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르군 Mar 12. 2022

집사의서평 #37 리슐리외 호텔 살인

술자는 있되, 주인공이 없다


들어가는 말


 꽤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적에는 범인과의 두뇌싸움이 즐거웠고, 조금 독서량이 늘면서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흥미로웠다. 특히나 판타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접할 수 있는 장르소설이 흔하지 않았던 이유도 작용했다. 

 추리소설 하면 대표로 꼽히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스티븐 킹의 소설을 꽤나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거의 '감명'이라는 단어를 써도 무방할 정도로 재밌게 봤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무래도 휘발성이 짙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장르물의 취약함이랄까.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그때의 그 흥분을 한 번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는데 글쎄.

 (뒤에도 밝히겠지만, 백 년 전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서평이 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짙다. 백 년 전 사람들이 보는 라이터에 대한 감상과 지금 내가 보는 그것과의 괴리는 어마어마할 테니까.)



일단 죽어야 시작


 대부분 고전 추리소설이 그렇듯, 제목인 리슐리외 호텔이 사건의 배경이다. 주된 술자는 호텔 스위트룸의 장기 투숙자인 미스 애덤스. 꽤나 보수적인 미혼자로 나이 든 애덤스는 호텔에 투숙하는 손님들을 여러 시각에서(특히 버릇없거나 경박하다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살피는 것을 즐겨한다. 호텔인 만큼 단기 투숙객들도 존재하는데 어느 날 일주일 간 머물기로 한 리드 씨가 살해된 채로, 그것도 미스 애덤스의 스위트룸에서 발견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리드 씨가 사실은 사립탐정이었으며, 호텔에 오기 한 달 전 조사를 의뢰받았음이 버니언 경위에 의해 밝혀지면서 장기 투숙자들을 용의 선상에 놓고 수사를 벌이지만,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이었던 로티 모스비가 다시 살해당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흘러간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은 투숙객 모두가 뭔가 경위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 동일인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던 중 힐다 앤서니는 미스 애덤스에게 자신이 살해당할 것이라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범인의 계략에 경위가 현장에 늦게(사실은 맞게) 도착하여 결국 살해당하고, 미스 애덤스는 유력한 용의자로 올라서는데...



술자는 있되, 주인공이 없다


 내가 처음 피자라는 음식을 먹어 본 것은, 아마 국민학교 4학년 즈음인 것 같다. 그때는 그것이 '피자'라는 것은 몰랐고, 그저 하얀 빵이라고 생각했다. 외가댁에서 친척들이 사 와서 먹었고, 외할머니가 그것을 나중에야 줬던 것이라 당연히 차디 차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혹시 어렸을 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나이 들어 다시 먹어보니 영 맛이 없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이 소설이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일단 여기서 문제는, 과연 이 소설이 내가 어릴 적 읽었던 그런 추리소설과 '같은 정도'의 소설이냐는 것이다. 

 일단, 가능하다면 빠른 시간 내에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정확히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개인적으로 최고 걸작이라 생각하는 작품)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것이 단순히 내 유년 시절에 대한 환상적 기억 조작이라는 것은, 그때의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 결론이 날 듯하니까. 

 우선 전체적으로 이 작품이 나온 지 백 년은 흘렀다는 사실에 집중해야겠다. 문체라던지 필치가 아무래도 조금 촌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순히 고풍스러운 느낌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솔직히 그러 느낌보다는 그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부분이 단순히 작품이 나오고 시간이 오래 지나서라기보다는 애초에 이 소설이 작가의 초기 작품(개인적으로는 그냥 첫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맥의 흐름이 매끄럽질 못하다. 나름 속독은 아니더라도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도 다 읽는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킨데 비해서 전혀 집중된 서사가 없다. 즉, 그렇게 얽히고설켜 서로의 비밀을 간직하고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독자들은 그 관계에 대해 서사적으로라도 알 수가 없다. 맹점은 역시 1인칭 시점을 사용하고 있는 부분이겠지만, 작가가 1인칭 시점으로 추리소설을 적기로 마음먹었다면 일단 술자는 주인공으로써 날카로운 관찰력과 기억력, 판단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적어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 미스 애덤스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과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주요 용의자들을 보는 데에 상당히 편파적인 판단을 늘 하고 있는 데다가 시시각각 그런 판단마저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면을 보인다. 물론 개인의 심리를 표현하는 부분에서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리소설, 그것도 1인칭 시점인 소설에서 독자에게 이런 주인공을 주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다. 

 즉, 사건 해결을 위한 여러 증거나 힌트들을 숨겨둔 것도 아니고, 설사 숨겨놓았더라도 애초에 술자가 그런 것들에 대해 알아채거나 독자에게 알려주질 않는 바에야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건기록에 가까운 것이다. 그마저 형사나 탐정의 입장이라면 해결해나가는 사고의 흐름이라도 엿볼 텐데, 그저 관망자적 입장에서 풀어놓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 종국에는 그저 어디선가 발견된 '메모'만으로 모두 설명하려는, 과도한 결말을 야기하고 있지 않았는가 싶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려고 한 모습은 꽤 좋았지만 반전 시도의 발단인 손목의 상처에 대한 것, 경위의 주먹구구 같은 추리는 미흡하다는 말로도 조금 부족했지 싶다. 

 다만, 창작이라는 것의 어려움을 생각해보자면 근 백 년이라는 과거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지 않을까. 내가 놀라워했던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초기 작품보다 조금 뒤 선 작품이라고는 해도 이런 구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솔직히 위의 서평은 큰 의미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매거진의 이전글 집사의서평 #36 기억술사 : 므네모스의 책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