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구원은, 그저 부산물일 뿐.
SF소설을 읽은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혹평을 한 소설이 있기는 하지만, 논외로 하고 싶다.) 아무래도 어렸을 적, '과학자'를 꿈꾸던 내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니,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니다. 예상외로 SF소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고로, 그런 류의 소설이 흔히 출간되지는 않는 느낌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SF소설이 쓰이고 독자에게 읽히기에는 현대 과학 기술이 과도하게 발전한 감이 없지 않다. 웬만해서는 소설이 과학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해서 구축해낸 이야기라기보다는, 왠지 곧 삼*이나 애*에서 내년 하반기에 출시할 것 같은 기술로 느껴지기 때문이랄까.
게다가 아무래도 이런 SF분야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글로 표현되기보다는 시각화된 영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선호된다. CG가 부족했던 시절에야, 도트 단위까지 도드라지는 영상을 보느니, 책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훨씬 흥미로웠지만, 이것이 CG인지 실사인지 헷갈릴 정도의 수준이 된 지금에서야 굳이 에너지를 소비하며 글로 읽고 상상하려는 사람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무엇이 독자가 에너지를 쏟아부어가며 상상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먼 미래. '더스트 폴'이라는 재난이 닥치고, 인류는 돔을 짓고 능력이 있는 자들은 그 안에서 생활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붉은 먼지에 내성을 가진 인간들이 있었고, 그들은 밖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인류 멸망의 시기가 눈앞에 펼쳐져 있음에도, 인간들은 그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반목하고 배반하며 약탈하고 파괴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일련의 시간을 인고한 끝에, 재난을 이겨낸다. 더스트 폴이 결국은 한 연구소에서 개발하려던 나노봇이 그 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디스어셈블러를 개발하여 종식을 선언하면서도 책임에 대한 질문은 없다.
그러던 중, 강원 해월에서 모스바나의 이상 증식이 발생하고, 더스트 폴에 의해 사라진 식물자원을 연구하는 센터에서 일하는 아영은 그 이상 증식에서 묘한 느낌을 받고 추적을 시작한다.
그 추적 끝에 아영이 마주한 것은 조작된 듯 깔끔하게 자라난 모스바나의 DNA와 반대로 추잡하게 생존해 있는 인류의 모습이었다.
레이첼이나 지수 모두, 아마 인류에게서 그 어떤 희망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노봇의 그것처럼, 가끔은 거창하게 인류를 위한다거나 지구를 위하는 것보다 그저 개인, 개인 한 명의 바람이, 마음이, 사랑이 모두를 구원하게 되는 것 아닐까. 뭐, 의도가 어땠는가는 차치하고.
다른 여러 이유에서 이 책이 책장에 꽂힌 지 오랜 뒤에 읽은 것 같다. 꽤나 요란하게 소문이 난 책이라서 되려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극찬한다라는 느낌. 국내 문단이 여태 그래 왔듯이 문학상 수상작에 따라붙는 여타 찬사들이 출판계에도 따라붙었을 따름이지 않을까라는 의구심.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 선입견이 얼마나 추잡했는지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종말과 그것을 견디는 인간들의 이야기. 반목과 이기심. 인류 자체에 대한 불신과 개인의 감성에 대한 믿음이 병존하는 모습. 주인공이 추리를 하는 듯한 형태로 긴장감을 주면서도, 아마라와 나오미의 이야기에서는 탐험이야기를 듣는 듯 흥미진진함이 있다.
게다가 이과계열 전공자라서 그런지 (이 마저도 선입견이겠지만) 과학 지식에 대한 서술이 매우 부드러웠다. 솔직히 읽으면서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공부했을지 상상이 갈 정도였다. 반전으로 작가의 부친이 원예학 전공이라는 것이 살짝 배신감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식물이 그 매개가 된다는 부분에서는 식물이 인간에게 위협을 느껴 자살하게 만드는 페로몬을 퍼뜨려 종말 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영화가 생각이 났다. 인간이라는 종이 구성한 피라미드형의 생태계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에 대한 생각과 결국 우리를 구제하는 것이 맨 밑바닥의 식물, 그마저도 식용이나 화훼용도 아닌 잡초라는 사실은 살짝 충격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은 틈 없이 잘 짜인 스토리라거나 잘 서술된 과학지식, 혹은 종말의 현실적 모습들은 아니었다. 되려, 인류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문제에서 가장 깊게, 작게, 세심하게 파고 들어가 만난 개인의 모습이 더 와닿았다.
아마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 기댄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언젠가 인류는 멸망의 궤도에 오를 것이고, 수많은 소설이 그 멸망을 맞이하고 견뎌내며 이겨내는 이야기를 한다. 그 속에서는 거의 대부분 인류애로 무장하고 정의감에 불타며 박애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은 얼핏 공감대가 생기질 않는다. 그런 주인공과 대치되는 인간 군상이 되려 우리의 삶과 닮지 않았는가. 이 소설에는 그런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SF임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인류는 그 스스로 멸망의 길로 몰아간다. 탐욕과 기만과 오만으로. 하지만 절벽으로 향하는 그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것은, 저절로 눈길을 돌리며 선망하게 되는, 개개인의 마음과 사랑의 따뜻함, 아름다움 아닐까.
강철의 팔을 감싸고 휘도는 초록 덩굴처럼, 이 소설은 마치, 한 편의 SF영화보다는 그저 배경을 인류의 종말로 둔, 아름다운 로맨스 같은 느낌이었다. 인류의 구원은, 그저 부산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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