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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Sep 20. 2020

#내것 #08 - 캐논 파워샷 G7X Mark III

DSLR을 짊어진 채 돌고 돌아 와보니 내 손에 ‘똑딱이’가 있더라


언젠가 DSLR 카메라가 유행했다. 자전거 열풍 시점과 얼추 겹쳤던 것 같다. 갑자기 사람들은 친절하고 저렴한 ‘똑딱이’를 내팽개치고 큼지막한 대포를 짊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몸뚱아리에 흰색(정확히는 아이보리) 길쭉한 렌즈를 꽂은 모양새가 그냥 눈으로만 봐도 무거웠다.


포토그래퍼와 몸을 부대끼는 삶이라서 나도 주위에 널린 물건들에 눈이 갔다. 한번은 부산에서 잡지 촬영이 잡혔다. 포토그래퍼가 차 트렁크를 열고 장비를 잔뜩 실었다. 이것들 대충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다. 포토그래퍼는 “음, 이것저것 하면 대충 8천만 원 정도?”라고 대답했다. 일 끝내고 올라오는 길에 둘을 암매장(계룡산 정도가 좋겠다)하고 장비를 챙겨 원빈이 운영하는 전당포에서 처분할까. 원빈이 제비 손날로 내 목젖을 강타하겠지.


호기심과 소심함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캐논 60D를 샀다. 표준 렌즈와 함께 뭉뚝한 50mm F1.8 단렌즈가 따라왔다. 알다시피 단렌즈는 배경을 날려 피사체를 돋보이게 해준다. 집에서 금광이(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녀석)를 찍어봤다. 두 눈망울은 흐릿하게 날아간 채 콧등에 있는 자잘한 주름이 또렷이 찍혔다. 그때만 해도 아웃포커싱 기능은 DSLR 카메라 고유의 영역이었다. 아웃포커싱 기능의 장점은 ‘대충 찍어도 웬만큼 근사하게 나온다’다. 우쭐해 있는데 포토그래퍼 후배가 내 멋진 단렌즈를 보더니 “똥렌즈네. 그래도 뭐 대충 쓸 만해요”라며 동심을 파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렌즈를 하나씩 보탰다. 쌈짓돈을 모아 광각 렌즈를 사고, 면세점에서 ‘당신을 더 아름답게 찍을 수 있다’라는 유혹으로 아내의 카드를 살살 꼬셔 표준 렌즈를 업그레이드했다. 망원 렌즈도 욕심이 난 터에 8천만 원어치 장비의 포토그래퍼가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70-200 렌즈를 발견했다. 또 한 번 살살 꼬셔서 30만원 주고 빼앗았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똥’ 소리는 듣지 않을 수준까지만 딱 갖췄다.


DSLR을 다루기 전에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셔터 스피드, 조리개, 노출 등을 외운다고 외웠다. 실제로 해보니 기술보다 태도가 더 중요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알아야 했고, 대범하게 다가설 줄 알아야 했다. 이 바닥 ‘레전설’인 로버트 카파는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빛을 가늠할 줄 아는 눈보다 피사체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뻔뻔함이 더 중요했다. 큰돈 들여 L렌즈로 무장해봤자 소심한 거리에선 어정쩡한 사진만 나온다.


체력도 중요했다. 본체와 렌즈 여러 개를 들고 다니면서 하늘을 어깨로 짊어지는 아틀라스가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무게에 대한 내성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출장지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거운 카메라백을 짊어지고 다니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반나절이면 체력이 고갈되었다. 그리곤 출장지에서 펜 기자에게 고성능 카메라가 얼마나 쓸모없는 장비인지 뉘우친다. 차라리 덤벨을 들고 다니는 게 건강에 좋을지도 모른다. 무게는 내성이 아니라 게으름만 키웠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게으름 위에 MSG를 솔솔 뿌렸다. 크, 이런 감칠맛이란.

지금 나는 캐논 파워샷 G7X Mark III를 사용한다. 영상 세상이 되었다길래 음성 단자가 따로 달린 제품으로 선택했다. 네이버는 캐논 파워샷 G7X와 소니 RX100VII 중 하나를 사면 된다고 가르쳐줬다. 유튜브에서 한 일본인 아줌마의 파워샷 G7X 리뷰 영상을 봤다. 모델 출신답게 아름다운 아줌마가 마이크 탈부착에 따른 녹음 상태를 비교했는데 차이가 확연했다. 아줌마는 “얏빠리 마이크오 츠께떼 로쿠온시타 호오가 이이데스네. 마와리노 자츠온모 후세게루시”라고 말했다. RX100VII은 동체를 따라잡는 오토포커싱 성능이 기막혔지만 두 배나 비쌌다. 그래서 결론은 캐논 파워샷 G7X.


동영상은 둘째치고 파워샷 G7X는 스틸사진이 정말 끝내주게 찍혔다. 각종 상황에 맞춰 다양한 모드가 프리세팅되어 ‘똥손’을 위로해준다. 조리개값도 1.8까지 조절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화면이 자유롭게 조절되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이 가능하다. 수직으로 눌러 찍기도 편했고, 아래에서 올려 붙이기도 좋았다. 자고로 사람 눈높이에서 벗어난 앵글이 색다른 재미를 주는 법인데 파워샷 G7X는 그러기에 딱 좋았다. 세로 모드 동영상 촬영도 지원한다. 물론 무선 마이크를 장착하면 멀리 떨어진 피사체의 음성도 또렷하게 담아준다.


무엇보다, 가볍다. 한 손으로 들어도 무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무게다. 당연히 어깨가 투덜거리거리나 등이 땀을 내뱉을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G7X를 산 다음부터 나는 늘 백팩 속에 넣고 다닌다. 아이폰Xs도 소셜미디어 포스팅에 써먹을 수준은 너끈히 해치운다. 그런데 G7X가 훨씬 예쁘게, 근사하게, 그럴듯하게 잘 찍힌다. G7X를 꺼내면 가끔 주위에서 “어? 요즘도 똑딱이를 쓰는 사람이 있네”라면서 신기해 한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웃어넘긴다. 똑딱이인데 말도 못 하게 똑똑한 녀석이라는 사실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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