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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Mar 15. 2022

집사의서평 #39 칵테일, 러브, 좀비

단편의 맛



들어가는 말


조예은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앤솔로지 '펄프픽션'에서였다. 그 책에 작가의 단편이 수록된 줄은 몰랐으나, 아마 다섯 작가 중에 아는 작가의 이름이 보여서 눈여겨보게 되었고, 최근 다소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출간한 안전가옥의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기억이 났다. 

 펄프픽션에서는 제목처럼 상당히 싸구려틱한 학원 괴담을 주제로 한 단편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실망이 컸었다. 애당초 학원 괴담이 그 소재이니만큼 참신함을 기대하는 것은 좀 웃기기도 하지만, 사건의 흐름에 개연성이 꽤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이 책이 더 궁금해졌다.



4가지의 단편


 총 4개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는데, 솔직히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타임슬립이라는 주제 자체가 너무 눈에 익어 생각보다는 참신함은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늘 아예 천지창조 수준의 새로움이 아니라면 어떻게 구현해내느냐가 중요한데, 이미 타임슬립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중반까지 어느 순간이 두 이야기의 타임슬립 교차점인지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하게 구성해내었다. 감탄. 

 '초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 문제, 즉 젠더 문제를 '가시'라는 평범해서 더욱 이색적인 소재로 풀어냈다. 여기서도 '태주'의 등장에 대한 의문과 결국은 해소되지 않는 '태주'의 이야기가 조금 의뭉스럽기는 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젠더 문제가 작가의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습지의 사랑'은 다른 것보다 우리의 토종 호러, '물귀신'을 그 소재로 삼았다는 점과 실종 아동 문제, 난개발 문제에 대해 풀어내는 방식이 마음 따뜻한 연정 소설 같아 좋았다. 특히 '습지'라니. 제목 선정이 빼어났다. 

 책 표제로 삼은 '칵테일, 러브, 좀비'는 좀비가 된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와 딸의 반응을 풀어내었는데, 이 역시도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가정 구조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굿판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겠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그 구조적이고 비상식적인 문제는 역시 미신과 같은 것이라는 비판이었을까.



단편의 맛


 최근 단편소설을 써보고자 작법서도 읽어보고, 개인적으로 취향에 잘 맞진 않지만 단편집을 열심히 읽어보는 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애초에 취향이 아닌데 왜 단편소설을 써보겠다는 것인지. 원.)

 장편소설이라면 차라리 넉넉한 분량으로, 서사를 통해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텐데. 단편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얼마를 풀어내야 할지, 어느 부분은 생략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단편집이 내게 준 교훈은 무시 못 할 정도다. 

 물론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편에 매몰되다시피 한 내 개인적인 부분일 뿐, 확실히 단편에서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 어느 부분은 버려도 되는지 대략적인 밑그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게다가 네 편의 단편 모두, 이 시대(개인적으로는 살짝 앞선 세대가 맞다고 보지만)의 여성들과 그 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의 거의 '미신'급 고정관념을 그대로 깨부수는 모습을 강렬히 그려낸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이래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2년 전에 출간했는데! 물론 젠더 문제가 이슈화가 된 영향이 있겠지만.)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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