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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Mar 12. 2022

집사의서평 #35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다 맞는 말. 하지만 모를 말.


들어가는 말


 그렇다. 운 좋게 장편소설 한 권을 출간했다. 미스터리 스릴러물. 여러 번 밝힌 바와 같이, 이런 장르소설의 장점은 따로 배경지식이 없이 자료조사를 하지 않더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방대한 배경지식과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시는 작가분들도 계시겠지만) 애당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구상하는데 현실의 지식이나 자료가 무슨 소용이람. 

 그래서 소설을 쓰겠다,라고 생각한 바에야 작법서 같은 책을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작법서란 두 종류밖에 없다. 첫째는 문예창작과 1학년 새내기에게 나눠줄 법한 교양서적이고, 둘째는 주식투자 성공기나 세계적 부호의 자기 계발서 같은 부류의 '자랑 서적'. 

 그럼에도 굳이 이 책을 사서 읽은 것은 단편에 도전해보기 위해서다. 아무래도 장편소설은 구상이 오래 걸리기도 하거니와, 쓰는데도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본업이 있는 나로서는 집중이 어렵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끌다 보면 나 스스로도 소설이 지루해져 버린다. 그런 틈틈이 단편소설로 나 스스로 환기를 시키고, 공모전 같은 기회도 노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막상 써보려니, 이제 서두인데 거의 2천 자가 넘어버렸다. 물론 중요한 장면이라곤 하지만, 이 사건 뒤로 대략 20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그냥 통째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도로 생략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간단히라도 요약 서술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사게 되었다. 



다 맞는 말. 하지만 모를 말.


 책은 크게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있다. 대략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1. 재능 개발 : 단순히 글을 쓰는 재능이 아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에 대한 이야기.

  2. 아이디어 : 아이디어를 만난 순간부터, 어떻게 이끌어가고 소설로 구성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3. 소설의 시작 : 소설의 구상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과 시점에 대한 이야기.

  4. 소설의 통제 : 소설의 내용과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더욱 값진 소설로 만드는 법.

  5. 소설의 끝 : 소설의 마무리와 퇴고, 편집자의 역할, 시장성과 문학성에 대한 이야기.

  6. 작가의 삶 : 작가의 일반적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노하우(?)

 일단 내가 다른 작법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 이유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전에 밝힌다. 하지만 집 책장에 같이 구입한 다른 작법서가 있으므로, 그 책에 대한 서평에서는 비교하는 내용이 나올 수 있겠다. 

  이 책은 내가 기대한 작법서는 아니다. 굳이 장편소설을 주로 하는(겨우 한 권이면서!) 내 입장에서 '단편'소설 쓰기 작법서를 산 이유는, 우습지만 말 그대로 테크니컬적인 면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테크니컬적인 내용은 나오질 않는다. 

 아니, 분명 테크니컬 한 부분들이 나온다. 심지어 예문도 다수 나오면서 '숙제'도 내준다. 참고할만한 책들의 목록도 엄청난데, 다 사려면 허리 꽤나 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이 기술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냐 하면 좀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볼까.

오른쪽 어깨에 선이 오면 왼쪽으로 두 바퀴 반 돌리고 후진. 천천히 푸시고, 직진하다가 왼쪽 어깨에 선이 오면 왼쪽으로 다시 두 바퀴 반

일단, 차의 머리가 적당히 T자 형 외곽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대로 나가지 못하면 뒷바퀴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너무 나간다면 앞바퀴가 밖의 턱에 부딪힐 것이다.

 위의 예시는 내가 원했던 것이고, 아래의 예시는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예시만 본다면 이 책은 작법서로서 별로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이 없지는 않다. 일단, 작가가 확실히 글을 잘 쓴다. 작법서임에도 웬만한 소설보다 더 글이 잘 읽힌다. 그만큼 이야기가 부드럽게 써져있고, 소설을 쓰는 작가의 모습과 자세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이래서 사람들이 자기 계발서를 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 

 특히나 '무의식'에 대한 언급은 꽤나 진심으로 읽었다. 어쨌든 이성적인 부분은 현실적으로 내가 아는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보자면, 정말 '창조'라는 부분의 영역은 내 무의식이 관할하는 것이고, 그런 무의식의 이용과 활용은 정말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상징적인 단어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구상해야만 이 무의식이 소설을 창조해주겠구나.

 여하튼, 기술적인 부분을 위해서 읽은 책이자, 단편소설을 써보겠다고 선택한 책이었지만, 그냥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진솔하고 디테일한 에세이를 읽은 느낌이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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