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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02. 2022

네 생각이 뭐든 너는 새로운 팀으로 가야 해

갑자기 팀이 바뀌는 회사

2020년 12월 회사 옥상에서 본 초승달

[ 00. 그 전 : ep.02/회사 ]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 건 내 사수인 용 대리님이었다. 용 대리님이 어디서 들었는지 우리 글로벌설계실에 새로운 팀이 생긴다고 했다.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내가 그 팀으로 영입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글로벌설계실은 회사 내 제일 작은 규모의 본부급 조직이었다. OO 건축에는 본부가 있고 본부보다 작은 조직인 실이 있다. 글로벌설계실에서는 인원이 1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 안에 2개의 팀으로밖에 나뉘지 않았고 나는 글로벌 설계실 2팀에 속해 있었다. 2팀에 있던 팀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아쉬워했다. 같이 1년 동안 팀워크를 맞추면서 잘 지냈는데 막내 사원만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으니 이에 대해 작은 위로들을 건네주었다. 무엇보다 너무 예고도 없이 내가 팀이 옮겨지는 걸 안타까워했을지도 모른다. 맞다. 나는 팀이 생긴다는 말도 못 들었고, 그 팀에 내가 들어갈 게 유력하더라는 카더라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당장 1월부터 그 팀에 합류해야 한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팀을 바꾸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회사는 내가 일하고 싶은 사람을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그저 실 차원의 전략으로 새로운 팀에 배치되었을 뿐이다.


2팀도 난감하긴 할 것이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나를 여러 가지로 챙기고 가르쳐 이제 좀 합이 맞게 만들어 놓았더니 인원을 이렇게 쏙 빼가다니. 용 대리님과 같은 팀 김 부장님은 실장님과 이런저런 상담을(이라고 하고 몇시간을) 받았다. 잘 돌아가고 있는 팀에 왜 나는 새로운 팀으로 이동하는 걸까? 며칠 뒤 본부 전체 회의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장은 실의 인적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이고 그런 기초로 사람을 더 뽑기 전에 새로운 팀을 새해 인사이동에 맞춰 꾸리겠다고 했다. 뭐, 이런 비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실장의 역할이고 실장이 가지고 있는 결정권이자 파워였다. 그리고 회의에서 밝혀진 건 새로운 팀에 들어오는 멤버 구성이었는데, 1팀에 있던 부장님이 소장이 되어 김 소장이 되고, 그리고 같은 1팀의 박 차장님이랑 김 대리가 합류한다. 그리고 2팀에서는 내가, 거기에 새해에 올 신입사원 1명까지 총 5명이 한 팀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OO 건축에서 잘 운영되고 있는 팀은 8에서 10명 정도의 팀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에 반토막이었고 기존에 있던 팀들도 인원이 줄어 인원 공급이 시급해진 상태로 새해를 시작하겠구나 싶었다. 사실 새로운 팀의 멤버들을 듣고 그렇게 나쁜 팀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여기서 나는 선택권이 없으니 그저 내 생각을 바꿔 먹기로 생각한 것 같았다. 사실 너무 마음이 잘 맞던 용 대리님이랑 이렇게 1년 동안 손발을 맞췄는데 내가 다른 팀에 가게 된다니. 사실 아쉽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음은 용 대리님과 김 부장님이 했다는 몇시간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용 대리님과 김 부장님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내가 왜 기존팀에 필요한지 설명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자신들이 키워놓은 인재를 잃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 운영을 결정짓는 건 실장의 권한이고 파워였다. 실을 키우기로 확고하게 마음을 먹었는지 이 결정은 바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사실 실장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실장은 상담을 통해 작은 위로만 건네줄 뿐이다. 


왜 내 의사나 조직 운영에 대한 정보를 미리 공유하지 않고 팀을 꾸리고 날 이동 시킬까 생각도 했다. 그래도 이미 결정 난 사항이라 바꿀 수는 없다고 하니 새로운 팀에서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태도를 고쳤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을 종무식을 며칠 안 남기고 모형실에서 동기 수진이와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수진이는 글로벌설계실 1팀에 있는 내 동기였는데 한참 현상(건축 현상설계 공모의 줄임말로 여러 사무소의 경쟁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주해 올 수 있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내년에 팀이 바뀌면 나도 내년에 새로운 팀에서 같이 현상을 하게 될 것 같았다. 특정한 정보가 없이 나의 미래를 점쳐보던 수진이와 나는 곧 내 미래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팀의 팀장인 김 소장이 모형실로 들어오면서 나에게 살며시 큰 힌트를 주었기 때문이다.


“재민아, 1월 2일부터 너도 출근해야 해. 아마 토요일이지? 앞으로 잘해보자”


그렇다. 1월 2일 새해 첫 주 토요일부터 출근해서 현상을 같이해야 한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알겠다고 하고 모형실을 나왔다. ‘이런 망했다.’ 사실 종무식 이후에 휴가는 1월 3일 일요일까지 쉬는 거였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도 종무식을 1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채. 그렇게 2021년 1월 2일 토요일에 나는 글로벌 설계본부 3팀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 글로벌설계실에서 팀을 추가로 신설하면서 글로벌 설계본부로 승격했다.

* 글로벌 설계본부는 2021년에 3명의 신입사원을 받게 되었지만, 인원이 충족되지 않아 본부 인원은 20명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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