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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04. 2022

세상에 펼쳐진 다양한 레퍼런스

현상을 하다가 깨달은 것

[ 01. 요즘 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 : ep.03/책 ]


광양 아파트 현상을 하면서 느꼈다. 나는 이걸 몇 번 반복할 수 있을까? 사실 까마득했다. 현상에 참여해서 밤을 새우는 인원은 낮은 연차의 직원뿐만이 아니라 높은 연차의 소장급, 부장급도 있었다. 모두가 남아서 다 같이 미친 듯이 일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현상이었다. 아무리 건축이 좋아도 이건 아니었다. 바이오리듬이 다 깨지고 아침에 지하철을 타면 헛구역질을 참으며 출근했었다. 일단 몸이 너무 힘드니까 정신도 힘들어지고 그래도 멘탈을 붙잡으며 하루에 짧으면 10시간 길면 밤을 새우면서 평가하는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입면 디자인을 만들고 이쁜 보고서를 만들었다. 사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대단하다.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여서 짧게 2-3주 다 같이 모여서 만든 보고서와 도면 세트를 보면 뿌듯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당장 몸과 마음이 힘드니 뿌듯한 마음이 작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제출 후 높은 분들만 가서 하는 프레젠테이션까지,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면 그때야 매일매일 하는 야근과 주말에 출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광양 아파트 현상이 끝나고 나서 나는 평일 3일을 쉬고 회사에 복귀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차마 두려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회사의 모습 중 하나였지만 이걸 15년, 20년 할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회사 사람들은 건축 업계의 전통과 관례에 따라 일을 진행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건축 특유의 도제식 업무수행 방식 때문에 그렇겠지. 그래서 나는 건축이라는 세계에서 밖으로 나가보려고 유튜브를 틀었다.


사실 시작은 규림이라는 친구 덕뿐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같은 반 친구 규림이. 2013년 즈음인가 군대를 제대하고 머무르고 있던 누나 집 근처에 규림이가 산다는 것을 알고 아주 짧게 만났었다. 참 인상 깊었던 게 집 앞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는데 규림이는 자신의 킥보드를 타고 오는 게 아닌가. 참 개성 있는 친구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후 규림이의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염탐했는데 처음에는 재밌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규림이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게 바로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후 요즘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였다. 규림이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요즘사’ 채널에 올라온 흥미롭고 다채로운 인터뷰를 집에서,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나는 미친 듯이 보고 있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유튜브 인터뷰 <두낫띵클럽 김규림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LqArfg24oxo&t=791s)


“와 이 채널 뭐지?, 너무 좋은데?”


너무 신기했다. 이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과 삶이 있었다. 머리가 조금 띵했다. 내가 볼 수 있었던 삶은 OO 건축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이 세상 밖에 톡톡 튀는 색깔의 삶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영상을 보는 내내 너무 신나고 재밌었다. 영상을 보는 동안은 그들의 프로젝트와 인생의 결정이 내 인생에도 있을 것 같고, 한번 사는 인생 역시 저렇게 살아야지! 라는 마음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출근을 해 회사 책상에 앉으면서 ‘뭐지? 왜 이런 사람들을 보는데 설레지? 인생 정말 재밌게 사는  것 같아’라는 생각하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캐드(도면을 컴퓨터로 그릴 때 쓰는 소프트웨어)를 치는 동안에도 내 생각을 멀티태스킹이 되고 있었다. 업무를 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맞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지. 나도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면서 살았어.’ 


2013년 복학하며 만난 친구 비아노. 비아노와 나는 건축 학부생으로 건축을 공부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2017년 다시 건축을 공부하러 영국에 갔을 때 비아노도 석사를 하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도시인 셰필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비아노는 자신을 건축가가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스스로 소개해 왔는데 결국 석사를 크리에이티브 라이팅이란 과정으로 하고 있었다. 인터넷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책으로도 내는 내 주변 첫 독립출판을 한 친구는 비아노였다.


또 고등학교 친구인 얀과 내즈 커플이 있다. 이 친구들은 각각 스웨덴과 태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사실상 내즈는 캐나다 국적이었기에 이민은 아니지만). 얀과 내즈는 캐나다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내즈 인스타그램에 꽃집을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고등학교 졸업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내즈가 자신의 가게를 연다는 것은 나에게도 너무 기쁜 일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열심히 축하해주고 지속해서 내즈가 올리는 꽃들과 부케들을 보고 있다. 


폴란드에서 온 아드리아나와의 추억

석사 때 큰 힘이 되어준 폴란드 친구 아드리아나는 약혼자 캐스퍼와 함께 런던에 살면서 건축사사무소를 다닌다. 런던도 경쟁이 치열하고 살기 힘든 도시라는 걸 짐작하게 만들어 준 게 아드리아나였다. 누구나 부러워할 것 같은 런던의 삶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노르웨이에서 삶을 시작해 보고 싶은 꿈과 계획을 가진 친구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자신의 사무소를 차려서 나올 거라고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현재 런던에서 하던 일 모두 그만두고 자신의 나라인 폴란드에 가 있다. 왜냐하면 다음 달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건축일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는 아닐지 몰라도 정말 자기만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많았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 사업을 시작한 스티안, 호주에서 유학하고 맥주 유통 사업을 시작한 사잔, 패션업계에 일하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종렬이, 학부부터 박사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는 병선이까지. 정말 치열하게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깨달았다. 정말 다양한 레퍼런스는 유튜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도 저마다의 정답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양한 삶. Diversity. 내가 석사 내내 외쳤던 다양성에 대한 것.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다양성에 대하여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는가?’ 내 삶 또한 다른 누구와의 삶과도 같은 것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나도 재밌게 살고 싶다”


요즘사와 내 주변의 다양한 레퍼런스를 보면서 알았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일상은 재밌고 신나는 일상은 아니었구나. 나는 물론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내 삶이 다양성에 기여하는 삶이라고, 나만의 재밌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해보고 싶어졌다.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삶. 재밌는 삶. 나의 삶.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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