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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Mar 14. 2022

집사의서평 #38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말


들어가는 말


 이 책을 펴면서 처음 기대한 것은, 다른 것보다 자연에 유희하는 사유의 숲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일단 작가 소개에도 들어가 있지만 도시나 사회에서 조금 떨어져 윌든이라는 시골마을에 거의 자가격리 수준으로 살았던 작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남긴 매일의 기록. 그 기록의 근간은 결국 자연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인터넷에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일기는 일기장에 쓰시지!'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저 유명한 'Q&A'라던지, '매일 명언 한 마디'같은 구성은 개인적으로 전혀 흥미롭지도 않거니와 매력도 없고, 지루하기만 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류의 책을 내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혹평하기에는 작가의 시적인 태도와 사유의 모습은 현시대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매일 함께 숨 쉬는 자연


위에 언급했듯이 작가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윌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는 2년 여 동안 간소한 생활을 살았다. 게다가 때는 19세기 초. 청교도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켜 세울 때였다. 산업화의 시작이 거세게 불어닥쳐 자연이 어느덧 사람들에게 사는 터전이 아니라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었던 시기.

 그런 시기에 벌써 자연 속에 살며 자연과 호흡하고 자연만을 바라보며 매일의 기록을 남긴 작가의 삶은, 얼핏 미련하고 동떨어져 보이지만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환상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단순히 자연에 대한 관찰에만 국한하지 않고, 본인 내면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혹은 우주와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욕망, 추악함, 외로움, 사랑과 연대에 대한 사유의 모습까지 드러냄으로써 자연과 같은 넓이와 깊이를 지닌 시인의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말


 이미 공개된 시점에서 일기는 일기가 아니다. 게다가 작가가 쓴 일기는 그 자체로도 이미 작품성을 지닌다. 소로의 일기는 더욱 그렇다. 단순히 하루의 있었던 일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이 아닌, 매일매일 떠오로는 자연과 삶,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유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사유의 총체적 기록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매일 기록한' 일기와 같기에, 어떤 줄거리나 일관된 모습은 없다. 매 사유의 의미 역시 통일되었다는 느낌은 없다. 어떤 글들은 신성에 대한 찬양을, 혹은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직업에 대한 충고를, 가끔은 그저 계절의 변화에 대한 감탄을, 또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어떤 기별도 없이 갑자기 늘어놓는다. 애초 매일의 기록이 그저 날짜의 흐름에만 따른 것이 아니라, 갑자기 몇 년 전 같은 날의 기록으로 넘어가버리거나, 다른 책의 구절을 인용하거나, 아니면 미상의 날의 기록을 가져오는 바람에 더욱 그런 느낌은 짙어진다. 

 즉, 애당초 나처럼 책 한 권에는 통일된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하고, 첫 장을 펴고 나서 맨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호흡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책이라는 것. 

 하지만 역시, 책 제목 자체가 이미 독자에게 예시하고 있듯이 매일 같은 날의 한 페이지만을 명상하듯 읽어 나간다면 생각보다는 꽤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을 확률도 있겠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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