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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Jul 17. 2022

집사의서평 #58 호러 미스터리 컬렉션

호러의 목적은 호러한 것

    



들어가는 말


 호러의 정의는 공포를 유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공포, 두려움을 통해서 쾌락을 찾는가.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의아하다. 

 아마 보통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안도감에서 오는 쾌감. 그것이 우리가 호러를 즐기는 이유이지 않을까 한다. 어디선가 읽은 내용이니, 어느 전문가의 견해임에도 틀림없다. 

 의도적으로, 우리를 공포나 두려움의 상황에 몰아넣은 다음, 종말에 가서는 결국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안도감이 쾌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혹은 그것이 현실일지라도,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저 관찰자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얻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조금 슬픈 것이, 조삼모사하는 원숭이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애초에 굳이 인위적으로 꾸며진 공포와 두려움 속에 우리를 몰아넣지 않고서는 안도감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인가. 그만큼 우리는 불안정한가?

 하지만 우리가 불안정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므로, 호러라는 장르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봐도 좋지 않나 생각한다.



그로테스크 호러


 모두 여덟 편의 호러로 이뤄져 있다. 한편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미안해'를 제외하면 상당히 불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애초에 책 제목에서 언급했듯이 '호러'장르를 찾아서 읽는 독자라면 불편하기보다는 상당히 만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쓰쿠모가미'에서는 수집욕에 훔치다시피 한 책에 깃든 저주를, 'Low Spirit'에서는 1년의 안식과 같은 꿈을 주는 약의 폐해, '슬럼프'에서는 창작에 대한 욕구를 강제하는 기괴한 집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 가지의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내재된 욕구들과 그 욕구들을 가감 없이 현실에서 추구한 결과물들이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독자에게 공포와 함께 욕망의 허무함과 그에 따른 대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난'에서는 아들과 함께 한 산행에서 조난을 당하면서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일련의 사건을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고, '미안해'에서는 치매로 인한 착각과 오해로 인해 벌어지는 조금은 측은한 사건을 들려준다.

 '크리스마스의 유령'에서는 가족의 비극을 겪은 주인공이 단란한 가정을 보고 들끓는 분노를 풀어내었으나 되려 비극 속 마지막 남은 유일한 행복의 끈을 잘라내 버리는 초비극을, '떠도는 아이'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벌이는 엽기적 범죄행위를, '번식'에서는 인간이 창조해낸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불호러


 앞서 이야기했듯이, 호러라는 장르는 상당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일단 기본적으로 유혈이 낭자하고 창자가 쏟아져내리며 괴식 혹은 기괴한 행위들이 점철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하지만 역시나 호러에서 오는 반대급부적인 안도감 혹은 현실감이 되려 어떤 쾌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거의 모든 문예작품들이 결국은 기승전결, 갈등의 증폭과 해소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공포스럽고 두려우며, 불편한 내용들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쾌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니까.

 다만 호러라는 장르는, 보통 소설이 해소까지 서술을 해줌으로써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과 다르게 종국에서도 그 어떤 해소를 주지 않는다. (물론, 귀신의 원한이 풀린다든지 하는 결말도 존재한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우리는 소설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올 것이고, 우리가 현실로 돌아왔음을 인지하는 시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테니까. 굳이 작가가 거기까지 관여하는 것은 되려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소설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는 과정을 빼앗는 일일 수도 있다. 

 일단 몇 번 이야기했지만, 어차피 호러라는 장르를 굳이 찾아서 읽으시는 분이라면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며 기괴한 이야기에 만족할 듯싶다. 물론 '쓰쿠모가미'나 'Low Spirit', '슬럼프'같은 스토리라인은 조금은 식상한 면이 없지 않지만,  SF물이나 히어로물처럼, 결국 호러물은 얼마나 장면, 장면을 공포스럽게,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느냐가 더 중점이니 크게 걸림돌은 되지 않을 듯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안해'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ESTJ인 면에서 너무 극단적으로 기괴한 내용은 동감이 어려웠던 반면, 어릴 적 자신을 학대했던 모친에 대한 기억을, 치매의 퇴행으로 인해 현재로 인식하고, 현재의 딸을 자신의 모친으로 착각하여 살해하는 장면과, 그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다시 딸의 딸이라는 장면.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주인공의 모습 등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아, 아무래도 난 호러 쪽 취향은 아닌 모양이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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