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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Mar 12. 2022

집사의서평 #36 기억술사 : 므네모스의 책장

엉성한 거미줄


들어가는 말


 인간의 기술은 SF소설에서 그리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런 눈부신 발전 속에도 여전히 답보를 면치 못하는 분야가 있다. 바다와 인간. 인간이 만든 기술로 스스로를 분석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살다 보면 절로 쌓이는 기억들이 있다. 어떤 기억들은 잊고 싶지 않아도 잊히고, 다른 기억들은 잊고 싶음에도 절대 지워지질 않는다. 그런 기억들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주로 소설에서는 SF로 다뤄져 뇌를 통한 조작을 그려왔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판타지적인 요소로 인간의 기억을 그려냈다. 

 늘 강조하지만 완전 새로운 것의 창조는 어렵다. 딱히 과학적 기술이 아니더라도, 판타지에서는 마법으로, 초능력으로 기억을 조작하는 종류의 소설은 꽤 많다. 과연 이 소설은 어떻게 새로운 면을 보여줄까. 



기억을 조작하는 자


 선오는 어느 순간, 자신이 타인의 기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의 기억은 마치 거대한 도서관처럼 수많은 책으로 저장되고, 뭉그리라는 존재들은 그런 기억들을 정리하거나 뒤섞어놓는다. 살펴보거나 조금의 조작을 가할 수는 있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못하는 선오는, 기억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기억력 회복을 돕는 '므네모스 기억력 치료소'를 차리고 사람들을 돕는다.

 희주는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어릴 적 기억부터 순차적으로 사라지는데, 며칠 전 읽은 일기장의 내용도 마치 소설을 읽는 듯 타인의 일처럼 느낀다. 병원을 전전하다 인터넷에서 므네모스의 정보를 얻고 선오를 찾아간다. 

 선오는 희주의 도서관에서 책을 먹어치우는 '그것'에 대한 호기심과 희주에 대한 연민으로 적극적으로 희주의 치료에 나선다. 그러던 중 희주의 초등학교 동창인 은아와 태준이 무언가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만나고, 누군가가 자신처럼 기억에 접근할 수 있는 데다가 심지어 조작까지 가능하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접점에 점점 다가간다. 



엉성한 거미줄


 나름, 소재가 참신하다. 기억을 들여다보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이 도서관의 그것처럼 구성되어있고, 매일의 기억들이 책으로 엮여있다는 상상은 새롭다. 게다가 그 도서관에 '입장'이 가능한 능력. 그리고 기억들이 퇴화되는 현상을 소설적 발상으로 그려낸 '몽그리'들. 특별한 기억이 오래 남는 이유에 대한 설명 '책갈피' 등등. 

 또한 구성이 탄탄하다. 선오와 희주가 만나 사라지는 기억에 대해 추적해가는 이야기나 조성환 선생의 이야기가 맞물려서 갈등이 해소되는 부분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구조는 잘 짜여있되, 그 힘이 살짝 약하달까. 아쉬운 마음이 컸다. 애초에 능력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부족하다. 어떠한 경위로 능력을 얻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의아하다. 일부러 설명을 뒤로 미룬 것인지 모르겠지만, '므네모스'라는 명칭에 대한 설명 역시 과도하게 뒤로 물러나 있다. 이미 독자가 알고 있어야 했거나, 굳이 검색해서 알아봐야 하는 내용을 제목과 주인공의 상담소 명칭에 넣은 것은 매우 불친절했다.

 게다가 기억을 보려면 머리에 손을 대야만 하는데, 애초에 상담을 받으러 온 손님이라면 모를까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타인의 기억을 봐야만 하는 순간에는 현실적으로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게다가 기억을 보는 시간도 현실의 10분의 1 수준인지라, 현실성이 꽤 떨어진다.

 또, 태준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현수 경사 사건은 소설의 흐름 상 매우 주요한 사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현실성이 꽤 떨어진다. 일단 검사가 일반인인 희주를 범죄자 심문 과정에 들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초면인 선오를 검사인 자신이 의뢰자인 조성환 선생이 껄끄럽다는 이유로 참여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물론, 애초에 이현수 경사 사건 자체도 현실의 수사 행태와 비교해보자면 약간 억지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나 아쉬운 점은 범인(범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지만)이 초반에 과도하게 드러난다는 것과, 희주가 그런 특별한 존재로 부각되기에는 배경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일단 소설에서 주인공은 특별한 존재일 필요가 있거니와, 소설 속에서 희주의 역할이나 상황을 보자면 그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이어서는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에서 돋보이는 것은 참신한 소재보다도 잘 짜인 구성이었는데, 만남부터 사건 해결(?)까지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연관성이 좋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어두운 쪽(?)이라설까. 마무리는 크게 설득력은 주지 못했다. '따뜻한 판타지'를 추구하는 느낌.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출판사인 팩토리 나인의 책인데, 두 소설이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내 착각일까.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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