이를 쓰지 않았을까.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을 포기하고 생업에 전념하면서 시는 버렸다고 치더라도, 그 넘쳐흘러서 고백을 받은 많은 여성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감수성을 활용해서 에세이를 쓸 생각은 왜 못했을까. 대세는 에세이인데! 아니면 계발서라도! 나 (잘 몰라도) 아는 척 잘하는데!
하지만, 브런치 작가님인 @heather 님께서 말씀하셨듯, '나는 그런 글을 쓸 수가 없다.'
게으름 : 계발은 개나 줘버려! 일단 나도 계발이 안 되는데?
일단 난 매우 게으르다. 이 게으름은 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은 아니되, 할 수 있고 하면 좋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아닌 일은 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계발서와 정보 서적이 넘친다. 내가 어떤 특정 분야에서 일을 한다면 그래도 업무에서 오는 전문 지식이라도 있을 테지만, 지방직 공무원에게 그렇게 조명될만한 전문 지식은 없다. 게다가 이미 나보다 뛰어나신 분들이 많은 서적을 출판하셨다.
그렇다고 음악, 예술이나 건축, 역사, 신화 등등. 특정 분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나 막대한 자료도 없다. 내가 삶을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떠한 것에든 '미쳐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내게는 남이 잘 모르는 그런 특별한 지식이 없다.
그런고로, 만약 계발서를 써야 한다면 난 엄청난 양의 자료조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난 본업이 있고, 게으르다. 본업으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료조사를 하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게다가 실제 나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그저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해 자료를 모아서는 내 것인 양 책을 내기가 조금은 무섭다. (엇.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만 이 글을 썼다가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분에게 반박을 당했던 꿈을 꿨던 것 같다! 데자뷔!)
마른 감정 : 그 넘치던 감수성은 오로지 내 안으로만 흐른다. 나란 녀석.
중학교 때부터 넘치던 감수성. 그것은 지금 돌아보면, 그저 내 안으로만 흐르던 것이었다. 멋스러운 글을 위해 짜낸 감정.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던 감정을 글로 풀어냈다.
이렇게 감정이 내게만 흐른다는 것은 내가 타인과의 감정 교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억지로 꾸며낼 수는 있겠지만, 독자들은 누구보다 민감하다. 억지로 꾸며낸 '감성'에 감동을 받을 리가 없다. 심지어 나 스스로 다른 작가님들의 감성 에세이는 읽기 자체를 거부한다.
원래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던데, 난 그런 쪽으로 보면 거의 태초 인류 남성의 본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이나 애국지사(특히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나 조마리아 여사님의 편지는 거의 울음 버튼이다.)에는 팡팡 터지는 것을 보면 선별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나 스스로도 읽지도 않는 에세이를 내가 대체 어떻게 쓴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오만 : 내 소설, 볼만 할 걸?
난 조금 잘난 맛에 산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잘 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을 출간하고 싶어도 못 하는 분들께는 자기 비하를 통한 비하로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혼'의 출판은 이미 여러 출판사에 출간 계획서를 퇴짜를 맞고 나서 POD로 제작한 뒤 벌어진 일이다. POD로 출판한 만큼, 당연 대부분의 독자들은 주변인이었다. 지인인 만큼, 평가는 호평일색. 날카로운 비평은 없었다.
그래도 지인 외에 나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이 있었으면 싶어서 개인적으로 서평단을 신청해서 10명의 서평 독자 구했다. 하지만 착한 독자분들은 책을 '제공'받아서인지 역시나 좋은 말로 서평을 채워주셨다. 좋았다. 하지만 한 편에선 서운했다.
하지만 그 서평단 운영이 기회가 되어, POD회사였던 부크크가 기획출판 브랜드인 '부크크 오리지널'을 론칭하면서, '혼'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즉, 내가 잘 나서, 내 소설이 너무 빼어나서, 출간 기회가 온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잘 나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난 잘난 맛에 산다. 이성적인 부분만으로 삶을 산다면, 난 절대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내 글은 재밌다! 내 소설은 충분히 가치가 있어! 홍보가 덜 돼서 그렇지,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잘 팔릴 걸! 이라며 자위하는 것이다.
거기다 오만하게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에세이. 아무나 그냥, 자기 사는 이야기 써가지고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모를 에피소드들, 전문 편집자가 잘 수정해서 고치고 하는. 유튜브나 인스타나 블로그 등에서 이미 인플루언서로 유명한 사람들이 돈 더 벌려고 하는 그런 에세이. 나는 안 써!라는 생각도 있다. (리핏! 하지만, 브런치 작가님인 @heather 님께서 말씀하셨듯, '나는 그런 글을 쓸 수가 없다.')
참 이야기가 길었다. 요는, '나도 대세이고 판매량도 좋고 인기도 좋고 이슈도 되고 인터뷰도 하고 강연도 하고 기타 등등. 그런 에세이가 쓰고 싶지만, 계발서가 쓰고 싶지만, 못 써!'이다.
억지로 쓴다면, 쓸 수도 있겠다. 실제 조금씩 연습을 하고 있다. 아내와 나의 생활에서 느낀 것들을 한 꼭지 씩 적어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을 쓸 때만큼 엔도르핀이 솟구치질 않는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것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는 그것이, 그것만이 내 세상이기 때문이다.
계발서는 아무래도, 과거의 이야기다. 물론, 책의 목적은 대부분 미래의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겠다. 하지만 미래를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책에서 제시하는 것은 대부분 작가의 과거 경험 혹은 작가가 걸어온 길에서 알아낸 노하우다. 책이 미래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책을 읽은 독자뿐이다. 즉, 시대가 지나면 책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다.
에세이는 현재의 이야기다. 지금 삶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 삶에 대한 고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사랑. 거의 현재의 삶을 보듬어 주고 쓰다듬어 주는 이야기다. 게다가 에세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에세이 안에 있는 세상은 작가의 세상이지 내 것이 될 수 없다. 감정적 위로는 받을 수 있겠지만.
하지만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도 현재의 이야기도 아니다. 미래의 이야기 거나, 심지어 미래에도 없는 이야기다. 내가 소설을 가장 높이 사는 이유는, 문학적 가치라거나 영상화를 통한 대박 같은 것이 아니다. 소설이 바로 창조의 글이라는 생각에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언급되었듯,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우리의 삶 안에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되려 위험한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계발서나 에세이같은 다른 책들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설은 창조의 글이다. 소설 속에서는 여기에 없었고, 없고, 없을, 장소와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오로지 작가의 힘으로 일궈내는 작가만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 함부로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편집자를 빼먹었나.) 심지어 독자라도, 치명적 오류나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작가가 만든 세계에 관여할 권리는 없다. (호감과 비호감은 충분히 나뉠 수 있지만.)
그런 면에서 난 소설을 쓰는 것이 즐겁다.
하루 종일, 혹은 몇 날 며칠을 인터뷰하고 도서관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할 필요도 없다. 내밀하고 어두워 나조차 잘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이야기를, 숨겨둔 감정을 들춰낼 필요도 없다. 그저 머릿속으로, 배경을 그리고 등장인물을 만들어서 쉼 없이 뛰어다니고, 뒤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게 하면 완성되는 나만의 세계.
물론, 독자들이 재밌어할 만큼의 흥미로운 소재, 구성과 필력, 완벽한 내용 등은 지난한 과제이긴 하다. 하지만 이제 첫 책을 출판한 초짜 작가인 내 입장에서는 막 시험지를 받아 들었을 뿐이다. 아직 시험 시작 종도 울리지 않은 것이다.
시험이 시작되면, 고개를 들 틈도 없이 죽어라 풀어나가야겠다. 그 노력의 시간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을 만큼, 다음 소설은 더욱 완성도 높게, 더욱 재미있게 나올 수 있도록 오늘도 괜스레 머릿속 공간을, 그 안에 있는 미래의 내 세상을 뒤흔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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