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르군 Mar 15. 2022

집사의서평 #40 오버 더 초이스

치밀한 총체적 난국


들어가는 말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한 내 개인사는 거의 중학교 때 마무리되었다. 솔직히 톨킨의 반지의 제왕 이후 판타지 세계에 대한 한국적 해석은 그 시절에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게임 산업, 그것도 MMO-RPG 형태의 온라인 게임이 주를 이루면서, 판타지와 접목된, 퓨전 판타지가 한 때 이 장르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었다.

 요즘 무협지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화가 없는 장르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무협지가 대표적인데, 저 유명한 이용 작가 이후 무협지는 너무 정형화된 구조로 어느 순간 내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반면, 판타지는 게임, 판타지 혹은 현실까지 접목하면서 꽤 긴 시간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대부분은 흥미위주에 위트로 때우는, 주인공이 ‘겁나’ 강해지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기에 어느 순간 물렸다. 그럼에도 읽는 것은, 뻔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위트와 비틀기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반면 이영도 작가의 소설은, 단순히 흥미와 재미 요소만으로는 대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어찌 보면 일반적 판타지에 비해 지루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세계관과 약간은 고전틱한 서사와 대사. 철학적 질문에 대한 표현들은 마이너스적 요소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전에 없던 오로지 ‘이영도’라는 장르를 만들어 낸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식물왕의 탄생     


 개척 도시에 보완관 보조로 근무하는 티르. 탄광 환기구에 카닛소녀 서니가 추락해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11일 만에 시신을 수습하자마자 8두 마차 사고의 생존자 이카드가 발견된다.

 엄격히 검의 소지를 제한하는 제국법에 반하여 마법검을 가진 이카드는 식물왕의 재림을 막기 위해 기나긴 여정 중 많은 동료를 잃었는데, 티르는 거의 확실하게 이카드가 백금기사단이자 황족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던 중, 서니의 엄마 테니는 자살하려 먹은 독미나리를 토해낸 직후, 서니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며 난동을 부린다. 티르는 어차피 모두 부활할 거라며 ‘의미 없는’ 살인을 일으키려는 테니를 구속하고, 이카드의 마법검 ‘메뚜기’가 식물왕을 재림시킬 ‘검’이라 추측하여 가장 도망에 유리한 시의장이자 식물 뱀파이어인 나라부스에게 검을 맡긴다.

 하지만 막상 ‘검’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 모두는 시의장이 있는 언덕을 거슬러 오르려 하지만 잔디밭에서 어느새 울창한 원시림이 되어버린 식물군집에 저지당하고 난처해한다.

 그때, 티르가 죽일 수밖에 없었던 위어울프 지데가 다시 살아 돌아오고, 식물왕을 대변하여 다시는 식물을 태우지 않는다면, 모든 사고로 인한 죽음에 부활을 선물하겠다고 전언하는데...

 부활을 원하는 사람과 부활이 주는 ‘죽음의 무가치함’에 치를 떠는 사람들의 고군분투와 대립. 그리고,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왕’의 의미. 걸작이다.         


 

치밀한 총체적 난국    


 전에는 빼어난 소설을 보면 감탄했다. 놀라웠고 즐거웠다. 독자라는 사실이 좋았고, 그런 작품을 어떤 경로든지 접해서 읽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물론,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독자로서 궁금증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 권의 소설을 내고, 작가라는 호칭을 가진 지금은 조금 그 감상이 다르다. 단순히 시기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좀 크달까.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고도 그랬고,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고도 그랬다. 질투가 났다. 그리고 약간 자괴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는 그런 질투도 나질 않는다. 드래곤라자,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오버 더 호라이즌... 그 어떤 작품도 내게 질투심을 일으키질 못했다. 아무래도 질투심의 극에는 존경심이 있는 모양이다. 경외.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해내고, 이런 세상을 구축해 내고, 그 많은 인물들을 세심히 조종하고, 서로를 얽고, 다시 풀고, 그 인연 사이사이에 그 수많은 철학적 고뇌를 끼워 넣는단 말인가.

 물론, 위에도 언급했지만 단점도 있기는 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판타지 세계관에 대한 기초 소양(?)이 없다면 난해하기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특히나 배경 설명 없이 대사와 행동으로 이종족을 풀어내는 방식을 따르자면 솔직히 초반에 읽기를 포기할 확률이 높다. 거기에 더해서 고전적인 서사방식과 기본적으로 중세시대가 모티브인 판타지 세계의 특성상 엔틱한 대화체 등은 더욱 취향을 탈 확률이 높다 하겠다. 또한 이영도 작가의 위트, 예를 들면 ‘그 말이 보안관의 하체운동을 하게 할 줄은 몰랐다.’ =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안절부절못했다.’는 등의 표현 등은 가끔은 한 번 더 독자가 생각해야 웃음이 터지는 방식이라 충분히 지루 하달 수 있다.

 그럼에도 이영도의 소설은 소설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다. ‘판타지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다 더 깊고 심오한 철학이, 대립이, 공존이 존재하는 ‘치밀한 총체적 난국’의 망라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매거진의 이전글 집사의서평 #39 칵테일, 러브, 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