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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Sep 04. 2020

#내것 #07 - 마비스 치약

효과는 몰라도 상쾌함은 확실하다

3년 전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배가 귀국 선물을 줬다. 부엌 개수대처럼 생긴 메탈 감성의 튜브였다. 유럽 어느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본 것 같은 남자 초상화가 근사했다. 유럽인 패키지 디자이너가 특대형 유성 물감을 예쁘게 만들면 이렇게 되겠구나 싶은 겉모습이었다. 지나치려야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상표는 ‘MARVIS’라고 쓰여 있었다.


후배의 신혼여행 행선지는 이탈리아였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을 터인데 내가 기억하는 그의 여행 이야기는 베네치아밖에 없다. 베네치아는 내게 유니크한 경험을 안긴 도시다. 오래전 베네치아에서 아내와 나는 한 식당에 들렀다. 날씨가 따뜻해 바깥 테이블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유럽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식당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친 외국인 관광객 둘이 계산서를 받자마자 자기들끼리 수군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20분 정도 뒤에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종업원이 가져다준 청구서에는 테이블 차지가 따로, 아주, 비싸게 적혀 있었다. 보통 이럴 때는 자리에 안내하면서 테이블 차지를 설명하는 게 상식 아닌가? 우리는 ‘썩소’와 현금을 건넸고 잔돈을 받은 뒤 자리를 떴다. 


여기서부터 하이라이트다. 다음 날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면서 미니바 요금을 식당에서 받은 지폐로 냈다.


“손님, 이 지폐는 구권이라서 지금 사용할 수 없어요.”

“어제 식당에서 잔돈으로 받은 건대요.”

“그 식당 이름이 뭐죠? 그런 곳은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

“이름이 뭐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아요.”

“잘 기억해보세요.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황당했던 기억을 혼자 더듬거리고 있는데 후배는 “선배, 이탈리아에서는 무조건 이거 사야 한다고 해서 사 왔어요”라고 말했다. 언젠가 독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른 후배가 빨간색 아요나 치약을 줬는데 그 친구의 설명도 ‘이탈리아’만 ‘독일’로 바뀌었을 뿐 정확히 일치했다. 어쨌든 생각해줘서 고맙고, 덕분에 한국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치약을 써보게 되어 참신했다.


후배 덕분에 패션으로 승화했다고 주장하는 치약을 처음 사용해봤다. 메탈릭 표면처럼 민트향이 강했다. 죽염 치약 정도의 감촉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소금 알갱이가 씹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물로 헹구고 내쉰 첫 숨에서 아니나 다를까 민트향이 넘쳐흘렀다. 세수할 때도 뽀득뽀득 소리가 나야 직성이 풀리듯이 마비스 치약은 과할 정도로 화~ 한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한 한 화장품 회사가 마비스의 모태다. 1958년 처음 상표 등록이 되었고, 1997년 루도비코 마르텔리가 브랜드를 인수했다. 초창기 마비스는 흡연자를 타깃으로 마케팅을 했다고 한다. 미백 효과와 구취 제거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선전했고, 남다른 패키지 디자인으로 남성용품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마르텔리 가문은 “마비스는 패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주 자신만만하다.


사실 그전까지 나는 내 치약이 없었다. 내가 직접 치약을 산 적도 거의 없다. 총각이었을 때는 어머니가 사는 치약을, 결혼해서는 아내가 사 오는 치약을 썼다. 어머니는 죽염 치약을 자주 사 오셨다. 소금처럼 짠맛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내가 치아를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갖가지 홍보 문구나 그럴 듯한 광고를 동원해도 어머니에게는 옛 생각 나게 하는 짠맛이 믿음직스러웠던 것 같다.


마비스는 꽤 괜찮았다. 물론 치아가 기적적으로 표백되진 않았다. 구취도 담배를 끊기 전에 없어지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래도 마비스는 양치할 때만큼은 상쾌함을 확실히 전달했다. 치약계의 샤넬? 글쎄, 잘 모르겠다. 무슨 의도로 고안한 비유인지는 알 것 같지만 치약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민망한 표현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샤넬까진 아니어도 어쨌든 나는 마비스를 늘 사용하고 있다. 


아내와 치약을 공유하지 않는 덕분에 내 마비스는 꽤 오래 간다. 잇몸이 약한 아내는 센소다인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하노이에 갈 때마다 센소다인을 잔뜩 사 온다. 베트남에서는 똑같은 센소다인을 한국 가격의 절반 이하에 판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마트 입구에 김 코너가 따로 있듯이, 한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인 하노이 롯데마트에는 센소다인 치약이 공격적으로 진열되어 있다. 센소다인 한뭉큼 안에 나의 세컨드 치약인 달리를 슬쩍 끼워 넣어 트렁크에 챙긴다.


지금 사용하는 마비스는 지난해 겨울 아내와 갔던 팔레르모의 어느 약국에서 산 것들이다. 숙소 근처에서 너무나 로컬스럽게 생긴 약국을 구경 삼아 들어갔다가 마비스를 한움큼 집어왔다. 마비스의 나라에 온 것을 기념해서 우리는 색깔별로 쇼핑했다. 처음 후배가 줬던 화이트닝(실버)을 3개 샀고, 아마렐리 리코리체(블랙), 자스민(퍼플), 클래식 스트롱(그린), 아쿠아틱(블루), 진저(오렌지), 시나몬(레드)을 하나씩 샀다. 가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서울에서 해외직구로 사는 것보다는 저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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