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르군 Mar 05. 2022

집사의서평 #33 장미의 이름은 장미

뉴욕은 포인트가 아닌데.


들어가는 말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는가. 그리고, 그 관심의 정도만큼 스스로에게 관심을 갖는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과연 얼마나 스스로에게 솔직한가, 혹은 타인에게 무력한가.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이 소설은 그렇게 스스로의 고독 속에서도 모두와 연대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반성문인 것일까. 알 수 없다. 이미 우리는 어느 사이에 연대의 그룹에 원치 않게 들어섰지만 타고난 고독에서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이미 고독감을 가진 자에게 연대란 허례허식 같은 것이므로. 



왜 뉴욕인가


 총 네 작품의 기존 발표작을 한 데 모은 단편집이다. 연작소설이라고 하기에 뭔가 다름을 기대했던 내가 마지막 작가의 말 뒤에 이어 빈 페이지에 뜬금없이 씌여진 수록 작품 발표 지면 네 줄을 보면서 느낀 실망감은 예상외로 컸다. 아마 연작소설에 대한 나의 이미지가 피상적인 관계로 이상한 방향으로 기대감이 충만했던가보다. 그런 고로, 내 실망은 온전히 나의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내가 접한 단편집들은 대부분 그러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기존 발표작의 모음집. 난 개인적으로 좋은 작가의 여기저기 흩어진 글을 찾아서 읽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유고작이 아닌 이상에야 유명 작가의 최근 발표작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은 결국은 상술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역시 온전히 나의 생각일 뿐이다. 

 책은 반길 수 없는 친구의 아파트를 찾는 이야기, 어학연수에서 타국인과의 만남, 뉴욕에서 유학생과의 연애, 뉴욕에 출장 온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주로 이야기는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장막에 부딪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장막이란 것이 결국은 스스로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므로, 타인은 왜 주인공이 그 자리에 서서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하지만 결국, 장막 너머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서운함과 어떤 방법으로도 이해시킬 수 없으리라는 포기의 순간에 느끼는 고독함의 발로일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에서 한 발짜국도 더 내딛을 힘이 없어 뉴욕으로 떠나거나, 압력을 회피하려 비행기표를 끊기도 하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불청객을 벗 삼아 도달하기도 한다. 

 의아한 것은 왜 뉴욕인가이다. 물론 각 소설에서 배경으로 쓰이는 뉴욕은 과거의 연이 닿은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크게 봤을 땐 그저 나와 외부의 단절과 그로 인한 운신의 제한, 그로 인해 더욱 증폭되는 본래의 고독을 야기하는 원인인 것 같기는 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그저 작가가 작품 활동을 위해 머문 곳이 뉴욕이었기에 배경이 되었을 뿐, 작품 어디에도 오직 뉴욕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는 것. 

 하지만 뉴욕이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다른 국가나 도시였다고 해도 소설의 본질에 큰 무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즉, 그것이 뉴욕이나 도쿄, 베이징, 로마, 파리였더라도 인간 본연의 고독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색으로 그리든지, 그 형태가 동일하다면 우리는 동일한 것으로 인식할 테니까.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매거진의 이전글 집사의서평 #32 재인, 재욱, 재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