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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Oct 27. 2020

#내것 #10 - 금광이, 탄이

내가 '애니뭘봐'를 보지 않는 이유

얼마 전 방송국 지인에게서 ‘애니뭘봐’ 이야기를 들었다. SBS 유튜브에서 조회수를 책임지는 콘텐츠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은 ‘개통령’ 강형욱과 이경규의 ‘개는 훌륭하다’를 습관처럼 세상에 추천하는 것 같다. 나는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국내 동물 관련 영상을 보지 않는다. 먼저 간 금광과 탄이 생각나서 그렇다.


결혼한 지 3년째였던가. 주말에 아내가 불쑥 “개 보러 가자”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 압구정동에서는 고급 애완견센터가 유행이었다. 동네가 동네였던 만큼 비싼 개가 인기를 끌었다. 구경만 하자면서 이곳저곳 가게를 둘러봤다. 다들 챔피언 혈통이라며, 연예인 아무개가 지난주 입양해갔다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했다. 400만원이나 하는 녀석도 있었다. 경차가 1천만원 이하였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32평이 6~7억원(지금 대충 25억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동네는 그랬다.


구경만 하자는 호기심과 달리 우리는 화이트 슈나우저 한 마리를 입양했다. 그때 아내는 남아공 금광 펀드에 목돈을 넣었다. 우리는 펀드 대박을 기원하며 이름을 ‘금광이’로 정했다. 둘 다 애완견을 키우는 일에 서툴렀다. 배변훈련만 한 달 넘게 걸렸다. 퇴근하고 돌아왔더니 화장실에서 화장지가 거실을 가로질러 혀를 내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금광이는 실성한 것처럼 나를 반겼다. 가끔 오줌을 지릴 때도 있었다. 그게 외로웠다는 소리인 줄 나중에야 깨달았다.


금광이가 갑자기 자기 똥을 먹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단백질 부족 현상이라고 해서 안심을 사다가 먹였다. 나아지나 싶더니 또 똥을 먹었다. 공포심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소리가 큰 생수병으로 엉덩이와 바닥을 번갈아 때리면서 혼을 냈다.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외로워서’라는 정보를 얻었다. 아내와 상의한 뒤에 나 혼자 하남에 있는 브리더를 찾아가 초콜릿 색깔의 푸들을 한 마리 입양해 왔다. 불에 그을린 것 같아서 이름을 ‘탄’이라고 지었다. 그날부터 금광이의 식분증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외로웠던 것이다.


우리는 평생 한 침대에서 잤다. 금광이는 아내의 머리맡에서, 탄이는 내 가랑이 사이에서 잤다. 금광이는 엉뚱하고 발랄했다. 멍청할 때도 있었고 똑똑할 때도 있었다. 탄이는 푸들답게 영리했다. 가끔 사람처럼 굴어 건방져 보일 때도 있었다. 혼을 내면 금광이는 더 엉겨 붙었고, 탄이는 끙끙대며 엄살이 피웠다. 탄이는 한강공원에서 갑자기 강물에 뛰어들어 아내가 혼비백산했다. 심지어 천천히 골목길을 달리던 차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적도 있었다. 금광이는 비둘기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사냥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11살이 되었을 때 탄이가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데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작디작은 폐 한쪽이 하얗게 보였다. 폐암 말기였다. 수의사는 수술해도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여주고 행복하게 보낼지, 목숨 걸고 수술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우리는 전자를 선택했다. 모란시장에서 폐암에 좋다는 말린 지렁이를 구해다 먹였다. 반년 후 방에서 일하는데 탄이가 들어와 가늘게 떨면서 나를 쳐다봤다. 편의점에 가서 돼지 수육을 사다가 먹였다. 아주 잘 먹었다. 그날 나는 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방에서 함께 잤다. 다음날 술 약속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했더니 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있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날부터 또 다른 죄책감을 남기지 않으려고 금광이를 매일 저녁 산보시켰다. 퇴근 후 피곤하고 귀찮아도 금광이를 데리고 나갔다. 집 안팎에서 금광이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솔직히 산보가 금광이에게 이렇게나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하루는 산보 도중 폭우가 쏟아졌다. 금광이를 티셔츠 안에 집어넣고 목구멍으로 얼굴만 빼꼼 뺀 뒤에 집을 향해 뛰었다. 겨울 어느 날 금광이가 작은 발을 털면서 끙끙댔다. 들어 올렸더니 발바닥에 염화칼슘 가루가 들러붙어 있었다. 조심스레 부스러기들을 떼곤 그대로 금광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금광이가 구토 증세를 보였다. 머리맡이 아니라 차가운 바닥에 배를 깔고 자는 날도 많아졌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수의사가 간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주일 뒤 수의사는 간암이라고, 복수가 찼고 내장에서 열이 나서 냉기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한 달도 남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내는 금광이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병원까지 바꿔봤지만 소용없었다. 쇠약해진 금광이가 소변 자세를 버티지 못해 그대로 주저앉는 모습을 보곤 나도 펑펑 울었다. 한 달 뒤, 아내와 나, 장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금광이는 평생 잤던 안방 침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길게 내쉰 뒤 떠났다.


금광이마저 떠난 뒤로 나는 TV에서 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유튜브에서도 개나 고양이 섬네일은 절대 클릭하지 않는다. 동네에서 산보 중인 개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다가와도 대꾸하지 않는다. 다른 개를 쓰다듬으면 저 위에서 금광이와 탄이가 내려다보면서 서운해할 것 같아서, 예전 두 녀석의 체취가 생각나서, 털을 깎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발톱까지 정리해준 뒤에 소파 위에서 늘어져 자는 녀석들의 쌔근대는 숨소리가 떠올라서 그렇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이제 나는 개를 키우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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