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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Dec 06. 2018

#02.도착 한 시간 만에 바가지 쓰기

하노이 체류 경비를 아끼려는 너의 노력이 부질없는 이유

낯선 공항에서 여행자의 나침반은 작동하지 않는다. 게이트에서 뱉어지는 순간 미아가 된다. 고독감과 난처함의 결합. 어디에서 무얼 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분간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방향 감각을 잃기 때문이다. 목적지까지 거리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정 넘어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에서 나는, 또, 그랬다. 저렴하다는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택시 호객꾼들만 모기처럼 주위에서 앵앵거린다. 그랩(Grab) 앱을 켜고 택시를 호출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해트트릭을 터트리고도 남을 법한 5분이 지나간 끝에 그랩 택시가 나타났다. 살았다.


40분 정도를 달려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호텔 주소가 가리키는 곳에는 뻔뻔하게 다른 호텔이 있었다. 대충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렸다. 바로 길을 잃었다. 호텔에 전화를 걸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호텔 직원은 “데리러 가겠다”라고 말했다. 


조금 뒤, 오토바이가 와서 “호텔?”이라고 물었다. 호텔명이 적힌 종이를 보이자 “예스, 예스”라고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헤드윅>의 포스터에서 조승우가 저렇게 고갯짓을 하고 있었지. 조금 달리던 오토바이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호텔의 구조요원이 아니라 초행자를 주워 먹는 바가지 오토바이였다.


“호텔에서 보낸 사람 맞느냐?”

“예스, 예스.”

“내리겠다.”

“호텔, 호텔”

“(한숨…)”

“예스, 예스”


같은 블록 두 곳을 서너 번 빙글빙글 돌았다. 초원 위 토끼를 노리는 독수리의 비행이 딱 이럴 것 같았다. 오토바이의 외모는 맹금류와 거리가 멀었지만, 호텔 도착 뒤에 보인 돈을 향한 열망은 독수리 못지않았다. 20만 동(1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공항에서 40분을 달린 택시 요금이 30만 동(1만5천원)이었다. 호텔의 ‘진짜’ 직원이 5만 동(2500원)으로 중재했다. 오토바이는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5만 동을 더 달라고 했다. 2500원을 아끼자고 싸우기에 새벽 1시 반은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호텔 주변을 정찰했다. 조금 걸었더니 어젯밤 오토바이에 낚인 지점이 나왔다.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호텔을 찾는 값 치곤 5천원은 너무 비싸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반 식당의 생맥주 한 잔이 500원이었다. 타이거 생맥주 10잔을 마실 수 있는 금액이다.


해외로 여행 및 출장 꽤 다녀봤다고 자부했는데, 하노이 도착 한 시간 만에 바가지를 썼다. 딱히 분통을 터트리진 않았다. 6년 전, 호찌민에서 시클로를 10분 정도 타곤 9천원을 낸 적이 있다. 탈 때 1만8천 동이었던 가격이 내릴 때 18만 동으로 수직 상승했다. 기억해보니 그때 시클로의 표정도 독수리 같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단다. 해외여행도 그렇다. 떠나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르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경비 줄일 방법을 맹렬히 검색한다. 4분기 영업전략회의 자료만큼 신중하고 치밀하게 작성한다. 여기서 저기까지 이렇게 가면 싸다, 여기서 이것만 주문하면 충분히 배부르다, 여기에서 공짜 셔틀버스가 다닌다 등등. 


경비 절약의 불타는 의지는 현지에 도착하면서 간단히 소등된다. 힘들어서 택시를 탄다. 더워서 스타벅스에서 쉰다. 근사해 보여서 호텔 애프터눈티를 즐긴다. 이곳 아니면 이런 물건이 절대 없을 것 같아서 굳이 산다. 회사의 영업계획과 나의 해외여행 가계부는 똑같다. 그때그때 바뀐다.


현실적으로 해외여행 예산을 넘기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에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알고 맞아도 매는 그냥 아프다. 호텔 객실의 와이파이가 먹통일지 모른다. 시간표대로 버스가 출발하지 않을지 모른다. 택시 기사가 지도를 못 읽을지 모른다. 기차의 승차권과 좌석권이 별매일지 모른다. 당신 앞에 나타난 오토바이가 호텔이 보낸 직원이 아닐지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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